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바꾼다 - 망가진 세상에서 부르는 회복의 노래
매트 챈들러 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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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빨아서 다시 입으라. 이것이 이 책의 중심 주제 가운데 하나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방해하는 영적 동맥 속의 혈전을 파괴하는 비결이다"(84).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벌써 몇 십 년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지금처럼 복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빨간 네온 십자가를 앞에서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밤마다 나를 괴롭혔던 이건 아닌데라는 불안,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아프게 심장을 찔렀습니다. 밤하늘을 향해 하나님, 정말로 저를 사랑하십니까 침묵으로 물었습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더 열심을 낼수록 오히려 하나님은 더 멀어지는 느낌, 악몽과 같았습니다. 영적 갈증을 해결해보려는 노력조차 포기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은혜가 아니라, 내 열심이었다고 말입니다.




"뭔가 해내려고 애쓰지 마라. 당신이 뭔가를 해내야 하나님이 자랑스러워하실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234).


사역을 시작한 뒤로 늘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시달렸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에 매달렸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부담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한 채 열심에 매달리게 되면 그 열심이 율법주의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정말 처절한 절망 끝에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복음 없는 열심이 우리 영혼을 얼마나 메마르게 할 수 있는지, 모든 기쁨과 평안과 만족을 빼앗기고 난 뒤에야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니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기대 수준과 현실이 계속해서 어긋나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과 적절히 뒤섞어 제멋대로" 만들어낸 가짜 복음"(12)을 붙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성화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가 아직 완벽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하지 않던가. 우리는 여전히 성장해 가는 중이다. 아직도 복음대로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런데 왜 남들 앞에서 완벽한 척을 하는가? 그것은 서로 피곤한 짓 아닌가?"(129)


<복음이 바꾼다>는 믿음을 인간적인 노력으로 변질시키는 모든 가짜 신앙에 대해 경고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내 방식"을 모두 내려놓으라고 조언합니다. 마음에 들락날락거리며 우리를 괴롭히는 거룩에 대한 부담감, 성도답지 못한 삶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의 쥐를 복음으로 잡아버려야 한다고 외칩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변화는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그분과의 관계로 초대하시는 것이다.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할 힘을 주신다"(29).


 

 

 

"그저 들려오는 노래에 귀를 열면 되는 것을, 그저 노래에 몸을 실으면 되는 것을, 그저 밴드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감사하면 되는 것을"(12).



복음 안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안식한다는 것은 "자신에게서 눈을 떼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자신에게서 눈을 떼라. 우리는 믿음을 통해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따라서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려야 마땅하다. 가장 기본적인 이 진리를 이해하면 더 이상 '자신' 속으로 뛰어들지 않고 주님께로 달려가게 된다"(70). 복음이 주는 자유를 맛보았을 때 저를 감쌌던 그 완전한 해방감이, 하나님을 위한 열심 속에서 신음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여러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복음에 관한 진리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려주시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많은 강단에서 잘못된 복음, 가짜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듭니다. 모든 교회가 복음 앞에 다시 나와야 하고, 복음으로 다시 무장되어야 함을 느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온전히, 기쁘게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의 열악한 변방에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면 이제 복음의 능력을 믿고서 주님이 어디로 이끄시든 기꺼이 가길 바란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당신을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의 힘이 아니라 당신 안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서 과감히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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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철학 - 인생이 허기질 때
오시로 신야 지음, 박현미 옮김, 오가와 히토시 감수 / 미디어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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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최종 목적은 선하게 사는 데 있다."


학문은 깊지만 가르치는 능력은 좀 부족한 교수님도 많습니다. <3분 철학>이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라면, 제가 만난 교수님 중에 철학을 가장 흥미롭게 가르쳐준 분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철학하면 제 머릿속에는 "심오하다"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한때 철학사를 따라 철학자들의 깊은 사유를 정복해보자 야심찬 계획을 세운 적도 있지만, 암호처럼 읽히는 원전을 앞에 매번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3분 철학>이라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좀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쉽게 읽히면서도, 철학 연표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고, 각각의 철학자들이 말하고자 했던 주요 논점이 한 눈에 파악되니 심봉사가 눈을 뜨는 기분이었습니다. 조각조각 흐트러져있던 철학 지식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 정말 최고였습니다!

