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터널 벽을 발톱으로 톡톡 두드리며 내 현미경을 가리킨다. "에이드리언에 있는 어떤 생명체가 아스트로파지를 먹음! 개체 수 균형. 자연의 질서. 모든 것 설명!" - P420

로키는 상대성이론에 대해 듣고 얼빠진 상태가 됐다. 처음 두어 시간은 아예 내 말을 믿지 않으려 들었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그의 여행이 설명된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실하게 증명해 주자 마음을 돌렸다. -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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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다. 내가 방금 외계인을 봤다. 외계 우주선만이 아니었다.
외계의 존재를 봤다. 그러니까. 그의 발톱, 아니지, 손을 본 것뿐이지만. 그래도. - P253

나는 로키에게 허락을 구하는 의미로 그를 돌아본다. 로키는 얼굴이 없기에 표정도 없다. 그냥 그 자리에 둥둥 떠서 나를 지켜볼 뿐이다. 아니, 지켜보는 건 아니다. 눈이 없으니까. 근데 잠깐. 로키는 내가 뭘하는지 어떻게 아는 걸까?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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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와 산소에 마법적인 요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연히 지구의 생명체에는 그 둘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다른 행성은 환경이 완전히 다를 수 있어요. 생명체에 필요한 것이라고는 최초의 촉매를 복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화학반응뿐입니다. 거기에는 물이 필요 없어요!" - P59

"그러니까 페트로바선이 ・・・ 아주 작은 로켓들의 불꽃이라는 말인가요?"
"아마 그럴 거예요. - P79

내가 보고 있는 저 별은.... 저 별은 우리 태양이 아니다.
나는 다른 태양계에 와 있다. - P82

아무튼 이 모든 것의 의미는 한 가지뿐이다. 헤일메리호는 집으로돌아가지 않는다. 왕복이 아니라 편도다. 이 딱정벌레들은 내가 지구로 정보를 보낼 방법일 것이다. - P111

이 항성계에 나 말고도 다른 우주선이 있다. 번쩍이는 빛은 그 엔진에서 나온 것이었다. 저 우주선도 아스트로파지를 동력으로 사용한다. 헤일메리와 똑같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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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성경으로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칸앤메리.박명준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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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번 읽어 본 적 있어?

나는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은 아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간 해부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거의 모태신앙에 가깝다. 철들기 전부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많은 문화적 소양을 교회에서 키웠다. 당시에는 교회가 모든 문화의 첨단을 달리는 곳이었다. 합창도 성가대를 통해 교회에서 처음 해 봤고, 그림도 그려봤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도 교회에서 배웠다. 그리고 성경은 나의 지식을 이루는 근간이면서 기준이었다.


성경은 어린 나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그 영향권 아래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들은 굉장히 흥미진진했고, 어릴 때 거의 활자중독이었던 나에게 성경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화책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차츰 성경이 이상하다는 것을 조금씩 느껴가면서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의문에 대해서 아무도 명확한 해답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롭게,성경 다시 읽기

‘다시, 성경으로’의 저자인 레이첼 헬드 에반스는 나와 비슷한 성장과정을 겪었고,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졌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교회를 떠났다가 성경을 다시 읽게 된 프리랜서 작가이다. 어린 시절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열심히 교회를 다니던 저자는 성경을 깊이 읽으면서 많은 의문점이 생긴다. 하지만 그 의문점을 풀어주는 신앙의 선배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저자를 윽박지르면서 잘못된 신앙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할 뿐이었다. 나와 비슷하다.


성경은 ‘거룩한 책’으로 기독교인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 의심을 갖거나 반박을 하는 것은 신실한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온갖 세대의 사람들이 당시의 문화적 배경과 상황을 토대로 쓴 글들이다. 당연히 그 생각들이 인간의 관점에서 완벽하게 들어맞을 리가 없다. 게다가 성경이 씌여질 당시에는 (기원전 12세기에 모세가 썼든, 기원전 5세기경 바빌론 포로시기로부터 돌아온 사람들이 썼던 말이다) 지금같은 과학적인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연히 과학적 정합성이 떨어지는 글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반구형이고 하늘은 벽같은 느낌이며, 별들은 하늘에 박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배제한 채 읽으면 안된다. 더구나 지금의 과학적인 지식에 끼워맞춰서 성경을 해석하는 창조과학론적인 해석도 터무니없는 짓이다.


