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새 차가 있었다. 대단한 물건이었다. 대형 BMW 3.3리터(다시 말해 3,300cc)로, 길고 매끈하게 빠진데다 연료 분사식이었다. 최고 시속 207킬로미터까지 달렸고 가속이 끝내줬다. - P107

아침 7시 무렵, 고든 부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그는 맨발로 창가에 가서 커튼을 걷고 밖을 내다보았다.
때는 1월이었고 아직 어둑했지만 밤사이 눈이 오지 않은 건 분명했다.
"바람소리"
그는 아내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저기 바람소리 좀 들어봐." - P139

어니는 생일선물로 22구경 소총을 받았다. 토요일 아침 9시 30분,
벌써부터 텔레비전을 보며 소파에 축 늘어져 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네놈이 뭘 잡아오는지 한번 보자. 제대로 해봐. 저녁거리로 토끼나 한 마리 잡아와."
"호수 반대편 넓은 들판에 토끼가 많던걸요. 제가 봤어요."
"그럼 나가서 한 마리 잡아와."
부러진 성냥개비로 앞니 사이에 낀 아침식사를 빼내며 아버지가말했다. - P177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전에 나는 서인도제도에서 며칠 머물기로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짧은 휴가를 보낼 생각이었다. 친구들 말로는 끝내주는 곳이라고 했다. 은빛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따뜻한 초록빛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하루 종일 빈둥댈 수 있대나. - P215

소설가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런 직업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오직 이 일만 하는 전문 소설가가 되는가? - P251

나는 이때쯤 일찌감치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도 시도했다. 그렘린(The Gremlins)‘이라는 이야기였는데, 이 단어가 사용된 건 아마이때가 처음이었을 거다. 내 이야기 속에서, 그렘린은 영국 공군의전투기와 폭격기 안에 사는 꼬맹이들로, 전투 중에 총알구멍이 생기거나 엔진에 불이 붙거나 전투기가 추락하면 이건 적군 때문이 아니라 모두 그렘린의 짓이었다. 그렘린의 아내들은 피피넬라, 아이들은위지트라고 불렸다. - P287

그 일에 관해선 별로 기억이 없다. 어쨌든 그 일 이전에 대해서는그렇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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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는 살면서 단 하루도 일을 한 적이 없었다. 그가 스스로 지어낸 좌우명은 이랬다. ‘귀찮게 일을 할 바엔 욕 좀 얻어먹고 마는 게 낫다.‘ 친구들은 이 좌우명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 P10

‘3분 30초 동안 한 가지 대상에만 마음을 집중하는 게 정말 그렇게 어려운가요?
‘거의 불가능하지. 한번 해보게, 눈을 감고 어떤 것을 생각해봐.
오직 한 가지 대상만 생각해. 그것을 마음으로 떠올리게. 그게 눈앞에 보여야 해. 하지만 마음은 몇 초 만에 산만해지지. 사소한 다른생각들이 끼어들고 다른 영상들이 떠오를 걸세. 이건 정말 어려운일이라네.‘ - P44

자, 만약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였다면, 일종의 놀랍고 흥미진진한 결말을 꾸며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뭔가 극적이고 독특한 결말이면 되니까.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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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내는 스튜어디스였다. 대개 의 스튜어디스들이 그렇듯 그녀는 훤칠한 키에 멋진 스타일을 가진, 즉 모든 남자들이 원하는 타입의 여자였다. 예쁜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그녀는 구태여 착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착하지 않았다. - P184

그러다 급기야 죄의식과 부채감 등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가장 어리석고 나약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그를미워하게 된 거였다. - P192

내가 믿기론, 사랑이란 여자의 입장에선 ‘능력 있는 남자에게 빌붙어서 평생 공짜로 얻어먹고 싶은 마음‘이고 남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건강하게 낳아 양육해 줄 젊고 싱싱한 자궁에 대한 열망‘일 뿐이었다. 우울한 얘기지만 그것이 사랑의 본질인 것이다. - P216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법이다. 내 앞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운좋게 피해갈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미리 걱정하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싶진 않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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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장성해 머리가 희끗해져가는 중년이 되었어도 엄마눈엔 그저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짖어대는제비새끼들처럼 안쓰러워 보였을까? 그래서 비록 자식들이 모두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왔어도 그저 품을 떠났던 자식들이 다시 돌아온 게 기쁘기만 한 걸까?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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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고 엄마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낭떠러지 말고도 또하나의 선택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나이 마흔여덟에 칠순이 넘은 엄마 집에 얹혀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쪽팔리고 민망한 일이었지만 더 끔찍한 건 엄마 집에 이미 쉰두 살 된 형이 얹혀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P12

아마도 이쯤에서 이야기가 끝났더라면 한 편의훈훈한 가족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가끝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지루한 일상과 수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 인생은 단지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다녀야 하는 일이리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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