<3분 철학>은 철학자들이 사유했던 주요 쟁점을 한 문장의 질문으로 요약했습니다. 철학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학문이라면, 철학자들이 탐구하고자 했던 삶의 문제가 흥미로운 질문으로 제시됩니다. 그중에 제 관심을 끌었던 질문들은 이렇습니다.

진정한 자신이란 무엇인가?(소크라테스)
인생에 목적이란 게 있을까?(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모르는 사람이나 사물을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나?(아우렐리우스 아우쿠스티누스)

제멋대로 사는 것이 자유인가?(이마누엘 칸트)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건 옳지 않은가?(제러미 벤담)

멋진 인생, 별 볼일 없는 인생이 있는 걸까?(프리드리히 니체)

계획대로 살아가는 일이 가능할까?(장 폴 사르트르)

자신 답다는 건 과연 존재하는가?(미셸 푸코)  


<3분 철학>은 철학자들마다 답을 얻고자 했던 질문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특히 철학을 한다는 것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 "내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겨났습니다.

저자는 철학자들이 탐구해 온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자유"라고 말합니다. "자유는 철학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철학은 '자유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127). 이런 관점에서 철학자들의 사유와 사상을 비교해 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독서였습니다. 인상에 남는 철학자들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휘둘린 인생을 살지 말라"(39)고 조언합니다. "정원 속에서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쾌락이고, 커다란 목표 따위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41)입니다. 이 책에서는 마르틴 루터나 다윈, 프로이드와 같은 인물의 사상도 소개하는데, 사람은 자기를 추구할수록 왜 자기 이외의 뭔가를 배신하게 되는지를 간파한 루터, "공동"이야말로 자유이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사실은 자유롭지 않다"(127)는 헤겔, 인간의 본질은 인간 자신이 만드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자유라고 한 샤르트르(188), "현대 권력은 사람들에게 자신답게 살라고 강요"(212)한다는 푸코의 철학은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3분 철학>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나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철학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고 사유해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살아가건 현재의 삶 이외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입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현재와는 다른 삶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불안해집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삶 이외의 다른 삶의 유혹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146)라는 키르케고르의 설명은 왜 우리 앞에 열려있는 많은 가능성들이 우리에게 불안의 요소가 될수밖에 없는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주고, "살아갈 힘을 잃은 사람일수록 멋진 인생이라는 거짓에 매달린다"(157)는 니체의 말은 열정 뒤에 숨어 있는 나의 나약함을 정직하게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이밖에도 <3분 철학>에는 철학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헤겔의 사상은 동시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강의 시간을 헤겔과 같은 시간에 설정해서 수강자가 한 명도 없었던 철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쇼펜하우어라고 합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양하게 견문을 넓히는 삶이 풍요로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이 유행이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현대인들에게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소크라테스는 태어난 곳을 평생 동안 거의 벗어나지 않고 살았지만, 그의 인생이 시시하다거나 빈약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그 작은 유대 땅을 한 번도 떠난 본 적이 없는데, (신앙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예수는 인류가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철학이란 "어떻게 살아야 선하게 사는 것일까?"를 묻는 학문이며, 그것이 철학의 최종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폴 발레리는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 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혼돈의 시대,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철학하는 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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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에서 홍수까지 - 양승훈 교수의 아주 특별한 창세기 주해
양승훈 지음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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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 학자 양승훈 교수의 아주 특별한 창세기 주해


