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나와 결혼한 순간부터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했다. 진정으로 자신을 '아내'라고 불러줄 사람, 자유와 독립을 반납하고 진정으로 '종속'되고 싶은 단 한 사람을 진정 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와 삼 년을 살았지만 난 늘 혼자였기에 그녀가 떠난 지금도 결락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건 그녀의 의도된 배려였을까.

 

'전은진-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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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하루하루가 똑같다고 여기면서도 진이 그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커다란 행복도 없고 커다란 불행도 없이, 작은 것들에 만족하거나 실망하면서, 그저 예측할 수 있는 일들만을 겪으며 고요히 늙어가는 것이 삶이라고 오래전부터 믿어왔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녀는 혁명도 없고 재앙도 없고 축제나 드라마도 없고 따라서 무용담도 없을 그 삶에 스스로 기대할 것 또한 없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과거를 후회하지도 않고 미래를 꿈꾸지도 않았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묘한 감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닌 것 같은 의구심.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함. 하지만 어차피 되돌릴 수는 없을 거라는 체념.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가 그렇게 느낄 만한 데에는 딱히 이유가 없었다.

 

'김미월-여름 팬터마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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