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꾸뻬, 인생을 배우다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꼬마 꾸뻬에게 배우는 인생, 나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어린 아이에게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교육’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주사 맞으러 병원에 갈 때도 겁 먹고 있는 아이에게 "하나도 아프지 않아!"라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부모의 말을 믿고 안심하고 있다가, 주사를 맞을 때 아프면 심한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나이가 들고, 경험적으로 세상을 알아갈 때마다 나도 자주 그런 배신감에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부모님이, 선생님이, 어른들이, 그리고 교과서가 가르쳐주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과 마주할 때마다 어떤 배신감이 내 마음에 충격과 울분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놓곤 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이점이 많다고 배웠고,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반도’라는 지형이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당혹감. 그때 이후로 나는 그동안 배웠던 일체의 지식에 ’의구심’을 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해한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미리 알려주기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꿈과 소망을 품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심정을 말이다. 더구나 정직한 것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 노력한 만큼 ’반드시’ 대가를 얻는 것도 아니라는 것, 착하게 살면 ’누구에게나’ 칭찬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 등을 꼬마에게 이해시키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꼬마 꾸뻬’는 이처럼 오묘한 ’인생’을 벌써 배워나가고 있다. <꼬마 꾸뻬, 인생을 배우다>의 저자 ’프랑수아 를로르’는 오랫동안 정신과 의사로 일했고, 현대인들의 정신질환을 치유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꾸뻬 씨의 행복 여행>에서는 행복의 의미를 찾아 떠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를 담아 출간과 동시에 유럽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고 한다. 후속작인 <꼬마 꾸뻬, 인생을 배우다>는 아이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시시때때로 부딪혀 오는 인생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가운데 인생의 숨은 법칙을 배우고 행복의 의미를 깨달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꼬마 꾸뻬’는 이러 저러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부모님께 질문을 하고 그것을 다시 되새기는 가운데 자신만의 답을 얻는다. 그리고 깨달음을 하나씩 얻을 때마다 자신의 ’수첩’에 메모를 한다. 그렇게 인생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인 꼬마 꾸뻬의 아버지와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이 직업인(꼬마 꾸뻬가 이해하기에) 엄마는 꼬마 꾸뻬에게 참으로 정직하고 지혜로운 인생 선생님이다. 그들은 꼬마 꾸뻬와 충분히 대화를 한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것이 "하나도 아프지 않아"라고 말하는 대신, "주사는 아플 거야. 그렇지만 주사를 맞아야 진짜 병이 낫는단다. 주사 맞을 때 아픈 거 참을 수 있겠지?"라고 설명하듯 인생의 ’오묘함’을 가급적 진실되게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꼬마 꾸뻬는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삶, 친구들과 함께하는 삶, 선생님과의 삶, 그리고 방학 때 휴가를 떠나 갖게 되는 삶 등을 통해 세상의 ’현실’을 하나씩 마주하며, 서서히 세상에 눈을 떠간다.

덩치가 큰 친구의 괴롭힘을 통해서 친구들과 연합하는 힘을 배우고, 상사 때문에 괴로워 하는 엄마를 보면서 자신은 스스로 ’대장’이 되겠다는 꿈을 꾸고, 죽음을 맞이한 친구를 통해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생각해보고, 여자 친구로 삼고 싶은 아밍딘을 통해 사랑을 경험하고, 정의가 힘의 관계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친구들의 집과 부모님의 직업을 비교하면서 ’차이점’과 그것을 인정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그중, ’자격과 자유’의 문제는 나에게 오래도록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결정되고, 타고나고, 주어진 환경의 영향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이런 건 ’부모님’(복합적인 의미로 읽힌다) 때문이다. 그러니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86)라는 가르침은 따로 깊이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때로 꼬마 꾸뻬 아버지와 어머니는 의견 충돌을 보이기도 한다. 천주교 신앙을 가진 어머니는 칸트적인 윤리관을 가지고 있고, 아버지는 공리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꼬마 꾸뻬는 엄마와 아빠가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 과정을 통해 인생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있고, 스스로 좀 더 지혜로운 의견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친구의 엄마가 아빠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꼬마 꾸뻬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아빠와의 비밀을 지키고, 어른이 되고나서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것을 처리할 자신만의 해법이 있었다.