올초에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만들고 러셀 크로우가 주연을 맡은 [노아]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개봉하고 나자 많은 기독교인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 또 한쪽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런 영화는 만들어져서도 안 되고, 보아서도 안 된다"는 의견로 갈라져 찬반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노아]를 성경과 위배되는 내용에 대해 질문이 많았습니다. 저도 성경을 오해할 수 있고, 또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위배되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성경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영화가 픽션으로 그려낸 장면 중에는 초신자들이 궁금해 할만한 문제에 대한 영화 나름의 대답이 담겨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노아 혼자 방주를 지었는가?, 그 많은 동물들을 방주 안에 수용하며 고작 8명이 그들을 어떻게 돌봤는가?, 홍수에서 구원받은 노아 가족 중에 왜 다시 타락하는 인류가 생겨났는가?와 같은 질문들에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성경을 재구성했습니다. 물론 성경을 이성적 테두리 안에서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성경의 계시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의 지식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신비와 비밀이 성경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토대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부딪히게 되는 문제가 바로 창세기, 그중에서도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창조에서 홍수까지"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도 처음 성경을 읽기 시작했을 때, 창세기 1장에서부터 진도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 첫째날에 빛을 만드셨다고 했는데, 넷째날에 와서야 태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조에서 홍수까지>는 이러한 궁금증을 가진 신자들에게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영화 <노아>를 보고 큰 혼란을 느꼈거나, 성경적 내용을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은 분들, 우리 아버지처럼 창조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설명을 듣기 원하는 분들에게 말입니다. <창조에서 홍수까지>는 과학(물리학)과 성경을 함께 공부하고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한 학자의 창세기 강해입니다.  

"본서는 설교 원고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학문성과 감동을 함께 담고 싶었다"는 저자의 바람처럼 학자로서의 진지한 성찰과 신앙인으로서의 진지한 신앙고백이 동시에 담겨 있는 책입니다. 특히 오랜 시간 동안 난제로 남아 있는 성경 구절에 대해 지금까지 제시되어 왔던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다뤄주기 때문에 독자들은 학문적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도 나름의 신학적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일고 있던 성경적 지식을 수정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성경은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리면서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하늘의 창문이 열린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둘째날에 하늘의 물과 땅의 물로 나누셨는데, 이때 "하늘의 물"이 지구를 덮고 있던 물층이었으며 이 물이 땅에 쏟아져내린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노아홍수 전에 지구를 둘러싼 "물층"이 있었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창조과학자들이 말하는 "물층"은 하늘의 창이 아니라 깊음의 샘들이 터지는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창조과학자들은 "화산폭발로 인해 궁창 위에 포화수증기 상태로 존재하던 물이 쏟아지는 것으로 해석"(305)했는데, 이것이 "수증기 덮개 이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근래의 연구결과로 볼 때 그렇게 많은 물이 대기권 상층에 수증기 상태로 존재하게 되면 온실효과로 인해 지상의 생명체들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현장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모든 분들이 함께 고민하고 신학적 입장을 수정해야 할 듯 합니다.

창세기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첫 선언에서부터 믿음이냐 거부(불신)냐가 갈리기 때문입니다. 창조에서 홍수까지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모든 사람들이 한 번은 꼭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성경 또는 문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영생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창조에서 홍수까지를 이해하면 성경 전체의 메시지와 흐름, 그리고 세계사가 한 눈에 보이는 경험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학적 입장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며 과학자의 눈으로 본 성경을 새롭게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기꺼이 추천하는 책입니다. 성경 해석에는 하나의 정답이라는 것이 없고, 어떤 문제는 선택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음을 감안하면, 덮어놓고 믿을 것이 아니라 학문적 객관성을 담보한 주해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공부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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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32가지 물리 이야기
레오나르도 콜레티 지음, 윤병언 옮김 / 작은씨앗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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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철학의 한 계열 학문으로 탄생했어. 소위 자연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이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면서 시작되었지"(18).


