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유기견을 입양하다 에프 그래픽 컬렉션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말라 프레이지 그림, 신형건 옮김 / F(에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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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변장한 하나님이다.

이 책은 마치 이런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이웃들은 모두 변장한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처럼 '저 높은 곳에 존재하는 신령하고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즐기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느님, 유기견을 입양하다>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일상을 즐기는 다양한 하느님이 등장합니다. 잠에서 깨 커피 한 잔을 들고 사과나무 밑에 앉아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다가 퍼뜩 행복하다고 느끼는 하나님, 미용 학교에 갔다 네일케어에 푹 빠진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그분은 언제나 손을 좋아했고, 새들의 날개만큼이나 섬세한 손가락 뼈마디에 감탄을 하곤 했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또 보트를 타고 물 위에서 보는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하나님,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 하나님, 일주일 동안 오직 케이블 티브이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가 카드 한 벌을 가지고 찾아온 천사 가브리엘과 4주 동안 줄곧 포커를 치는 하나님, 좋아하는 컨트리 음악 가수에게 팬레터를 쓰고, 길 잃은 개를 입양하는 하나님도 등장합니다. 그분도 누군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고, 휴식이 필요하고, 밤에도 자신의 발을 따뜻하게 해 줄 존재가 필요하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하느님, 유기견을 입양하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닮은꼴이라는 사실이 아닐까요? 모든 생명,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는 창조론에서 보면,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신)과 닮은꼴로 만들어졌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저자는 평범한 이웃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찾아내었고, 그렇게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변장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듯합니다.

어렸을 때, 제게 중요했던 질문 하나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였습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 저 광활한 우주 속 어디? 우리의 마음속에? 늘 그것이 궁금했었는데, 이 책은 하나님은 바로 내 옆, 내 삶 속에 계시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습니다. 잠에서 깨 사과나무 밑에 앉아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다가 퍼뜩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좋아하는 일을 만났을 때, 아름답다고 느낄 때,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을 때, 삶의 환희를 느끼는 순간에, 누군가를 위해 화를 주체할 수 없을 때, 돌봄을 통해 돌봄을 받을 때, 이러한 순간에 우리 곁에 계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느님, 유기견을 입양하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으며,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깊은 감동이 튀어나오며,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감상이 가능한 책입니다. 당신이 읽는다면,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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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인문학이다 - 설교자의 그릇 키우기
김도인 지음 / 두란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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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들리는 설교를 하셨다(36).

<설교는 인문학이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들리는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청중에게 들리지 않는 설교는 "청중을 무시하는 설교"요, 이런 설교는 "청중에게 무시를 당한다"(55)는 일갈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실제로 '들리지 않는 설교' 때문에 출석이 반토막 난 교회를 보았습니다. 명문대 출신인데다 박사학위도 있고 평소에는 말도 꽤 잘하는 분이신데, 그분이 강대상에만 서면 교인들은 도무지 무슨 설교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들리지 않으니 설교를 듣는 것이 고통이라는 호소까지 나왔습니다.

설교는 신학과 문학의 연결이다(16).

청중에게 들려지는 설교를 하라는 것은 소통하는 설교, 다시 말해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교를 하라는 요청이기도 합니다. 설교는 하나님과 청중의 마음을 연결시켜 주는 작업인데, 많은 목회자들이 청중은 도회시한 채 성경을 해석하는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위해 설교는 인문학의 옷을 입어야 하며, 설교자들에게는 인문학적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인문학적 훈련이라 함은, 인문학적 독서에 힘쓰고, 논리력을 키우고, 설교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으로 반전을 주거나 엇박자 문장을 만드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흔히 무엇인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많이 해보는 것이 최고라고 합니다. 그런데 설교만큼은 무조건 많이 한다고 해서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더 좋은 설교, 들려지는 설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방향을 잡아주는 키와 같은 역할을 해줍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을 읽는 훈련(하나님의 마음 읽기, 성경 본문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마음 읽기, 설교를 듣는 청중의 마음 읽기)을 하라는 가르침에서 많은 유익을 얻었습니다. 잘 들리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과 마음과 청중이 연결되는 일이 더 많아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합니다.



설교의 내용은 신학이다.

그래서 바른 성경해석을 해야 한다.

그다음엔 청중이 설교를 들을 수 있도록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청중에게 들리도록 하는

일련의 작업인 인문학으로 옷을 입히는 것이다.