꼬마 꾸뻬의 눈높이에서 인생을 다시 배우며, 내가 꼬마 꾸뻬의 나이에 이러한 인생을 미리 알았더라면 오늘의 내 삶이 좀 달라졌을까 하는 질문을 해본다. 꼬마 꾸베가 나보다 한수 위인 것은 확실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정답이 아니라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꼬마 꾸뻬의 수첩이 좋은 참고서임에는 틀림 없다. 

"인생에 있어 늘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좋은 면을 볼 필요가 있다"(45).
"삶에서 중요한 것은 존중받을 줄 아는 것이다"(121).
"인생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보상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면 다시 노력해야 한다"(2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 서브 로사> 2권에 [신의딸] 이름으로 서평 한 줄이 인용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독서치유 프로그램의 bibliography를 보고 구매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읽기 전부터 치유적인 책읽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유진과 유진>은 '아동 성폭력'을 소재로 한 청소년 소설이다. 동명이인의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을 주인공으로 하여 성폭력에 반응하는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은 서로 또 다른 '나'이다. 독자는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의 서로 다른 반응을 비교하며, 성폭력 피해의 아픔을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인 치유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유진과 유진>의 이야기 속에 '성폭력'을 치유하는 (전문적인) '심리 상담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며 이름이 같아 각각 '큰 유진'과 '작은 유진'으로 불렸던 두 '유진'이가 중학교 2학년에 되는 첫 날, 한 반에서 다시 만난다. 그런데 '큰 유진'은 같은 유치원에 다녔던 '작은 유진'을 단박에 기억해냈는데, '작은 유진'은 어찌된 일인지 '큰 유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작은 유진'이 '나를 모르는 척 한다'고 '큰 유진'은 생각한다.

'큰 유진'이는 '작은 유진'이를 보자 유치원 때 벌어졌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작은 유진'이 인형의 목을 비틀고, 다리를 찢어놓았던 일로, 아이들은 번갈아 불려가 유치원 원장과 했던 '놀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사건이 커지자, '작은 유진'네 집은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다. '큰 유진'이 그때 엄마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사랑해'와 '네 잘못이 아니야'였다(74). 엄마의 품에 안겨서 사랑 고백을 듣고, 주목받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큰 유진'에게는 그때의 상처가 희미한 흉터로만 남았다. 

그러나 '작은 유진'은 그때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큰 유진'이를 통해 '작은 유진'은 서서히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작은 유진'이는 무엇이든 부족함이 없는 집에서 살지만,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가 없다.
"아무리 예뻐도 조화에선 향기가 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엄마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가 없다"(79). 거리감이 느껴지는 아빠와 엄마, '작은 유진'이는 둘 중에 한 분은 자신의 친부모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자, 겨우 자신을 인정해주는 듯한 할머니와 아버지와 엄마. '작은 유진'이는 힘든 일이 있어도, 고민이 있어도, 아무에게도 그것을 털어놓을 수 없다. "누구에게든 이 일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잖아.'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면 잊을 수도 있을 것 같다"(59).

억압되어 있던 '작은 유진'이의 기억이 어느 날 터져버리고 말이다. 살갗이 벗겨지도록 아프게 자신을 씻어내며 엄마는 이렇게 소리쳤었다.
"넌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없었던 거라구! 알았어?" 엄마 품에 얼굴을 묻으려는 '작은 유진'이를 떼어놓으며 다시 말한다. "앞으로 다시 그 얘기 꺼내지 마. 그럼 너 죽고, 엄마도 죽는 거야. 알았어?"(165) 같은 일을 당한 '큰 유진'의 부모님은 '큰 유진'이를 품에 안고 사랑고백을 했다는데, '작은 유진'의 엄마는 '작은 유진'이를 때리며 그 일을 잊을 것을 강요했다. 그 일이 살갗을 모두 벗겨내야 할 만큼 수치러운 일이라고 '작은 유진'이의 마음에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그 일을 잊지 않으면 '작은 유진'이도 죽고 '엄마도 죽는다고 협박까지 했다. 그 어디에도 '작은 유진'이를 위로하거나 안심시켜 주는 어른은 없었다. 

'큰 유진'이는 말한다.
"야, 어떤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데 미친개가 달려들어 물었다고 해 봐. 그럼 그게 물린 사람 잘못이냐? 미친 개 잘못이지"(75).
'작은 유진'이는 말한다. "나는 이미 여섯 살이란 어린 나이에 깨진 그릇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186).