 
저자는 물리학의 역사를 강의하면서 물리학의 여러 가지 개념들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몇몇 이미지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에서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명화'는 물리학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저자가 명화를 도구로 선택한 것은 우선은 이미지가 가진 힘 때문입니다. 그림 하나가 공식 하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7). 또 다른 측면에서는 예술(명화)과 과학이 같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동행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예술과 과학을 바라보면 그 둘은 한 길을 가기 위한 두 가지 수단이라는 것입니다(5-7).

다시 말해, 이 책은 명화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명화를 물리적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물리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같은 주제를 가진 명화를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차별점이기도 하면서 아쉬운 점이기도 합니다. 명화의 주제와 물리학 개념이 연결되고 설명된다는 점이 굉장히 참신합니다. 물리학 역사와 개념에 "보다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리학보다는 명화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명화가 어떤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그런 점에서 명화가 가진 주제가 더 확대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책입니다. 또 이 책은 미술을 사랑하는 감성적인 여인 '프란체스카'가 물리학과 수학 서적을 좋아하는 이성적인 남친 '파울로'를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한 박물관으로 이끌면서 시작되는데, 이 둘의 대화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문학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리학적 개념과 명화의 주제를 연결시키려다 보니 다소 끼워맞춘 느낌이 드는 곳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 배운 가장 확실한 한 가지는 물리학에 철학적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첫 번째 강의는 움베르토 보초니의 <동시적 착상>을 통한 "분리하면서 포착하기"입니다. <동시적 착상>은 "높은 빌딩의 발코니에서 몸을 밖으로 내밀고 수천 개의 얼굴을 가진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화가는 이 그림을 통해 "무질서하게 펼쳐지는 수많은 형태, 소리, 색들의 미로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의 시선에 한계를 설정하고 정확한 지점 하나를 선택해서 대상을 바라보아야 하 필요가 있다"(18)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리학도는 이 그림이 "물리학이 시작되는 순간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그림"(18)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거야. 세상을, 그 속에 살면서도 마치 바깥에서 보듯이 총체적으로 이해해 보고 싶었던 것이 옛날 철학자들의 꿈이었지. 물리학은 철학의 한 계열 학문으로 탄생했어. 소위 자연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이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면서 시작되었지"(18).

물리학의 철학적 측면은 2강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을 통해 보다 분명히 드러납니다. 저자는 파이프를 그려놓았을 뿐 파이프는 아니라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통해 물리학의 모델이 가진 의미를 설명합니다. 물리학은 그 자체로 철학의 한 줄기이기도 하지만, 물리학이 철학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에 담긴 32가지 물리학 강의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라바조의 <바울의 회심>을 통한 "잘못된 점을 고칠 줄 안다는 것"과 지오토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를 통한 "우주선(宇宙線)"이라는 강의입니다. 저자는 <바울의 회심>이라는 작품을 통해 물리학의 한 역사를 설명하는데, 굉장히 인상적인 강의였습니다. 저자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그림은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어. 동시에 기독교의 역사, 그러니까 세계의 역사가 뒤바뀐 순간을 아주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림이야. 이전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그런 순간을 그린 거지"(62). 그리고 물리학자 플랑크의 이야기를 대입합니다. 전통 물리학이 가지고 있는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플랑크가 그 전통 물리학에 위배되는 실험 결과를 손에 쥐고 전통 물리학의 개념과 부정할 수 없는 새로운 실험 결과들의 일치점을 찾기 위해 절망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딜레마를 이야기합니다(67). 말 위에서 떨어진 바울처럼, 플랑크도 그가 올라타 있던 전통 물리학의 개념에서 미끄러 떨어진 것입니다. 결국, 플랑크는 전통 물리학을 전복시키는 새로운 가정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이 순간이 물리학의 개종과 같은 획기적인 순간이었다고 표현합니다. 

