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순의에 있는 이씨에게 쌀뜨물을 가져다주기 위해 백육십 리길을 왔다 갔다 하고서 겨우 몇 원을 버는데, 저자들은 거저먹기로 저렇게 큰돈을 받고 있었다니, 저게 사람이 할 짓이야? 늑대나 다름없지. 사람 잡아먹는 늑대가 아니고 뭐겠어!" - P357

일단 남에게 빚을 지게 되면 호랑이 등에 타게 되는꼴이 되기 때문에 내리기가 힘든 법이었다. 그는 남들이 돈을 주겠다는 것 역시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것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 P395

큰일을 위해서는 담력이 작으면서도 작은 일을 위해서는 담력이 커지고, 남을 위해서는 담력이 작으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담력이 커진다는 것이 청면수 양지가 분석해낸 조리사 유약진의 본질이었다. - P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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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모노레일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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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터졌다

모노의 아빠와 엄마는 게임광이다. 자연스럽게 모노도 어릴 때부터 게임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유럽을 무대로 기차여행을 하는 '헬로, 모노레일'이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 직원은 단 한 명, 고등학교 절친이자 단 하나 뿐인 친구인 고우창이다. '미스터 모노레일'은 의외로 엄청난 히트를 하면서 모노는 큰 돈을 벌었고 회사는 번창하고 직원도 많아졌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업무에 지친 모노는 여행 겸 새로운 사업구상을 위해 세 달 간 유럽여행을 계획한다. 회사의 업무는 고우창에게 맡기고 홀가분하게 도착한 유럽. 하지만 여행 9일 째 날, 지갑과 여권을 제외한 짐을 날치기 당한다. 그리고 그 순간 한국의 직원에게서 고우창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모노가 아는지 모르는지) 모노를 사모하는 우창의 동생 고우인에게 연락해 보지만 고우인도 오빠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슬슬 사건이 시작된다.


김중혁. 1971 ~ . 한국의 소설가.


세 번째 읽는 김중혁의 소설

그동안 김중혁의 소설은 두 권을 읽었다. 한 권은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라는 장편, 다음으로는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라는 단편집이다. 그런데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미스터 모노레일》마저 그저 그렇다면 김중혁과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소설가와 독자의 연을 끊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앞서 읽었던 두 권에 비해서 《미스터 모노레일》은 훨씬 만족스럽게 읽었다.


고갑수는 '핀볼 성자'다. 핀볼 최고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드게임에서 볼교까지

책의 도입부는 모노(결국 끝까지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내가 못 본 건가?)가 소설을 끌고 나간다. 보드게임을 개발해서 회사를 창립하고 순식간에 부자가 되고.. 사실 보드게임이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국내에서 몇 천개 팔기도 힘든 현실을 생각하면 꼭 만화같다. 마치 훌라후프를 발명해서 거부가 되는 주인공의 인생을 다룬 코미디 영화 <허드서커 대리인>과 비슷한 것 같은 초반 전개를 보여준다.


그런데 모노가 활약해야 부분에서 모노의 친구 아버지인 고갑수가 5억을 들고 유럽으로 튄 이후부터는 내용이 급변하면서 '조금' 만화같던 소설이 '굉장히' 만화같아진다. 고갑수는 움라우트가 붙은 발음이 있는 쾰른에서 발흥한 '볼교'의 신자였으며, 그냥 신도도 아닌 무려 '핀볼 성자'였다. 고갑수가 핀볼 성자인 이유는 핀볼 점수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5억을 들고 튄 이유는 볼교의 교주나 다름없는 '유니볼 성자'를 독대하기 위해서이다.


볼교라고 해서 (처음엔 나도 등장인물들처럼 불교라고 읽었다) 웃고 넘길 수만 없는 것이 나름 네 개의 계급(교주, 행정계급, 성자, 신도)를 갖추고 있고, 예언서 뿐만 아니라 본부와 성지까지 있는 어엿한 단체이다. 게다가 런던아이 지하에는 꼭같은 모양의 비밀 런던아이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데 웃기다. 모든 동그란 것에 거룩함을 부여하고 광신에 빠지는 것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맹목적인 믿음에 빠진 광신도들을 풍자하고 있다.


소설의 결말은 런던 아이에서 벌어진다. 런던아이는 영국 템즈 강변에 있는 대관람차다. 당연히 강바닥에 쌍동이 런던아이 따위는 없다.


