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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주홍색 연구 ㅣ 펭귄클래식 58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에드 글리네르트 주해, 이언 싱클레어 작품해설, 남명성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 ’셜록 홈즈’의 한 장면)
불멸의 이름, 셜록 홈즈와 존 H. 왓슨, 그들이 돌아왔다!
셜록 홈즈,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
초등학생이 된 나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처음 가르쳐 준 책이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였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가 텅 빈 도서관 한쪽 자리에 홀로 앉아 <셜록 홈즈>를 한 권씩 읽어나갔다. 해질녘, 셜록 홈즈의 추리를 되새기며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 내 마음엔 '셜록 홈즈'를 향한 경외심과 감탄이 붉은 노을보다 더 붉게 타올랐었다. 처음 만난 사람을 한 번 훑어보는 것으로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이나 직업을 척척 알아맞추는 천재적인 추리 능력을 가진 홈즈는 단 번에 나의 '영웅'이 되었다!
다시 만난 셜록 홈즈, 이런 캐릭터였던가?
현재 개봉 중인 '셜록 홈즈' 영화를 보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셜록 홈즈는 내 기억 속의 영웅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주홍색 연구>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권이다.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은 이 첫 권의 책에서 '셜롬 홈즈'라는 인물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일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셜록 홈즈'가 어떤 사람인지 캐럭터 설명에 상당히 할애를 많이 하고 있다.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셜록 홈즈는 명석하고, 냉철하며, 신중한 인물이었다. 영화에서는 '아이언 맨'으로 유명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셜록 홈즈를 연기했는데, 만약 원작을 다시 읽지 않고 영화를 봤다면 엉터리 '홈즈'라고 오해할 뻔했다. 영화 속 '셜록 홈즈'는 상당히 원작에 충실하다.
다시 만난 세기의 명탐정 셜록 홈즈는 가슴에 품어온 이미지와 달리, 한마디로 '괴상한' 인물이다. 게다가 '무식'하기까지 하다! 다음은 왓슨 박사가 다소 괴상해보이는 '셜록 홈즈'의 지식 범위를 정리한 내용이다.
1. 문학에 대한 지식 : 전무함.
2. 철학에 대한 지식 : 전무함.
3. 천문학에 대한 지식 : 전문함.
4. 정치학에 대한 지식 : 부족함.
5. 식물학에 대한 지식 : 경우에 따라 다름. 벨라도나, 아편, 그리고 독초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상식이 풍부함. 실용적인 원예 상식은 전무함.
6. 지질학에 대한 지식 : 실용적이지만 제한적임. 한 번 보고도 흙을 서로 구별할 수 있음. 산책에서 돌아와 바지에 튄 흙탕물을 보여 주며 색과 성분만으로 런던의 어떤 구역에서 묻은 것인지 말해 주었음.
7. 화학에 대한 지식 : 조예가 깊음.
8. 해부학에 대한 지식 : 정확하지만 체계가 없음.
9. 끔찍한 사건을 다룬 문헌에 대한 지식 : 놀라운 수준. 금세기에 벌어진 온갖 끔찍한 사건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듯 보임.
10. 바이올린 연주는 수준급.
11. 목검, 권투, 검술은 전문가 수준.
12. 영국 법률에 관해서는 상당한 실재적 지식이 있음(29-30).
바이올린 연주는 수준급이지만 그것으로 이상한 소리를 즐겨 내며, 화학실험을 즐기는 등 탐구 정신이 뛰어나지만 독성 물질을 친구에게 약간 먹여 볼 정도로 엉뚱하고, 활달하게 행동하다가도 "며칠이고 거실 소파에 누워 아침부터 밤까지 말 한마디 꺼내지 않고 손발하나 까닥하지 않는 우울증세도 보인다(25).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듯 전체적으로 빈틈 없고 결연한 인상에 결단력이 넘치는 사람이지만, 손발하나 까닥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 있을 때는 눈에서 꿈꾸는 듯 텅 빈 기운이 엿보여 혹시 마약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어느 정도 자만감까지 갖춘 셜록 홈즈는 이처럼 상반된 양극을 오가는 '괴상한' 인물로 묘사된다! <셜록 홈즈> 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조금씩 변화를 보이며 캐릭터가 완성되어갔겠지만, 여하튼 다시 만난 셜록 홈즈는 늘 마음속에 품어왔던 영웅의 이미지와는 달리 전혀 새로운 인물로 다가오는 다가온다. 완벽한 매력남이 아니라, 괴상한 매력남이다!
"홈즈는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학 이론을 신봉합니다. 거의 냉혹하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15)
<셜록 홈즈>는 '추리 과학'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아서 코난 도일은 왓슨 박사의 입을 빌려 <셜록 홈즈>를 스스로 이렇게 평가한다. "당신(셜록 홈즈)은 범죄 수사를 정밀한 과학에 가까운 경지에 올려놓았습니다"(67).
셜록 홈즈는 '모든 일을 논리적인 귀결의 연속'으로 본다. "세상만사는 거대한 하나의 사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고리 하나만 보더라도 언제든 전체적인 특성을 알아낼 수 있다"(34)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가 명탐정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거슬러 되짚어가는 추론'의 능력 때문이다. 즉, 결과만 보고 머릿속으로 논리를 정리해서 어떤 일들이 벌어져 그런 결과가 생겨났는지를 거꾸로 추론하는 것이다. 사건을 해결한 셜록 홈즈가 어떤 추론의 과정을 거쳐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설명을 해줄 때마다, 그의 뛰어난 관찰력, 그리고 추리와 분석적 사고는 감탄을 넘어 경외심을 갖게 만든다. 셜록 홈즈가 탄생하고 오늘까지 추리 소설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모두 <셜록 홈즈>의 그늘 아래 있다고 감히 단정하는 바이다.
왓슨 박사와 콤비를 이루게 된 첫 번째 사건, <주홍색 연구>!
책의 뒷편에 실린 '작품 해설'을 읽으니, 몇 번의 거절 끝에 간신히 출판하게 된 아서 코난 도일의 첫 번째 책인, 이 책의 제목은 원래 '뒤엉킨 실타래'였다고 한다. 총2부로 구성된 <주홍색 연구>는 홈즈와 왓슨이 풀어가는 살인사건과 살인사건의 배경이 되는 스토리를 따로 구분하여,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도록 구성했다.
아직 사설 탐정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셜록 홈즈는 친분이 있는 형사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는다. "브릭스턴가에 있는 로리스턴 가든 3번지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곳은 빈 집이었다. 새벽 2시에 순찰을 하던 경관이 빈 집에서 불빛을 발견하고 이상히 여겨 가까이 가보니 거실에 잘 차려입은 신사의 시체가 있었다. 실내에 핏자국이 있었지만, 공포로 끔찍하게 얼굴이 이그러진 시체에는 어떠한 상처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이 '특이한' 살인사건을 '수수께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오직 셜록 홈즈만이 오히려 그 특이함을 단서로 간단하게 범인을 잡아낸다!
이미 읽은 추리 소설이지만,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홈즈와 왓슨은 내 마음은 물론 추리 문학의 역사 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불멸의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