- 김도인, <설교는 인문학이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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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예수 - 이슬람, 공존과 평화를 위한 기도
타리프 칼리디 지음, 정혜성.이중민 옮김, 박현도 감수 / 소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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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무슬림 예수>는 "이슬람 문학(경전과 고전) 속에 나오는 이사(<꾸란>에 나오는 예수의 아랍어 이름)의 어록과 이사 관련 이야기를 모은 것"(4)입니다. 다시 말해, 이슬람 문학 속에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예수의 말씀과 이야기를 모은 책입니다(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예수에 관한 스토리나 행적보다 예수의 어록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을 "무슬림 복음"이라고 부릅니다(13). <무슬림 예수>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슬림도 예수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모아 서구 독자에게 내놓는 이유는 아랍 이슬람 문화권 밖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슬람의 예수 이미지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예수를 대단히 존경하지만 그 신성은 인정하지 않는 종교 전통에서는 예수를 어떻게 이해했을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은 예수의 흥미로운 모습을 전해줄 것이다"(13).

독자들은 <무슬림 예수>를 통해 <성경>의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와 상당히 닮은 듯하면서도 또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예수의 초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이 책(자료)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에 역사적, 신학적 차원에서 화해를 도모하는 데에 유효적절한 자료가 되리라 확신합니다(17).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공통점이 많아도 결정적인 하나의 차이가 기독교와 이슬람의 사이를 영영 갈라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꾸란>은 십자가형을 부정하고 유대인이 실제 예수를 죽였다는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가 하나님께 승천한 일이 예수가 예언자임을 증명해준다"(28)고 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승천했다는 이슬람의 주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성경과 극명하게 대립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뿌리요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꾸란>은 예수의 수난보다는 신비로운 탄생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31)는 것입니다.

<무슬림 예수>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화해를 도모하고 있는데, 저는 오히려 이 책을 통해 둘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확인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가 우리의 구원자(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모든 족속에서 예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은 제게 무슬림과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할지를 알게 해주는 중요한 단초가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무슬림이 전하는 예수가 아니라, 무슬림이 이해하고 있는 예수를 통해 무슬림을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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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기술 - 단단하지만 홀가분하게 중년 이후를 준비한다
호사카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상상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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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기술!

요즘 거리에 서서 건물들을 올려다 보면, '요양원'이 없는 건물이 없을 정도로 요양원이 많이 보입니다. 제가 일하는 건물에도 2개층이 치매 환자를 위한 '요양원'입니다. 주말이면 면회를 오는 가족들로 북적거리지만, 평일에는 아무 할 일 없이 누워 계시는 어르신들을 뵈면 (너무 죄송스럽게도) '소망이 없는 삶'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 '나이 듦'에 관하여 절로 생각이 많아집니다.

최근에 나이 듦에 관하여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다른 한 권이 '나이 듦'에 관하여 개념적 사고를 전환시켜 주는 책이라면, 이 책 <나이 듦의 기술>은 정신신경과 의사로 일해온 저자가 노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지혜를 전하여 주는 자기계발서입니다.




<나이 듦의 기술>은 아주 전형적인, '일본스러운'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십계명처럼 메시지를 요약한 목차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목차만 읽어도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여러 모로 "읽기 편한 책"입니다. 그렇다고 목차만 읽어서는 설득력이 없겠지요? ^^ 내용도 보통 2페이지 정도이고, 아무리 길어도 3페이지를 넘지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으며 '나이 듦의 기술'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전하는 <나이 듦의 기술>은 작은 생각의 변화, 작은 행동의 변화들입니다. 그러나 작은 생각 하나, 행동 하나가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는 실천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일 것입니다. 이 책이 가르쳐주는 노하우 중 인상적인 것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지간한 일에는 감격하지도 않고, 설레는 일도 별로 없는데, 노년을 즐길 수 있는 노하우 중 하나는 별것 아닌 일, 너무나 당연하게 지나치는 일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의식적으로 재미있어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무엇 하나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살아내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무사 신사쿠의 말을 전하며, "텔리비전 단어 퀴즈 프로그램을 보며 마음속으로 참여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일러줍니다(30).

적어도 자기만큼은 자기를 좋아해줄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도 매일이 즐거워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권하며, "이런 일에 서툴다면 아침에 일어나거나 밤에 자기 전에 스스로를 칭찬해주는 일을 일과로 삼아보자"(39)고 조언합니다.

<나이 듦의 기술> 중에 가장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일기 쓰기'입니다. 하루에 하나 새로운 발견이 노화를 막는다고 말하는 저자는 일기 쓰기가 매일 그 날이 그 날 같은 무료한 일상에서 "새로운 일이나 대상과의 만남"(42)을 놓치지 않고 찾아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습관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답답한 일상을 좋은 일이 가득한 날로 바꿔주는" 마법의 일기 묘책도 하나 일러주는데, 그 묘책은 바로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고 일기의 첫머리를 시작하는 것(47-48)입니다.