실화인 척 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뻔뻔함

몰입도가 좋은 소설을 읽으면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 듯 착각하면서 온통 감정이입을 해서 소설을 읽을 수 있다. 소설을 읽고 나면 감정이 격동되고 마지막에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몰입도가 뛰어난 소설들이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미스터 모노레일》은 다르다. 몰입도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주인공이 성공하는 소재가 보드게임이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된다. 아마도 다섯 명의 고우창 추격자들이 유럽에서 쫒는 모습을 연결지으려 한 것 같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인물들을 보드게임의 말처럼 설명하는 것도 나오고 의도하지 않았던 곳으로 (마치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한 것처럼) 이동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볼교'. 종교라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정상적인 종교라고는 할 수 없다. 좋게 봐줘야 사이비 종교이고, 그냥 종교를 흉내낸 장치일 뿐이다. 기독교라든지 불교라든지 독자가 알고 있는 어떤 종교를 붙여 놓았다면 훨씬 몰입도가 강했겠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게 아닌 것 같다. 종교의 형태와 구성을 모두 갖춘 것 같지만 볼교가 뭐야, 볼교가.. 이건 '날으는 스파게티교'만큼이나 터무니없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전개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독자는 소설에 몰입한다기 보다는 약간 한 발 떨어져서 사건들을 지켜보게 된다.


날으는 스파게티 종교는 기존 종교를 조롱하기 위해서 만든 가상의 종교이지만 나름대로 교리도 있고 신자도 있다.


하지만 김중혁은 마치 볼교가 실제로 있는 것처럼 글을 쓴다. 온갖 조직을 설정해 놓고 성자는 '핀볼 성자', '유니볼 성자' 등 뭐든 둥글기만 하면 성자라고 이름을 붙여줄 기세다. 그런데 이 만화같은 설정의 종교에 임하는 인물들의 자세가 사뭇 비장하다. 핀볼 성자는 교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결국 순교한다. 의외로 권력과 재물을 이용하여 사회를 움직이기도 하고 폭력배까지 동원된다. 만화적 설정과 그 설정 안에서 심각하게 움직이는 인물들. 이 사이의 괴리 때문에 독자는 어처구니없는 헛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런데 김중혁은 이 실화라고 우기는 설정을 뻔뻔하게 밀어 붙인다. 심지어는 '크리스티나 보네티로'라는 인물이라든가 볼교의 핵심 교리를 각주로 달아놓기까지 한다. 나도 멍청한 것이 각주에 속아 실제 그런 사람이 있는지 알고 검색해 봤다. 솜씨좋다.


★★★★☆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은 것이 참 다행이다. 만약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지 않았으면 김중혁이라는 작가의 솜씨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 같다. 다른 작품을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농담같은 비장함이 깃든 소설이 김중혁의 장기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대표작이 뭔지 확인해서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읽기도 어렵지 않고 중간중간 헛웃음짓게 하는 부분도 많은데 쓸데없이 비장하기도 한 질서있게 뒤엉킨 소설이다.


재미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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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만 원의 돈은 그를 대담하게 만들어주었고 그에게 든든한 밑천이되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돈을 잃어버리고 보니 잃어버린 것이단지 돈뿐만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그러한 밑천이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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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사귀려면 낮은 지위에 있을 때 사귀는 것이 더 바람직한 법이다. 높은 지위에 오르면 이미 친구가 부족하지 않거나 더 이상 친구를 운운하지도 않기 때문에 친구가 되려 해도 이미 때가 늦기 마련이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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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100쇄 기념 특별판 리커버)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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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행복한 가족에게 닥친 최악의 불행

매켄지 앨런 필립스(맥)는 어릴 때의 불행을 딛고 내냇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위로 세 명의 아들 존, 테일러, 조시, 그리고 캐서린(케이트)와 멜리사(미시)라는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다. 어느 여름, 매켄지는 조시, 캐서린, 미시를 데리고 왈로와 호수 주립공원으로 캠핑을 간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캠핑 마지막 날, 조시와 케이트가 카누를 타던 중에 카누가 뒤집히는 사고가 나고 맥은 미시와 함께 물밖에 있다가 급하게 뛰어들어 겨우 두 아이를 구해 낸다.


두 아이와 함께 물밖으로 나온 맥. 그런데 아이들을 구하는 사이에 막내 미시가 사라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미시를 찾았지만 미시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고 맥은 불안해 하기 시작한다. 경찰까지 동원된 대규모 수색에도 미시는 찾을 수 없고 공원 관리인이 미시가 트럭에 실려 공원밖으로 나간 것을 목격한 것을 듣게 되어 수색범위는 넓어진다. 최근 인근에서 유소년 여아들이 납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슷한 유형의 연속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듣고 더욱 불안해 하는 맥의 가족.


결국 트럭의 흔적을 쫒던 중 어느 오두막에서 핏자국과 함께 미시의 드레스가 발견되고.. 미시는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연쇄살인범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결론난다. 그로부터 3년 반 후 눈오는 어느날, 집에 혼자 있던 맥은 우편함에서 이상한 편지를 발견한다. 편지의 내용은..


"

매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파파

"


파파는 맥의 아내인 내냇이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었다. 맥은 장난편지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지만 편지의 내용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이 친정에 가있는 어느 주말, 맥은 악몽을 되살리며 그 오두막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맥이 만난 사람은..


윌리엄 폴 영 William Paul Young 1955 ~ . 캐나다 작가.