발표된 통계 자료를 보면, 절반 이상(70%)의 여성들이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발표된 통계 자료가 이 정도라면 아마 대부분의 여성들이 대부분 크고 작은 피해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버스와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한 매우 불쾌한 경험이 있는데, 통계 조사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순결, 정조, 수치심이 강조되어 오던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우리 부모 세대들은 '성폭력'에 어떻게 맞서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그 한 마디를 몰랐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남자'들은 고개를 들고 살고,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살았다. 사회적인 통념과 왜곡된 사고 때문에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평생 죄인으로 살고,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가지고 사는 여성들을 생각하면, 조금씩 강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성' 범죄에 대한 처벌에 우리 사회가 너무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는 사회적인 안정장치가 될 수 없다.
'미친개'의 위험성을 가벼이 여기는 잘못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유진과 유진>은 기억을 억압당한 채, 깨진 그릇 취급을 받으며 숨죽이고 살아온 '작은 유진'에게 우리 인생을 날아오르게 할 날개는 '상처를 모아 짓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어떤 모양의 상처이든지 상처 없는 인생은 없다. 문제는 그 상처가 얼마나 파괴적인 것이냐가 아니라, 끝까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상처를 모아 비상하는 날개를 짓는 것은 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나의 선택이요, 나의 몫이다. 작가는 이렇게 당부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 그 어떠한 이유로도 말이다.

"삶이란 누구 때문인 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시작은 누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자신을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지. 살면서 받은 상처나 고통 같은 것을 자기 삶의 훈장으로 만드는가 누덕누덕기운 자국으로 만드는가는 자신의 선택인 것 같아"(195).

이밖에도 <유진과 유진>은 청소년기의 심리 변화와 성장 과정을 현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이 전하는 많은 메시지 중에서도 부모 세대와 갈등하는 '큰 유진'의 호소가 유난히 마음에 남는다.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을 먼저 경험해 본 사람이 자식의 친구가 돼 주어야지, 자식더러 아직 돼 보지도 못한 어른의 친구를 해 달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도교 상징사전 - 성서와 전승의 개념어 소사전
미셸 푀이예 지음, 연숙진 옮김, 최현식 감수 / 보누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성서와 전승의 개념어 소사전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상징의 세계


종교는 상징을 사용하여 진리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기도 하고, 신앙공동체가 진리를 암시하는 상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상징은 보이지 않는 신앙(영적) 세계를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구현해내기도 하고, 진리를 함축하고 있는 상징은 폭넓은 해석을 통해 종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통합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또 상징을 서로 공유함으로 신앙공동체의 결속이 다져지기도 한다. 따라서 종교의 상징을 이해하는 일은 그 종교가 전하는 (영적) 진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신앙공동체를 통해 만들어지고 구현된 모든 종교의 상징들이 저마다의 종교적,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겠지만, <그리스도교 상징사전>은 특별히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갖는 의의를 이렇게 말한다. 

"이 상징들은 주로 유다교에서 유래했고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통합적이고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들로, 지중해와 대서양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서양의 예술적이고 지적이며 영적인 유산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상징들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5).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문화와 예술에 반영된 예를 찾아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나는 특별히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데,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 ’7’를 응용한 창과 기둥, 십자가 비례에 적용된 황금비를 응용하여 그려진 성당의 평면도 등 건축물에도 종교적인 상징들이 무궁무진하다.

<그리스도교 상징사진>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다. "정삼각형은 삼위일체를 상징"(140)하는데,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이것을 응용하여 ’삼각형 방패’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세 꼭지점에서 방패 중앙방향으로 읽어 보면, 성부는 하나님, 성자는 하나님, 성령은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론이 완성된다. 동시에 세 등변에 ’non est’라는 단어가 삽입되어 "성부는 성자가 아니다. 성자는 성령이 아니다. 성령은 성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된다.) 