저자는 성경을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통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지금의 문화를 토대로 하여 성경을 재해석한다. 이 책의 첫 이야기는 바빌론 포로 시대, 바빌론의 주신인 마르둑의 축제를 즐기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 하는 학개라는 꼬마를 보여준다. 학개의 아버지는 이전에 우리의 고향 예루살렘에는 더 위대한 야훼의 성전이 있었으며, 야훼는 마르둑보다도 더 위대한 신임을 아들에게 알려 준다. 나라를 잃고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유대 민족의 슬픔을 알려 주고, 민족의 정체성을 후대에 전수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성경은 아마도 이런 전수과정에 씌여진 것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성경은 바빌론 포로시절에 씌여지기 시작하여 귀환기에 오경이 완성이 되고, 이후에 성문서와 선지서들이 추가로 완성되었다고 하는 설을 지지한다.


소외된 자와 여성을 위한 성경

저자는 이 책에서 주인공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는다. 소외되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는 인물들에 대해서 기억한다. 특히 지극히 가부장적인 사회인 고대 유대인의 틈바구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는다.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해서 얘기하기보다는 쫓겨났다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다시 돌아온 하갈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리고 하갈이야말로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이름(엘로이, 보시는 하나님)을 지은 사람이라고 추켜 세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지은 하갈의 의도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넘어가자) 그리고 에스더, 크세르크세스라고도 알려진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어 유대 민족을 절멸의 위기에서 구해낸 민족의 구원자 격으로 칭송한다. 그리고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까지. 많은 부분 저자의 애정은 당시에 약자였던 사람들, 특히 여인들에게 향해 있다.


나는 이 점이 이 책을 읽어야 할 가장 큰 가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나?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경을 읽고 있는 걸까?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글자 뜻 그대로 읽는다. 최소한 2,000년, 길게는 3,500년 전에 씌여진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강단에서 우겨댄다. 그리고 그 해석에 따라 비기독교인을 적으로 설정한 후 절멸해야 할 존재로 삼는다. 여자를 남자에게 복종해야 할 존재로 만들고, 남자는 사랑을 주면 된다고 한다. 고아와 과부를 보호해야 하는 공동체의 정신 대신에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당시 사회에서 잘 나갔던 인물들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사회적 성공만을 성경에서 읽어낸다. 성경을 바로 읽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근본주의적인 믿음을 갖고 그것을 그대로 지켜나가는 이스라엘과 이슬람의 분쟁을 보면 종교에서 근본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성경은 그 당시의 문화적 배경에서 당시의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서 씌여진 책이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들은 우리의 문화적 배경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3,000년 전 유목을 하면서 농사를 짓던 중소민족의 지침서가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그 안의 뜻을 다시 파악하여 변용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성경은 성스러운 말씀이 아니라 저주의 주문을 모아놓은 책이 되고 말 것이다.


★★★★☆

저자는 ‘성경이 씌여진 당시의 믿음을 오늘날 우리가 이어받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믿음을 이어받아야지 성경의 글자 하나, 구절 하나를 이어받으면 안된다. 이것은 내가 그동안 해왔던 고민과도 많이 맞닿아 있다. 그리고 내가 내려야 했던 결론을 저자가 먼저 명확하게 내려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다.


