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기욤 뮈소 지음, 김남주 옮김 / 밝은세상 / 2008년 10월
장바구니담기


에단은 마구 소리라도 질러 카메라맨을 쫓아내고 싶었지만 괜한 시빗거리를 만들게 될까봐 단념했다. 지금 당장 그가 바라는 건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있는 것이었다. 커튼을 내리고 죽도록 퍼마시고 싶었다. 보드카로 뇌를 씻어내고 환각상태에 빠져들어 일시적이나마 포근한 느낌, 보다 편안한 느낌을 만끽하고 싶었다. 셀린이 여전히 그를 사랑해주는 곳, 골판지 상자 속에서 한뎃잠을 자는 사람들이 없는 곳, 폭탄을 장착한 차량이 거리에서 폭발하지 않는 곳, 만년설의 정상이 시시각각 녹아내리지 않는 곳, ‘캔서Cancer’가 암이 아니라 그저 별자리 중 하나인 ‘게자리’인 그런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68쪽

"우리가 살고 잇는 지구에서 하루에 약 삼천 명이 자살로 죽어갑니다. 그러니까 삼십 초마다 한 사람씩 자살하는 셈입니다."
30초마다 한 사람씩 자살하다니? 자, 한번 세어보자.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한 사람이 자살하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또 한 사람이 자살하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또 한 사람이 자살하다.
정말 놀라운 속도 아냐?-76~77쪽

"운명의 완강한 흐름에 맞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해진 죽음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듯입니다."
커티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에단은 너무나 기가 막혀 뭐라 반박하는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눈을 들어 택시의 백미러에 걸어놓은 묵주를 쳐다보았다. 은과 자개로 된 묵주가 앞 유리를 배경으로 백미러에 매달려 있었다.
"운명에 맞서 싸우려드는 건 헛된 망상일 뿐이죠."-81쪽

"당신은 정말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운명에 의해 정해져 있다고 믿습니까?"
에단이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물었다.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시간이란 책의 낱장과 흡사하니까요. 우리가 육십육 쪽을 읽고 있을 때, 육십칠 쪽과 육십팔 쪽은 이미 쓰여 있습니다."
"그럼 우연이 맡은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죠?"
커티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 생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우연이 바로……신이죠. 그래요, 우연이란 잠행하는 신입니다."
"그럼 인간의 자유의지는 뭡니까?"
"인간이 자유의지라고 믿는 건 허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 허상에 중독되어 운명이 결정한 사태에 맞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착각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도 말이죠.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까? 운명의 신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사람이든, 악착같이 괴롭히는 사람이든 결국 똑같다는 생각 말입니다."-82~83쪽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산다는 건 곧 위험을 무릅쓰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란다."
"위험을 무릅쓴다고요?"
제시가 물었다.
(중략)
"실패와 고통, 손실을 무릅쓰는 위험 말이다."
제시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잠깐 동안 생각하는 듯했다.
에단은 아이에게 더욱 설득력 있게 보이고 싶어 하며 말을 이었다.
"행복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을 경험해봐야 하는 거란다. 인간은 불행에 저항하는 노력을 통해 행복을 쟁취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쉽죠."
아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한마디 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분명한 사실이란다."
"그럼 아저씨는요? 아저씨는 지금 행복해요?"-218쪽

"어릴 때에는 자기 부모에게 장점만 있다고 믿고 맹목적으로 사랑하지. 조금 자라면 상상한 것만큼 그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이 가끔 실망시킨다는 이유로 부모를 미워하기도 하지. 하지만 좀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부모의 결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단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결점을 갖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건지도 모르지."-223쪽

"당신은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시노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한 가지 가르쳐 줄까요? 싯다르타 선생의 생각과는 달리 분노란 곧 생명력이죠."
"당신이 언젠가는 평화를 찾기를 바랍니다."
"난 평화 따윈 원하지 않아요. 난 줄곧 전쟁을 벌일 거요. 전쟁은 투쟁이고, 투쟁을 멈추면 인간은 죽는 거니까."
한 순간 두 남자는 주먹다짐이라도 할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윽고 에단은 고개를 돌리고 서글픈 눈길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지만 구름 너머 어딘가에 분명 있으리라.-28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라비안나이트 4 아라비안나이트 4
리처드 F. 버턴 영역, 김하경 편역 / 시대의창 / 2006년 7월
구판절판


