불귀 2

                                                                                    김소연

 

 이해한다는 말, 이러지 말자는 말, 사랑한다는 말, 사랑했다는 말, 그런 거짓말을 할수록 사무치던 사람, 한 번 속으면 하루가 갔고, 한 번 속이면 또 하루가 갔네, 날이 저물고 밥을 먹고, 날이 밝고 밥을 먹고, 서랍 속에 개켜 있던 남자와 여자의 나란한 속옷, 서로를 반쯤 삼키는 데 한 달이면 족했고, 다아 삼키는 데에 일 년이면 족했네, 서로의 뱃속에 들어앉아 푸욱푹, 이 거추장스런 육신 모두 삭히는 데에는 일생이 걸린다지, 원앙금침 원앙금침, 마음의 방목 마음의 쇠락, 내버려진 흉가, 산에 들에 지천으로 피고 지는 쑥부쟁이, 아카시아, 그 향기가 무모하게 범람해서, 나, 그 향기 안 맡고 마네, 너무 멀리 가지 말자는 말, 다 알 수 있는 곳에 있자는 말, 이해한다는, 사랑한다는, 잘 살자, 잘 살아보자, 그런 말에도 멍이 들던 사람, 두 사람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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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봄날

                                                  김소연

 

너의 가시와 나의 가시가

깍지 낀 양손과도 같았다

맞물려서 서로의 살이 되는

 

찔려서 흘린 피와

찌르면서 흘린 피로 접착된

악수와도 같았다

 

너를 버리면

내가 사라지는,

나를 지우면

네가 없어지는

이 서러운 심사를 대신하여

 

꽃을 버리는 나무와

나무를 저버리는 꽃 이파리가

사방천지에 흥건하다

 

야멸차게 걸어잠근 문 안에서

처연하게 돌아서는 문 밖에서

서로 다른 입술로 새어 나오는 한숨이 있었는데

흘리는 눈물의 연유는 다르지 않았다

 

꽃봉오리를 여는 피곤에 대하여도

이 얼굴에 흉터처럼 드리워진

나뭇가지 그림자에 대하여도

우리의 귀에 새순이 날 때까지는

말하지 않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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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라이트 요코하마>가 마음에 든다면 마음껏 불러야 하고, 싫으면 싫다고 소리질러야 하고, 상처를 받았으면 따져야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렇게 살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러나, 정말,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裏覺"

가고 가고 가다보면 알게 되고, 하고 하고 하다보면 깨닫게 된다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대책없이 해피엔딩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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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나와 결혼한 순간부터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했다. 진정으로 자신을 '아내'라고 불러줄 사람, 자유와 독립을 반납하고 진정으로 '종속'되고 싶은 단 한 사람을 진정 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와 삼 년을 살았지만 난 늘 혼자였기에 그녀가 떠난 지금도 결락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건 그녀의 의도된 배려였을까.

 

'전은진-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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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하루하루가 똑같다고 여기면서도 진이 그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커다란 행복도 없고 커다란 불행도 없이, 작은 것들에 만족하거나 실망하면서, 그저 예측할 수 있는 일들만을 겪으며 고요히 늙어가는 것이 삶이라고 오래전부터 믿어왔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녀는 혁명도 없고 재앙도 없고 축제나 드라마도 없고 따라서 무용담도 없을 그 삶에 스스로 기대할 것 또한 없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과거를 후회하지도 않고 미래를 꿈꾸지도 않았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묘한 감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닌 것 같은 의구심.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함. 하지만 어차피 되돌릴 수는 없을 거라는 체념.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가 그렇게 느낄 만한 데에는 딱히 이유가 없었다.

 

'김미월-여름 팬터마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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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뛰어가는 지하철역에서 나도 모르게 그 대열에 끼어 발걸음을 재촉하는 날이 그제, 어제, 오늘 하루씩 늘어가고

그러다 문득 왜 이렇게 바삐 걸어갈까, 어디로, 왜

한두번 혹은 가끔 그런 공황상태에 빠져 두리번 거리다 말겠지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거야 그렇게 달래는 날이 수없이 늘어나 일상이 되었다.

 

계약만료일을 기다리는 아무 희망없는 사람처럼 그때가 되면, 그날이 오면

그리 거대한 꿈도 아닌 것을 가슴에 품기만 하고 사는 걸까

그러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산티에고행

엄마가 자란 그곳에 가서 살고싶다 말하는 동생말에 마음이 잡혀버렸다

여기서는, 이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내 가슴의 울림

확고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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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2-19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키님의 글을 보니... <연금술사>의 여정이 떠오르네요.
산티에고로의 여행길을 결심하신 건가요? ''
아무쪼록 마음에 와닿는 말에 잘 귀기울시길... 물론 저도!

처키예쁜구두 2012-02-19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서 접하고 너무 가고 싶었는데, 국내여행도 망설이기만 하는 저한테 가능할까.. 무엇보다도 지금의 상황을 다 접고 떠날 수 있을지
두려움과 끊임없는 핑게를 버려야 할텐데
안주하려는 마음과 떠나고싶은 욕망이 계속 싸우고 있어요
한동안 서재에 소흘했었는데 댓글도 남겨주시고~ 수다쟁이님 말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