책을 읽는 재미도 있고, 지루하지도 않다. 특히 성경을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기존에 성경을 그저 경전으로 생각하고 읽어온 사람이라면 읽어 보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을 쓴 멋진 저자가 겨우 37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버려서 더 이상 그의 재기 넘치는 글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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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속의 비밀 1
댄 브라운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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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위험에 처한 로버트 랭던과 캐서린 솔로몬

노에틱 과학자인 캐서린 솔로몬 박사는 신경과학자인 브리기타 게스네르 박사의 초청으로 체코 프라하에 와 있다. 솔로몬의 애인인 우리들의 주인공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 박사는 솔로몬 박사와 함께 프라하에 왔다. 캐서린은 초청강연을 마치고 자신을 초대한 게스테르 박사와 만나기 위해 연락을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캐서린이 쓴 원고를 보관하고 있는 미국의 펭귄 출판사에서 모든 원고 사본이 사라진다. 누군가 캐서린의 원고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온몸은 진흙투성이면서 얼굴에는 에메트 אֱמֶת라는 히브리어 세 글자를 박아 넣은 골렘 형상을 한 괴물이 도시를 배회한다. 이 괴물은 게스네르 박사가 어떤 여자를 배신했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게스네르 박사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누군지 모를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또 다른 한 편 캐서린이 쓰고 있던 책이 문제가 된다. 미국에 있는 펭귄 랜덤하우스 출판사의 편집장인 조너스 포크먼은 갑자기 회사의 클라우드 서버에 있는 캐서린의 원고가 사라지고 하드 프린트해 놓은 원고도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그 원고를 세상에서 없애려고 하는 조직이 있어서 포크먼은 납치까지 당하게 된다.


골렘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그가 보호하려고 하는 ‘그녀’는 누구이길래 그렇게 보호하려고 하는 걸까? 캐서린이 완성한 원고는 어떤 내용일까? 어떤 내용이길래 그것을 없애려고 하는 조직이 있으며, 그 조직은 무엇인가?


오랜만에 나온 댄 브라운의 신작

처음 ‘다빈치 코드’를 읽은 후 댄 브라운의 소설은 모두 사서 읽었다. 지금도 책장 한 켠에는 댄 브라운의 모든 소설이 자리잡고 있다. 첫 두 편인 ‘디셉션 포인트’와 ‘디지털 포트리스’는 아무래도 어설프긴 하다. 하지만 ‘천사와 악마’부터는 멋진 트릭과 서스펜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 중 하나인 기호학을 접목하여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한때는 가장 좋아하던 소설가 중에 한 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진부해 지기 마련이다. ‘로스트 심볼’ 이후 기존의 작품을 답습하고, 참신했던 형식이 진부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제 슬슬 예전의 명성에 비해 많이 모자란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다.


너무나 심한 자기 복제

‘천사와 악마’에서 처음 등장한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은 이후 나온 모든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정형화되어서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이 예전만큼 즐겁지가 않다.


소설은 항상 이렇게 진행이 된다.

1. 낯선 곳에서 갑자기 생긴 사건, 랭던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그 사건에 얽힌다. 하지만 도움을 구할 곳이 없어서 오로지 자신의 지식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

2. 사건을 위해 배정된 형사는 무조건 랭던을 의심하고 무지성적으로 랭던을 범인이라고 속단한다. 때로는 법을 넘어서는 수작까지 서슴지 않는다.

3. 음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실행자가 있다. 그 사람의 정체는 소설의 핵심을 이루고, 마지막에 밝혀진다.

4. 실제 사건과 상관없이 지역의 문화재에 대한 내용을 계속해서 뇌까린다.

5. 랭던의 모든 추리는 틀리는 적이 없다. 등등


랭던이 등장하는 작품은 모두가 다 똑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두 번 성공한 성공공식을 계속해서 취하는 것은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이제는 너무 심하다고 비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건 마치 ‘개그 콘서트’에서 재미있는 코너를 대사 조금만 바꾸어서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내가 댄 브라운에 대해서 흠뻑 빠졌던 이유, 기호를 유효적절하게 사용하여 미스터리를 해결하는데 주 소재로 삼았던 이전의 태도는 이제 사라졌다. 기호는 그냥 랭던이 아는 척하는, 아니면 댄 브라운이 독자에게 아는 척하는 소재로만 사용할 뿐이다. 더 이상 해결의 매개체가 아니다.


