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먼 길에서 돌아와 지쳤고, 평화를 발견했다그의 모든 수고를 돌판에 새겨 넣었다 - P169
이제는 춘수가 씌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고문 끝에 옥중에서 죽었다. 유연은 고문으로 인한 고통을 참지 못하여 죄를 인정했지만, 이제는 끝내 인정하지 않고 결국 장형으로 사망했던 것이다. - P215
고소 이전 대구부에서는 채응규가 진짜 유유인지 아닌지를 가리고 있었다. 곧 사기사건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백씨의 고소 이후 사건은 동생이 적장자의 지위와 형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형을 살해한 살인사건이 되었다. - P219
유연이 살인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은 당시 사족들이공유한 생각이었다. - P219
유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묻고 사건의 실체를 알아내야만 하였다. 사법장치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면서 삼성추국의 위관과 추관의 책임을 물어야만 했다.하지만 그러한 과정은 없었다. - P220
1564년에 유연을 악인으로 만들어 사건을 성급하게 덮으려 했던 것처럼 1579년에는 이제 악인으로 만들어 동일한 효과를 얻고자 했던 것이다. - P221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았다. 유유의 가출 이유였다. 유유는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들이 없어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으므로 집을 떠났다고 하였고 유연이 죽은 것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 P176
이난나신화는 수메르 멸망 이후 아카드, 바빌론에 이어 그리스신화에도 수용되고, 심지어 기독교신화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지속적으로 그 흔적을 남깁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나타나는데요. 하나는 저승 여행과 부활신화로서의 측면, 다른 하나는 강력한 힘과 욕망을 가진 여성신이라는 측면입니다. - P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