"인색한 성자보다는 인색하지 않은 죄인이 더 낫다"-102쪽

"명예와 영광, 영토와 왕궁, 재보와 모든 걸 손에 쥐고 있는 칼리파인가, 아니면 무도한 폭군 마르완 총독인가, 아니면 굶주린 배를 움켜쥔 빈털터리 아라비아 인인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그러자 스아드는 그 자리에서 노래를 지어 불렀다.

궁핍과 배반에 울고 누더기를 걸친 이야말로
내 뜨거운 핏줄이 닿은 누구보다 그리운 사람.
왕관을 쓰신 임금님보다도, 총독 마르완보다도,
세상의 권세나 재물을 차지한 어떤 사람보다도.

스아드는 이어서 말했다.
"저는 무상한 운명의 놀림거리가 되고 부실한 운명에 시달릴지라도 결코 남편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우리 사이는 오래된 애틋한 정과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엉켜 있고, 더욱이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시절에 기쁨을 나눴듯이, 부디 불행한 시절의 고난도 함께 나누도록 허락해 주십시오."-117~118쪽

사람들 저마다 가슴 속 생각은 비슷해도
정작 그 하는 일은 저마다 천지차이라네.
개중에 현자가 있으면 바보도 있으리니,
빛을 잃어 뿌옇게 흐린 별이 있는가하면
밤 깊을수록 영롱하게 빛나는 별도 있네.-15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7월
절판


‘잠들기 전, 귀찮은 일 한 가지를 정하라.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그것을 해치워라. 벌써 한 가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스스로 놀라게 될 것이며, 또 이를 통해 그날 하루 에너지와 활력을 얻을 것이다.’-26쪽

훗날 사람들이 ‘브랑엘 가의 기적’이라고 부르게 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열일곱번의 기절 끝에 나는 벌떡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 72시간에 걸친 대청소, 그리고 3년치 세무신고서도 말끔히 작성한다. 내게도 가능하리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에 대한집착을 끊기 어려울 완벽한 극한체험이었다. 그렇다, 기적은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진정으로 원하기만 하면 기적은 반드시 이루어진다.-38~39쪽

시는 고통과 대적하는 나의 무기다. 그러나 이번에는 별 효과가 없다. 그렇다면 앓는 소리를 하는 수 밖에……. 하지만 최대한 위엄을 지켜야지. 미모사처럼 신경을 곤두세우지도, 어린아이처럼 엄살을 피우지도 말고.
앓되 남자답게, 앓는 소리도 남자답게.
"아야아, 아 우, 아 우, 아이 고고고, 나 죽는다."
위엄 지키기는 결국 실패했다.-41쪽

이렇게 해서 절대절명의 순간 게으름이 내 목숨을 구한다. 이 경험은 우리 같은 무력한(無力漢), 나태한 씨들을 차마 눈뜨고 못 보는 이 시대의 지나치게 활동적인 사람들이 반드시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적시에 구사하는 건강한 무기력은 황금이다.-56쪽

「My Generation」은 적어도 세 번쯤 반복될 것이며, ‘Hope I’ll die, before I get old’ 대목에서는 컴퓨터로 합성된 커트 코베인이 나타나 절절한 목소리로, ‘그대들 언제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나? 그대들 젊은 날의 꿈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가슴을 열어 결단을 하라’고 다그칠 것이다.-18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장바구니담기


