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실학자 정약용은 균분 상속 때문에 유력한 집안들마저 종가를 형성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했다. 종가의 성립과 유지가 재산만으로 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균분 상속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개별가계의 재산규모를 줄어들게 하였다. - P11

유유는 몸이 작고 허약했으며 수염이 없고 음성은 여성 같았다. 이런 신체 특성과 자식이 없다는 서술 때문에 성적 장애가 있는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 P20

16세기까지 조선 사회에서는 입양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은 집이 많았다. 가계가 꼭 장남을 통해서만 계승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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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먼 길에서 돌아와 지쳤고, 평화를 발견했다
그의 모든 수고를 돌판에 새겨 넣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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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남편 만들기,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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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사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합리적인 추측
조선시대의 부조리가 지금은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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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춘수가 씌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고문 끝에 옥중에서 죽었다. 유연은 고문으로 인한 고통을 참지 못하여 죄를 인정했지만, 이제는 끝내 인정하지 않고 결국 장형으로 사망했던 것이다. - P215

고소 이전 대구부에서는 채응규가 진짜 유유인지 아닌지를 가리고 있었다. 곧 사기사건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백씨의 고소 이후 사건은 동생이 적장자의 지위와 형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형을 살해한 살인사건이 되었다. - P219

유연이 살인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은 당시 사족들이공유한 생각이었다. - P219

유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묻고 사건의 실체를 알아내야만 하였다. 사법장치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면서 삼성추국의 위관과 추관의 책임을 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은 없었다. - P220

1564년에 유연을 악인으로 만들어 사건을 성급하게 덮으려 했던 것처럼 1579년에는 이제 악인으로 만들어 동일한 효과를 얻고자 했던 것이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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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았다. 유유의 가출 이유였다. 유유는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들이 없어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으므로 집을 떠났다고 하였고 유연이 죽은 것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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