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춘수가 씌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고문 끝에 옥중에서 죽었다. 유연은 고문으로 인한 고통을 참지 못하여 죄를 인정했지만, 이제는 끝내 인정하지 않고 결국 장형으로 사망했던 것이다. - P215

고소 이전 대구부에서는 채응규가 진짜 유유인지 아닌지를 가리고 있었다. 곧 사기사건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백씨의 고소 이후 사건은 동생이 적장자의 지위와 형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형을 살해한 살인사건이 되었다. - P219

유연이 살인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은 당시 사족들이공유한 생각이었다. - P219

유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묻고 사건의 실체를 알아내야만 하였다. 사법장치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면서 삼성추국의 위관과 추관의 책임을 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은 없었다. - P220

1564년에 유연을 악인으로 만들어 사건을 성급하게 덮으려 했던 것처럼 1579년에는 이제 악인으로 만들어 동일한 효과를 얻고자 했던 것이다. - P2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