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의 형제들은 3차 선교 여행을 떠나는 바울을 따뜻이 전송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바울은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기도로 함께 했던 이 귀한 교회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 P258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을 용납한 교회들을 바로잡거나 준비시키는 과정에서 바울의 목회적 열정, 복음을 향한 확신과 헌신, 신학적 명쾌함이 편지 형태의 글로 남아 당시의 교회들은 물론 후대에까지 가르침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에 보낸 서너 편의 편지, 갈라디아서, 로마서가 이런 과정에서 3차 선교여행 때 쓰인 것들입니다. - P259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훌륭한 사역자였습니다. 아굴라가 남편이고 브리스길라가 아내입니다. 2천 년 전 유대 관습으로는 부인의 이름을 먼저 부르는 경우가 아주 드문데, 이 부부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 P263

바울이 에베소에 돌아와 처음 실시했던 사역은 열두 명쯤 되는 성도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일이었습니다. - P269

로마 제국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듯, 소아시아의 모든 길은 에베소로통했습니다. 에베소는 다른 도시로 항시 사람들과 물품이 오가는 곳이었으므로, 바울도 이곳에서 아시아 전체에 대한 전도 전략을 추진했을 것입니다. - P275

고린도교회의 지도자들을 직접 만나 격한 어조로 호통을 쳤습니다. 그런데도 사도의 말을 들을 기색을 보이지 않자 바울은 큰 상처를 입고 급히 에베소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을 ‘고통의방문‘이라고 부릅니다. - P277

바울을 눈엣가시같이 생각하여 결정타를 날릴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데메드리오가 바울을 몰아낼 대대적인 음모를 계획하고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데미 신상의 모형을 판매하는 사업가였습니다. - P279

이 관리가 "바울 일행이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않았는데 붙잡아 폭행을 가하면 어떡하냐"고 말한 것을 보면 오늘날 전도할 때에도 다른 종교의 신을 비방하지 않는 태도가 현명하고, 다른 종교를 비난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 P282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법으로 사는 사람들이지, 모세의 법으로 사는사람들이 아니라고 설득합니다. - P291

다른 서신들에 비해 로마서가 우리에게 특히 보배로운 이유는, 이 속에 복음의 내용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서신들은 얼굴을 맞대고 복음을 전했던 곳에 보냈기에 복음의 내용은 거의 들어 있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이미 다 알 뿐 아니라 믿고 있음을 전제하고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마 성도들은 직접 가르칠 기회가 없었기에, 로마서에는 모든 교회에서 대면하여 가르친 핵심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경계했던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바울을 대면하여 배우지 못한 후대 성도들도 이 로마서에서 가장 많은 유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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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한 문화적 유산과 건축물의 위용에도 불구하고 주후 1세기 초부터 아덴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도시 국가들을 주도하던 헬라의 중심이었으나, 바울 당시에는 그 주도권이 고린도로 넘어가 로마 제국의 변방에 불과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 P213

우상 숭배와 성적 문란은 고린도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 P234

초대 교회에서 복음의 진리를 바로 알고 그 진리 위에 굳게 서서 이방 교회가 유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신학 노선을 확고히 지킨 사람은 바울이었습니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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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행몽移行夢들을 꾸게 되실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고객님이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점입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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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해 보면, 안디옥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아주 특별한 교회였습니다.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외에도 처음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신앙 공동체를 이룬 교회, 처음으로 이방인이 다수를 형성한 교회,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교회, 처음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 헌금을 전달한 교회였습니다. - P83

보통 학자들이 바울을 처음부터 완전한 전도자요, 전략가로 보기도 하지만, 당시 바울은 막 본격적으로 이방 선교를 시작한 선교사로서 지역상황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 P113

가는 회당마다 바울에게 설교 기회가 주어졌던 것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랍비로 알아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P124

루스드라에서 바울의 모습을 지켜보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평생 걸어본 적이 없던 사람을 걷게 하고, 쏟아지는 찬사와 제사를 거부하고,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은 것같이 버려졌으나 다시 털고 일어나 복음을 전하러 다음 도시로 향하는 바울을 지켜본 사람, 바로 디모데였습니다. - P144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오기 얼마 전부터 어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와 안디옥 성도들에게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고 주장하며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 P153

바나바와 동행하지 못하게 되자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실라를생각했습니다. 실라는 예루살렘교회의 선지자였고, 공회 결정문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선발되었을 만큼 사도들의 신망을 두루 받던 지도자였습니다. 게다가 나중에 베드로전후서를 대필할 만큼 헬라어에 능통했고, 실루아노라는 라틴어 이름을 가진 로마 시민권자이기도 했습니다. - P167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다른 지역 사람들처럼 선교사들을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데살로니가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달려와 무리를 선동했습니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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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보다 기독교의 세계화에 더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유대인 신학자 요셉 클라우스너(Joseph Klausner)는 "예수가 없었으면 예수믿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요, 바울이 없었으면 세계 기독교는 없었을 것" 이라고 평가했습니다. - P18

출생부터 순교까지 바울의 삶과 선교 여정을 그의 여행 경로대로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하려면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의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고 비교하여 활용해야 합니다. 가끔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행간을 메워야 하기도 합니다. - P21

격분한 무리가 돌을 들고 스데반을 노려보았습니다. 증인들은 옷을 벗어 사울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이 사형의 집행관임을 암시합니다. - P41

안디옥교회는 교회사에서 이방인들이 다수를 이룬 첫 이방 교회였습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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