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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ㅣ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독서치유 프로그램의 bibliography를 보고 구매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읽기 전부터 치유적인 책읽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유진과 유진>은 '아동 성폭력'을 소재로 한 청소년 소설이다. 동명이인의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을 주인공으로 하여 성폭력에 반응하는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은 서로 또 다른 '나'이다. 독자는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의 서로 다른 반응을 비교하며, 성폭력 피해의 아픔을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인 치유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유진과 유진>의 이야기 속에 '성폭력'을 치유하는 (전문적인) '심리 상담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며 이름이 같아 각각 '큰 유진'과 '작은 유진'으로 불렸던 두 '유진'이가 중학교 2학년에 되는 첫 날, 한 반에서 다시 만난다. 그런데 '큰 유진'은 같은 유치원에 다녔던 '작은 유진'을 단박에 기억해냈는데, '작은 유진'은 어찌된 일인지 '큰 유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작은 유진'이 '나를 모르는 척 한다'고 '큰 유진'은 생각한다.
'큰 유진'이는 '작은 유진'이를 보자 유치원 때 벌어졌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작은 유진'이 인형의 목을 비틀고, 다리를 찢어놓았던 일로, 아이들은 번갈아 불려가 유치원 원장과 했던 '놀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사건이 커지자, '작은 유진'네 집은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다. '큰 유진'이 그때 엄마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사랑해'와 '네 잘못이 아니야'였다(74). 엄마의 품에 안겨서 사랑 고백을 듣고, 주목받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큰 유진'에게는 그때의 상처가 희미한 흉터로만 남았다.
그러나 '작은 유진'은 그때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큰 유진'이를 통해 '작은 유진'은 서서히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작은 유진'이는 무엇이든 부족함이 없는 집에서 살지만,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가 없다. "아무리 예뻐도 조화에선 향기가 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엄마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가 없다"(79). 거리감이 느껴지는 아빠와 엄마, '작은 유진'이는 둘 중에 한 분은 자신의 친부모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자, 겨우 자신을 인정해주는 듯한 할머니와 아버지와 엄마. '작은 유진'이는 힘든 일이 있어도, 고민이 있어도, 아무에게도 그것을 털어놓을 수 없다. "누구에게든 이 일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잖아.'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면 잊을 수도 있을 것 같다"(59).
억압되어 있던 '작은 유진'이의 기억이 어느 날 터져버리고 말이다. 살갗이 벗겨지도록 아프게 자신을 씻어내며 엄마는 이렇게 소리쳤었다. "넌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없었던 거라구! 알았어?" 엄마 품에 얼굴을 묻으려는 '작은 유진'이를 떼어놓으며 다시 말한다. "앞으로 다시 그 얘기 꺼내지 마. 그럼 너 죽고, 엄마도 죽는 거야. 알았어?"(165) 같은 일을 당한 '큰 유진'의 부모님은 '큰 유진'이를 품에 안고 사랑고백을 했다는데, '작은 유진'의 엄마는 '작은 유진'이를 때리며 그 일을 잊을 것을 강요했다. 그 일이 살갗을 모두 벗겨내야 할 만큼 수치러운 일이라고 '작은 유진'이의 마음에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그 일을 잊지 않으면 '작은 유진'이도 죽고 '엄마도 죽는다고 협박까지 했다. 그 어디에도 '작은 유진'이를 위로하거나 안심시켜 주는 어른은 없었다.
'큰 유진'이는 말한다. "야, 어떤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데 미친개가 달려들어 물었다고 해 봐. 그럼 그게 물린 사람 잘못이냐? 미친 개 잘못이지"(75).
'작은 유진'이는 말한다. "나는 이미 여섯 살이란 어린 나이에 깨진 그릇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186).
발표된 통계 자료를 보면, 절반 이상(70%)의 여성들이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발표된 통계 자료가 이 정도라면 아마 대부분의 여성들이 대부분 크고 작은 피해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버스와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한 매우 불쾌한 경험이 있는데, 통계 조사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순결, 정조, 수치심이 강조되어 오던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우리 부모 세대들은 '성폭력'에 어떻게 맞서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그 한 마디를 몰랐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남자'들은 고개를 들고 살고,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살았다. 사회적인 통념과 왜곡된 사고 때문에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평생 죄인으로 살고,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가지고 사는 여성들을 생각하면, 조금씩 강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성' 범죄에 대한 처벌에 우리 사회가 너무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는 사회적인 안정장치가 될 수 없다. '미친개'의 위험성을 가벼이 여기는 잘못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유진과 유진>은 기억을 억압당한 채, 깨진 그릇 취급을 받으며 숨죽이고 살아온 '작은 유진'에게 우리 인생을 날아오르게 할 날개는 '상처를 모아 짓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어떤 모양의 상처이든지 상처 없는 인생은 없다. 문제는 그 상처가 얼마나 파괴적인 것이냐가 아니라, 끝까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상처를 모아 비상하는 날개를 짓는 것은 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나의 선택이요, 나의 몫이다. 작가는 이렇게 당부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 그 어떠한 이유로도 말이다.
"삶이란 누구 때문인 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시작은 누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자신을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지. 살면서 받은 상처나 고통 같은 것을 자기 삶의 훈장으로 만드는가 누덕누덕기운 자국으로 만드는가는 자신의 선택인 것 같아"(195).
이밖에도 <유진과 유진>은 청소년기의 심리 변화와 성장 과정을 현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이 전하는 많은 메시지 중에서도 부모 세대와 갈등하는 '큰 유진'의 호소가 유난히 마음에 남는다.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을 먼저 경험해 본 사람이 자식의 친구가 돼 주어야지, 자식더러 아직 돼 보지도 못한 어른의 친구를 해 달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