<그리스도교 상징사전>이 이처럼 실제 예술이나 문화의 사례와 연결하여 상징의 의미를 보여주었다면 훨씬 흥미로운 책이 될 뻔 했다. 그것이 좀 아쉽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용어 ’사전’이다.  "이 사전에 실린 500여 개가 넘는 상징들은 주로 4복음서에 등장하는 것들로, 개괄적으로 보면 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5). 또한 "숫자, 색깔, 도형, 동물, 식물, 사물, 자연 현상, 그 밖의 수많은 여러 실체들을 목록화하여 그리스도교의 전통, 폭넓게는 유다-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른 상징들의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6).

용어의 상징적인 의미를 풀이하는 데 있어서 이 책은 성경의 용례와 신앙공동체에게 받아들여지는 의미를 정리했다. 신학적인 의미보다는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용례에 더 초점을 두고, 상징에 담긴 깊이 있는 의미 해석보다 ’일반적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상징에 담긴 영적 진리의 진위(상징을 해석하는 일이니 논란의 여지가 많겠지만)보다, 교회사적인 전통 안에서 ’상징되어어 온’ 용례 설명에 더 가까운 사전으로 보인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각각의 상징이 성경의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쓰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포도주’(252)도 문맥에 따라서는 ’기쁨과 환희’를 뜻하기도 하고, 정반대로 ’진노와 징벌’을 상징하기도 한다. 

용어 ’사전’이기 때문에 ’독서’로 즐기기에는 좀 지루할지 모르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전적 활용가치가 높다고 본다. 어떤 단어들은 전혀 ’상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인데, 그 안에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새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록 홈즈 : 주홍색 연구 펭귄클래식 58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에드 글리네르트 주해, 이언 싱클레어 작품해설, 남명성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 ’셜록 홈즈’의 한 장면)

 

불멸의 이름, 셜록 홈즈와 존 H. 왓슨, 그들이 돌아왔다!


셜록 홈즈,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


초등학생이 된 나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처음 가르쳐 준 책이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였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가 텅 빈 도서관 한쪽 자리에 홀로 앉아 <셜록 홈즈>를 한 권씩 읽어나갔다. 해질녘, 셜록 홈즈의 추리를 되새기며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 내 마음엔 '셜록 홈즈'를 향한 경외심과 감탄이 붉은 노을보다 더 붉게 타올랐었다. 처음 만난 사람을 한 번 훑어보는 것으로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이나 직업을 척척 알아맞추는 천재적인 추리 능력을 가진 홈즈는 단 번에 나의 '영웅'이 되었다!


다시 만난 셜록 홈즈, 이런 캐릭터였던가?

현재 개봉 중인 '셜록 홈즈' 영화를 보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셜록 홈즈는 내 기억 속의 영웅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주홍색 연구>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권이다.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은 이 첫 권의 책에서 '셜롬 홈즈'라는 인물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일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셜록 홈즈'가 어떤 사람인지 캐럭터 설명에 상당히 할애를 많이 하고 있다.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셜록 홈즈는 명석하고, 냉철하며, 신중한 인물이었다. 영화에서는 '아이언 맨'으로 유명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셜록 홈즈를 연기했는데, 만약 원작을 다시 읽지 않고 영화를 봤다면 엉터리 '홈즈'라고 오해할 뻔했다. 영화 속 '셜록 홈즈'는 상당히 원작에 충실하다.

 

다시 만난 세기의 명탐정 셜록 홈즈는 가슴에 품어온 이미지와 달리, 한마디로 '괴상한' 인물이다. 게다가 '무식'하기까지 하다! 다음은 왓슨 박사가 다소 괴상해보이는 '셜록 홈즈'의 지식 범위를 정리한 내용이다.

 

1. 문학에 대한 지식 : 전무함.

2. 철학에 대한 지식 : 전무함.

3. 천문학에 대한 지식 : 전문함.

4. 정치학에 대한 지식 : 부족함.

5. 식물학에 대한 지식 : 경우에 따라 다름. 벨라도나, 아편, 그리고 독초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상식이 풍부함. 실용적인 원예 상식은 전무함.

6. 지질학에 대한 지식 : 실용적이지만 제한적임. 한 번 보고도 흙을 서로 구별할 수 있음. 산책에서 돌아와 바지에 튄 흙탕물을 보여 주며 색과 성분만으로 런던의 어떤 구역에서 묻은 것인지 말해 주었음.

7. 화학에 대한 지식 : 조예가 깊음.

8. 해부학에 대한 지식 : 정확하지만 체계가 없음.