이 책은 이 밖에도 다양한 <나이 듦의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습니다. 목표 숫자가 있으면 흥미가 계속된다, 상대방을 '주연'으로 받들며 대하라, 가장 빠르고 쉬운 기분 전환법은 집 정리라는 조언도 열심히 챙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 하나는, "운명에 행복한 복수를"이라는 챕터였습니다. 거기에 보면 당뇨병 합병증으로 하루걸러 투석을 받아야 하는 지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 지인은 운명을 불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즘은 투석을 하는 사람도 여행을 다니며 살 수 있어"라며 오히려 밝다. '투석까지 해가며 살아있으니 남들보다 2배는 즐겨야 공평하지 않나?'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223). "아무리 괴로운 운명이 엄습해와도 그 안에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운명에 대한 복수"라는 것입니다.

<나이 듦의 기술>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나아가 인생 2막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여러 비법들을 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끝이 좋아야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우리 인생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 덕분에 마음가짐 하나가 운명에 행복한 복수를 하고, 인생의 끝을 더욱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이전 보다 조금 더 눈이 떠진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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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신학 - 당신의 소명을 재구성하라
폴 스티븐스 지음, 박일귀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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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생활의 성공 여부는

대부분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달려 있다.

- 폴 투르니에

70대의 생을 살고 계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이듦'과 '은퇴'에 관해 정확하게 정반대의 경험을 하셨습니다. 환갑을 맞이했을 때, 거듭된 사업의 실패로 모든 것을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으셨던 아버지는 오히려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환갑에 새롭게 소명을 발견하신 아버지는 야간 고등학교부터 다시 시작하여 학사, 석사,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시고 남들 다 은퇴하는 70대에 은퇴가 없는 대학교수가 되셨습니다. 아버지를 보면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이와는 반대로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하루도 쉴 새 없이 꾸준히 섬기셨던 봉사 단체에서 은퇴하시며 멀리 이사를 하는 바람에 꾸준했던 일과도, 오랫동안 함께 했던 친구들과도 이별하시고 우울한 노년을 맞이하셨습니다. 노년에 더 바빠지신 아버지 때문에 더 외로움을 느끼셔서 어머니의 우울이 깊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많이 써야 했습니다.

이제는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수명이 길어지는 바람에 '나이듦'과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온 사회를 덮고 있는 듯합니다. 오래 사는 것은 분명 축복이지만, 젊음과 건강이 이상화되고 우상이 된 사회에서 '나이듦'은 저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노인들은 "허약하고, 아프고, 무기력하고, 수동적이고, 성욕이 없고, 외롭고, 사랑받지 못하고, 배울 능력이 없고, 짐스러운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10)습니다.

<나이듦의 신학>은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은퇴라는 개념이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21)는 것을 일깨우며, 은퇴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도록 돕습니다. '나이듦'을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적 측면에서 노년기를 새로운 모험과 축복으로 여길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신학'이라는 제목이 붙인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듦의 신학>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이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은퇴를 재구성하도록 돕습니다. "우리는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은퇴하면 그동안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던 소명도 끝이 나는가? 아니면, 은퇴에 대해 다시 정의해야 하는가?"(7)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소명 찾기를 통해 어떻게 남은 생애 동안 계속 '일'을 즐길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2부에서는 영성이란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께 응답하는 훈련"(97)이라는 측면에서 나이 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영적 훈련이나 영적 여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3부에서는 다방면의 유산 남기기를 통해 어떻게 죽음과 다음 세상의 삶을 준비할 것인가를 논의합니다.

<나이듦의 신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한 가지는 노년은 가능성이 풍부한 인격 형성기로 "인생의 어리석음을 버리고, 자기 기만을 간파하고, 이해심과 공감 능력이 깊어지고, 정직함의 지평이 넓어지고, 공정성에 대한 감각이 한층 성숙"해지는 시기라는 것입니다(8). 노년의 지혜로 젊은 사람들을 훈련하는 멘토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생각하면, 분명 노년기는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백 년을 살아보니>를 쓴 노철학자 김형석 선생님은 70세가 넘은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깨닫게 되는 지혜가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젊음과 건강이 우상이 된 우리 사회에는 노년기는 우울하고 쓸쓸한 시기라는 인상이 강한데, <나이듦의 신학>을 통해 '나이듦'과 '은퇴'에 대해 우리의 인식을 환기시키고 새롭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 자체가 노년의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매 장마다 개인과 그룹으로 스터디가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회나 단체의 소그룹 교재로 사용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 책을 지혜롭게 활용한다면 노년을 '위한' 사역에서, 노년에 '의한' 사역으로 지평을 넓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늙어가는 법을 배우는 것은 지혜의 명작이며

최고의 인생 기술이다.

- 앙리 아미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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