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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손 도장 - 2010 대표에세이
최민자 외 49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나를 구원하기 위해 수필을 읽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물신(物神)이다"(5). 말을 바꾸면, 우린 지금 물신을 섬기며 살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하등 부끄러움도 없이 새해 벽두의 덕담으로 ’부자 되세요’를 나누며"5) 사는 세상에서 경쟁에 지치고, 걍퍅해지는 마음을 치유하는 해결책으로 <하느님의 손도장>은 수필 쓰기를 권한다. 그리고 2009년 격월간 <에세이스트>에 실린 그들 중에, 이렇게 50편의 수필을 엄선하여 책으로 엮어내는 것은 수필을 읽자는 권고일 것이다.
아무나 책을 내고, 아무나 수필가는 아니겠지만,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큰소리치며 나도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현실에서 겪어내기에는 누추할지라도 나의 일상도 이렇게 글로 담아내면 소중하게 느껴질까. 다른 이의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읽으니,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던 나의 하루도, 나의 추억도, 다시 태어날 것만 같다. 수필을 통해 만나면, 텔레비전을 보면서 멸치를 까는 일도, 녹슨 하모니카 하나도, 동네 미용실에서 만난 배꼽티를 입은 아가씨도 특별하기만 하다.
인생을 몰랐을 때(?)는 수필을 잘 읽지 않았다. 잔 재미는 있었지만 어쩐지 가볍고 시시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간을 아껴 치열하게 살았던 시절에는 수필을 읽는 일조차 낭비로 여겨질 뿐이었다. 시시껄렁한 남의 이야기 읽을 시간에 대신 거창한 내 삶의 족적을 남기자는 나름 야심찬 결의가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보내드리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되고, 열정에 들떴으나 불안하기만 했던 20대가 부러워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보이는 것 같다. 글은 참 힘이 세다. 그런데 정말 사람을 바꿔놓는 글의 힘은 글의 진정성과 진솔함을 느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작용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모두가 옳다고 믿으며 걷는 그 길에서 이제는 진정으로 비켜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병실에 누워 창밖에 펼쳐진 별따라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간절함을 읽고, 쉰이라는 나이와 마주한 시간이 뭉친 통증을 느끼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즐기시던 잔치국수 한 그릇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 대접해 올리지 못한 딸의 눈물을 읽으며, 나는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닦았다. 성공하기 위해, 자랑하기 위해 치열하게 읽어댔던 그 냉냉한 독서에서 벗어나, 초라한 내 삶을 따뜻하게 보듬는 작업이었다. 남들이 우러르는 거창한 족적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은 소망이 이슬처럼 송글송글 마음에 맺힌다. <하느님의 손도장>은 내 마음에 감사의 그릇 하나를 남겨 주었다. 그 그릇에 지금 소망의 물이 고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