9. 끔찍한 사건을 다룬 문헌에 대한 지식 : 놀라운 수준. 금세기에 벌어진 온갖 끔찍한 사건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듯 보임.

10. 바이올린 연주는 수준급.

11. 목검, 권투, 검술은 전문가 수준.

12. 영국 법률에 관해서는 상당한 실재적 지식이 있음(29-30).


바이올린 연주는 수준급이지만 그것으로 이상한 소리를 즐겨 내며, 화학실험을 즐기는 등 탐구 정신이 뛰어나지만 독성 물질을 친구에게 약간 먹여 볼 정도로 엉뚱하고, 활달하게 행동하다가도 "며칠이고 거실 소파에 누워 아침부터 밤까지 말 한마디 꺼내지 않고 손발하나 까닥하지 않는 우울증세도 보인다(25).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듯 전체적으로 빈틈 없고 결연한 인상에 결단력이 넘치는 사람이지만, 손발하나 까닥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 있을 때는 눈에서 꿈꾸는 듯 텅 빈 기운이 엿보여 혹시 마약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어느 정도 자만감까지 갖춘 셜록 홈즈는 이처럼 상반된 양극을 오가는 '괴상한' 인물로 묘사된다! <셜록 홈즈> 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조금씩 변화를 보이며 캐릭터가 완성되어갔겠지만, 여하튼 다시 만난 셜록 홈즈는 늘 마음속에 품어왔던 영웅의 이미지와는 달리 전혀 새로운 인물로 다가오는 다가온다. 완벽한 매력남이 아니라, 괴상한 매력남이다!

 

 

"홈즈는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학 이론을 신봉합니다. 거의 냉혹하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15)

 

<셜록 홈즈>는 '추리 과학'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아서 코난 도일은 왓슨 박사의 입을 빌려 <셜록 홈즈>를 스스로 이렇게 평가한다. "당신(셜록 홈즈)은 범죄 수사를 정밀한 과학에 가까운 경지에 올려놓았습니다"(67).

 

셜록 홈즈는 '모든 일을 논리적인 귀결의 연속'으로 본다. "세상만사는 거대한 하나의 사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고리 하나만 보더라도 언제든 전체적인 특성을 알아낼 수 있다"(34)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가 명탐정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거슬러 되짚어가는 추론'의 능력 때문이다. 즉, 결과만 보고 머릿속으로 논리를 정리해서 어떤 일들이 벌어져 그런 결과가 생겨났는지를 거꾸로 추론하는 것이다. 사건을 해결한 셜록 홈즈가 어떤 추론의 과정을 거쳐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설명을 해줄 때마다, 그의 뛰어난 관찰력, 그리고 추리와 분석적 사고는 감탄을 넘어 경외심을 갖게 만든다. 셜록 홈즈가 탄생하고 오늘까지 추리 소설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모두 <셜록 홈즈>의 그늘 아래 있다고 감히 단정하는 바이다.

 

 

왓슨 박사와 콤비를 이루게 된 첫 번째 사건, <주홍색 연구>!

 

책의 뒷편에 실린 '작품 해설'을 읽으니, 몇 번의 거절 끝에 간신히 출판하게 된 아서 코난 도일의 첫 번째 책인, 이 책의 제목은 원래 '뒤엉킨 실타래'였다고 한다. 총2부로 구성된 <주홍색 연구>는 홈즈와 왓슨이 풀어가는 살인사건과 살인사건의 배경이 되는 스토리를 따로 구분하여,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도록 구성했다.

 

아직 사설 탐정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셜록 홈즈는 친분이 있는 형사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는다. "브릭스턴가에 있는 로리스턴 가든 3번지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곳은 빈 집이었다. 새벽 2시에 순찰을 하던 경관이 빈 집에서 불빛을 발견하고 이상히 여겨 가까이 가보니 거실에 잘 차려입은 신사의 시체가 있었다. 실내에 핏자국이 있었지만, 공포로 끔찍하게 얼굴이 이그러진 시체에는 어떠한 상처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이 '특이한' 살인사건을 '수수께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오직 셜록 홈즈만이 오히려 그 특이함을 단서로 간단하게 범인을 잡아낸다!

 

이미 읽은 추리 소설이지만,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홈즈와 왓슨은 내 마음은 물론 추리 문학의 역사 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불멸의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