"교도관 그만두시고 이번 일도 끝나면 뭘 하실 생각입니까?"
"빵집을 할 거야."
"빵집?"
준이치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난고를 쳐다보았다.
"이전엔 한 말 잊었나? 본가가 빵집이었다니까."
난고는 웃었다.
"빵만 파는 게 아니라 케이크랑 푸딩도 내놓고 아이들이 즐겨 찾는 가게로 만들 거야."
준이치도 즐겁게 웃었다.
"가게 이름은 뭘로 하실 겁니까?"
"난고 베이커리."
"좀 딱딱하지 않아요?"
"그런가?"
난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뺨에 바닷바람을 느끼며 물었다.
"남쪽 바람을 영어로 뭐라 하지?"
"사우스 윈드요."
"그거야, 사우스 윈드 베이커리!"
"좋은 이름이네요."
준이치와 한데 웃으며 난고가 덧붙였다.
"식구를 다 불러들여서 빵집을 차린다! 그게 지금 내 소박한 꿈일세."
-113~114쪽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쪽부터 듣고 싶나?"
"네? 그럼 좋은 소식부터."
"우리 작업이 벌써 반이나 끝났어."
"나쁜 소식은요?"
"우리 작업이 아직 반밖에 안 끝났어."
-140쪽

"자, 슬슬 준비합시다."
160번은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으나 이윽고 "예." 하고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7년이나 사형 확정수와 함께 지내 온 담당 간수가 참다 못해 울기 시작했다.
160번도 슬픈 듯 시선을 떨구었으나 이윽고 신부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신부님, 고백 성사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신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 꿇은 사형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제단 위의 십자가를 등지고 엄숙한 어투로 말했다.
"당신의 평생에 걸친 죄, 전능하신 하느님을 거역한 것을 회개 합니까?"
"네."
"나는 너의 죄를 사하노라."
그 신의 말씀을 듣고 난고는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160번이 범한 죄를 신은 용서했으나 인간은 용서하지 않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아멘."
160번은 복창하며 가슴 앞에 성호를 긋고 일어섰다.-188~18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라비안나이트 3 아라비안나이트 3
리처드 F. 버턴 영역, 김하경 편역 / 시대의창 / 2006년 7월
구판절판


꿀보다도 단 것은 효자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 칼보다도 날카로운 것은 사람의 혀, 독보다도 빠른 것은 시기하는 자의 눈초리, 일순간의 환희는 성교, 사흘간의 만족은 여자가 사용하는 탈모제, 가장 즐거운 날은 장사에서 이익을 본 날, 일주간의 기쁨은 신부, 천하의 악질적인 채무자라도 피할 수 없는 빚은 죽음, 묘의 감옥은 불효자식, 마음의 기쁨은 순종하는 아내, 영혼의 함정은 말대꾸하는 노예, 살면서도 죽은 것은 가난, 훔쳐도 지워지지 않는 치욕은 불효여식입니다.-48쪽

"그대는 ‘당신의 나에 대한 자애를 걸고 빈다’고 알라께 말하지 않았나? 알라께서 그대에게 자애를 가지셨는지 아닌지 그걸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오, 속세의 일에 골몰하느라 자기의 영혼을 내버린 양반아, 저리 가시오! 나에 대한 신의 사랑이 없이 어찌 내게 이런 힘이 생기겠소? 신의 나에 대한 사랑은, 신에 대한 나의 사랑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생기는 것입니다."-63쪽

세상만사에는 미리 정해진 때가 있는 법이니,
고난과 번뇌에 빠졌다고 해서 불평하지 마라.
화와 복은 서로 뒤엉켜 늘 함께 있는 것이니,
비탄에 잠길망정 기쁨의 전율도 함께 하리라.
박복한 사람도 언젠가는 축복으로 빛나리니,
인간지사 새옹지마라 일희일비는 다반사라.
-85쪽

명성을 얻으려거든 밤잠도 없이 사서라도 고생해라.
진주를 바라거든 심해의 밑바닥까지 샅샅이 뒤져라.
열정을 바쳐 일해야만 재물도 행복도 손안에 들리니,
아무 고생 없이 명성과 부귀만 높아지길 바라는 이,
허황한 꿈만 헛되이 구하여 목숨만 재촉할 뿐이라네.
-143쪽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복수보다 낫고, 자비는 귀인의 품성입니다."-29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