유사과학을 이렇게까지 차용할 일인가

작중에서 랭던의 애인인 솔로몬 박사는 노에틱 과학자이다. 복잡한 설명은 모르겠고, 결국 노에틱 사이언스라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 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노에틱 과학을 실제 과학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정말 엄밀하게 증명이 되었다면 지금 세상은 온갖 정신계열 초능력자들이 판을 치고 있을 일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사후세계를 다룰 뿐 아니라 유체이탈까지 다룬다. 결국 이렇게 저렇게 짜맞춰서 유체이탈을 군사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조직이 등장하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까지 주장한다.


아마 이전 소설인 ‘로스트 심볼’도 노에틱 과학을 다뤘던 것 같은데, 작가가 정신 분야를 다루는 것은 이제 쓸만한 소재가 다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각종 실험 결과들을 근거로 들어 놓긴 하지만 주류 과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양자역학까지 엉터리로 적용해서 소설의 근거를 만들려고 한다. ‘지적 미스터리의 대가’라고 하지만 이제 지적이지도 않고, 미스터리도 날아가 버렸다. 차라리 현실 판타지 소설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에틱 사이언스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반면에 양자역학에서는 흔히 착각하는 오류를 그대로 차용한다.


캐서린이 설명했다.

“30년 전에 물리학자들이 두 개의 얽힌 입자 사이의 통신이 즉각적이라고 증명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것은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만 무슨 기도문처럼 가르치고 있잖아.” p.249

양자얽힘은 정보전달이 빛보다 빠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성이론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소설 ‘삼체’에서도 양자얽힘을 이용하여 외계 행성과 통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SF소설로서 알면서 고의로 무시하고 사용한 것이고, ‘비밀 속의 비밀’에서는 미스터리 소설에서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 우기기 위한 근거로 사용했다. SF소설에서 사용하는 과학적인 점프를 미스터리 소설에서 그대로 사용하면 안 되지 않을까?


베스트셀러 작가의 아쉬운 행보

댄 브라운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소설이다. 그런데 미스터리를 다루려면 기본적으로 현실에 깊이 발을 담궈야 할텐데, 기본 배경이 정신분야로 날아가 버리니 미스터리에 빠져들기 쉽지 않다. 내가 뭔가 생각을 해서 추리를 해 보려고 하는데, 그 바탕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밖으로 날아가 버리니 미스터리가 생생할 수 없다.


그리고 결국은 모든 미스터리의 열쇠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숨어서 얌약하는 ‘그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충격적인 결말을 만들어 내려고 하지만 그다지 충격적이지는 않다. ‘비밀 속의 비밀’ 역시 그 사람의 정체가 예상 외이긴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보게 된다.


‘천사와 악마’나 ‘다빈치 코드’같은 충격은 이제 없나?

나는 댄 브라운의 소설 중에 으뜸을 꼽으라고 하면 미스터리 면에서는 ‘천사와 악마’, 기호와 상징 면에서는 ‘다빈치 코드’를 꼽는다. 처음 ‘다빈치 코드’를 읽었을 때는 수많은 기독교의 상징을 다루는 솜씨에 감탄했다. 두 번째로 ‘천사와 악마’를 읽었을 때는 미스터리를 다루는 솜씨와 충격적인 반전, 그리고 앰비그램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댄 브라운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즐거움을 얻기는 힘들어 졌다. 그냥 의리로 사서 읽는 책이 되어 버린 것이 너무 안타깝다.


★★★

소설이 아주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댄 브라운의 소설이 굉장한 페이지 터너인 것은 틀림없다. 일단 책을 들면 계속해서 읽게 하는 흡입력은 뛰어나다. 순식간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장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제는 ‘대명사’로 정체를 감추고 몇 장 지나서 그 정체를 알려주는 뻔한 미스터리적 장치를 계속 읽어줄 마음이 들지 않는다.

8년만의 소설이라고 하는데 다음 소설이 언제 또 나올지 모르지만 그 소설을 사서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읽을 것 같긴 한데, 그러고 나서 또 투덜댈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살짝 비추천에 가깝지만 댄 브라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서 읽을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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