<명화로 보는 32가지 물리 이야기>는 굉장히 독특한 물리학 강의입니다. 물리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독자들가 읽어야 그 맛과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듯합니다. 이 책이 가르쳐주는 것을 깊이 있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물리학의 철학적 측면이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멋진 강의였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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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
앤디 앤드루스 지음, 김미진 옮김 / 36.5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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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순간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무 할 일이 없어 막막했던 적이 있으십니까? 저에게는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다음날 아침, 눈을 떴는데 갑자기 밀려왔던 그 아득한 느낌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눈을 떴으니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전쟁을 치루듯 잠에서 깨어 학교로 달려갔었는데, 이젠 아침이 되어도 가야 할 곳이 없었습니다. 진학 문제로 아버지와 갈등하며 스스로 대학진학을 포기했을 때까지만 해도, 졸업식이라는 목표가 있었던 방학 기간까지만 해도, 내게 이런 아침이 닥쳐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분명 내가 한 선택이었는데 그렇게 한순간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에는 저마다 인생 최악의 시기에 처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막막한 순간에 그들을 찾아오는 한 노인이 있습니다. "존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 노인은 사람들을 찾아와 말을 겁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그게 전부입니다. 대화. 그게 존스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신기하게도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생각 하나를 바꿨을 분인데 인생 최악의 날이 어느새 인생 최고의 날이 되어 있습니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의 저자이기도 한 앤디 앤드루스는 동화 같은 자기계발서를 쓰는 작가입니다. 출판계의 전문가들도 그의 책을 분류하는데 난항을 겼었다는 그의 증언처럼 자기계발서라고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문학 작품처럼 읽힙니다. 한 편의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다 보면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작은 파문으로 시작하지만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것입니다. 그의 책에 쏟아지는 찬사가 그 증거입니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에서도 그랬지만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은 사소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소함이 위대함을 결정하는 힘이라는 것, 그것을 깨닫는 것에서 특별한 인생이 시작됩니다. "누구나 큰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하지만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작은 것을 무시하다 보면 나중에 그 작은 것들이 훨씬 다루기 어려운 큰 것이 되어 있다네. (…) 자네는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 세상에 작은 붓질을 하며 살고 있어. 그 작은 붓질 하나하나가 모여 자네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형상화해 나가는 거야"(23).

존스를 만난 사람들이 존스와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특별한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비결은 하나입니다. 관점을 바꾸는 것! "관점이란 제가 어떤 상황을 어떻게 선택해서 보느냐 하는 거지요"(167).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갑자기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이 최고의 상황으로 역전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당장 이 책을 펼쳐 드세요.

한 가지만 살짝 공개를 한다면, 메리 챈들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메리 챈들러는 중산층 가정의 사랑 많은 부모 밑에서 무남독녀로 자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그런데 존스가 찾아와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신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이상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의 마음은 불편해지고 무너져내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감정의 골이 깊어져 관계가 소원해진 어머니가 지금 알츠하어머 병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리 챈들러는 온전한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것밖에 못하는 어머니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은 잔인하고 흔히 않은 형벌이에요. 어머니는 이제 살아 계실 이유가 없어요. 아무 목적도 없으세요. 의사들은 어머니가 건강하시다고 말하지만, 왜요? 그건 잘못된 거에요.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돼요. 하나님은 불공평하세요" (…)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이 공평하셨다면, 어머니가 돌아가실 수 있게 … 평화롭게 고통 없이 돌아가실 수 있게 해 주셨을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더는 아무 목적도 없이, 아무 의미도 없는 하루하루를 연장하고 계세요. 그런 정말 잔인한 짓이에요"(179). 알츠하이머 병으로 사실상 뇌가 정지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어머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것밖에 못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이승에서의 삶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한 가지라도 찾을 수 있을까요?

존스와의 대화를 통해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는 메리 챈들러의 관점이 바뀌는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메리 챈들러가 기대해 본 일도 없고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삶의 새로운 방향과 궤도가 새로운 목적을 갖고 펼쳐진 순간이었다"(186).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이 전하는 메시지는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인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내일의 나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특별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그리고 그의 전작들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만의 특별한 방식 때문입니다.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누군가 인생 최악의 시기에 처하여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을 충전해주고 싶다면 이 책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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