묘한 소설

특이한 이력을 지닌 소설이다. 작가인 윌리엄 폴 영은 뉴기니에서 활동한 캐나다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독실한 기독교인인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여섯 아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쓴 책이 《오두막》으로 처음에는 열다섯 권만 복사본으로 만들어 나눠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돌려 읽던 사람들이 출판을 권유했고, 자비출판한 이 책은 입소문만으로 밀리언 셀러를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천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처음엔 실화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 도입 부분이 실화처럼 씌여 있다) 실화가 아니고, 읽다 보니 기독교 소설인 것을 알게 됐다. 그것도 굉장히 노골적인 기독교 소설이다. 하나님이 나오고 예수와 성령까지 등장한다. 예수가 직접 등장하는 소설은 조반니 과레스키가 쓴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오두막》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소설 속 배경인 왈로와 호수. 주립공원으로 오리건 주에 있다.


헉! 이게 뭔 소설이야?

맥이 아이를 잃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이 책의 중심내용이고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일텐데.. 맥이 오두막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세 사람이 맥을 기다리고 있다. 엘루시아라는 흑인 여성, 죠슈아라는 아랍 남자, 사라유라는 아시아 계열 여자. 이 세 사람은 맥을 보고 굉장히 반가워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맥을 초대한 파파라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실화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이 부분에서 실화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만약 실화라면 정신병자나 광신도(결국 같은 범주겠지만)의 이야기일테니.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우화.. 뭐 그런 것도 괜찮다. 앞에서 말한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에서도 예수가 돈 까밀로 신부와 대화하면서 어루만져 주고 깨우쳐 주고 했으니까.. 그런데 《오두막》은 좀..


막내 미시는 살해되고 시신도 찾지 못한다.


위로가 아닌 강요와 교리문답 투성이 소설

결론적으로 맥을 초대하고 오두막에서 만난 세 사람은 사기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맞다. 그것도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하여 세 명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인종과 성별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는지 성부와 성령은 여성의 모습으로 성자의 모습은 남성으로 설정했고 인종 역시 제각각이다. 여기까지는 우화의 한 형태로 인정해 줄만하다.


그런데 세 명의 신이 맥을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들이 엉뚱하다. 위로가 아니라 교리 강독을 하고 있다. 읽으면서 대충 적어 본 것만 해도 하나님의 성별에 관한 문제, 자유의지론, 삼위일체론, 예수의 신성과 인성, 성육신, 원죄론, 교회론 등을 다루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이 내용들을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딸을 잃은 남자에게 과연 가당키나 한 설명인가? 이게 위로가 될 수 없을텐데.. 작가는 맥의 상처를 보듬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다. 기독교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저항감을 가지는 주제에 대해 설명을 나열한다. 그러니까 맥은 독자 포지션이고 하나님들은 저자의 포지션에서 설명하는 중이다. 이런 정확하지도 않은 교리 강독이 무슨 쓸모가 있지?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가장 민감한 삼위일체론같은 경우, 사실상 교회에서 요한계시록과 함께 언급하면 안되는 금기사항같은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이 확립된 이후 삼위일체에 관한 논쟁은 적대파를 이단으로 몰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리고 《오두막》에 표현된 하나님의 모습은 이단으로 공격받기에 딱 좋다. 즉, 어설프게 교리를 비유로 설명하다 보니 정확하지 않은 교리 지식이 계속 인용되고 있다. 도대체 상실감이 큰 맥을 위로하는데 교리가 필요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책 후면에 추천사를 쓴 목사님들은 이게 전혀 걸리지 않았나? 나는 이단으로 이 책을 단정지으려고 하는게 아니다. 책에 나오는 하나님(들)이 실제로 맥을 위로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기독교 교리 강해를 하고 있는 것이 어처구니 없다는 거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교리가 그다지 정교하지도 않다.


삼위일체론은 기독교에서는 다루는 순간 이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은 민감한 주제인데 소설에서는 너무 쉽게 다루고 있다.

★★

이런 책들이 가끔 있다. 소설이라는 탈을 쓰고 작가가 말하고 싶은 이론을 줄줄 늘어놓는 소설. 사실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로 발표해야 하는 하는 책.. 우리 불쌍한 매켄지의 비극은 그저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억지로 만들어 놓은 비극일 뿐이다. 만일 매켄지가 '제4의 벽'을 뚫고 나올 수 있다면 저자인 폴 영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폴 영이 자신이 만든 인물인 맥에 대해서 애정이 없다고 느꼈다. 단지 계몽되어야 할 무지몽매한 '믿음을 잃은 자' 정도로 생각한 것처럼 보였다.


작가의 이런 태도 때문인지 마지막에 감동을 받아야 할 장면에서도 전혀 어떤 감정의 흔들림도 없었다. 또 마지막에 차사고는 왜 나는 건지.. 사건의 개연성도 없고 의미도 없다. 기독교라는 엄청난 시장을 잡은게 이 소설의 성공비결인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윌리엄 폴 영은 제대로 소설을 쓸 줄 모르는 아마츄어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천 만 명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저 나는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 신앙적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있는 소설이 꽤 많을텐데.. 《오두막》은 아닌 것 같다. 착해 보이는 소설이라고 해서 좋은 소설이 아니다.


별로 추천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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