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로알드 달 지음, 권민정 옮김 / 강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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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슈거 이야기

처음에 길다란 설명은 그만 두자. 원인이야 어찌됐든 헨리 슈거는 정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수련 방법, 일종의 요가수련법을 익히면 카드가 뒤집혀 있어도 숫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방법은 너무나 어려우면서도 간단하다. 3분 30초 동안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모든 잡념을 버리면 된다. 단순하다. 하지만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처음 헨리 슈거가 초능력을 가지려고 한 이유는 우리같은 속물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카지노에 가서 돈을 왕창 벌고 싶은 것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4초안에 카드 뒷면을 볼 수 있게 될수록 헨리 슈거는 세속적인 욕심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결국 헨리 슈거는 수많은 돈을 벌게 됐지만 자신을 위해 돈을 사용하지 않고 전세계 곳곳에 고아원을 건립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가 죽었을 때, 존 윈스턴이라는 회계사는 그의 일대기를 '나'에게 줬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 슈거의 본명은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헨리 슈거가 정말 누구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가 세운 고아원이 우리들 주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로알드 달  Roald Dahl 1916 ~ 1990. 영국의 소설가


잘 모르는 유명 작가의 애매한 작품집

로알드 달이라는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이름을 들어 봤다. 내가 세계의 유명한 작가를 모두 아는 건 아니라서 책을 읽을 때 크게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책 날개에 2000년 세계 책의 날에 '전세계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뽑혔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또또 출판사에서 작가를 띄우려고 무리수를 두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대표작을 훑어 보니 굉장히 눈에 익은 제목이 눈에 확 들어 온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다! 그 기괴하기 이를데 없어 보이는 조니 뎁이 주연을 하고 마찬가지로 기괴한 영화 만들기로 유명한 팀 버튼이 감독한 그 영화? 제목 하나만으로 작가 소개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소설로도, 영화로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보지 않았다.)


헨리 슈거는 수련을 통해 일종의 투시능력을 갖게 되고 그 능력으로 전세계의 카지노를 돌며 돈을 모은다.


단편소설집(X), 작품집(O)

제목과 앞날개의 설명을 보고 기대한 건 기발한 아이디어가 담긴 단편소설집이었다. 기괴하거나 신기해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책을 기대했다. 책의 제목과 같은 첫번째 소설은 어느 정도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듯 했다. 그런데 너무나도 착하게 소설이 끝나 버린다. 그리고 두번째 소설인 《히치하이커》는 유쾌함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대단한 상상력이 보이진 않는다. 이후엔 실화를 취재한 에세이 등. 기상천외하지 않는 글들이 이어진다.


책 자체가 소설집도 아니다. 몇 편의 소설과 작가가 쓴 잡문을 엮어 놓은 책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읽어봤던 '기상천외'한 단편소설집(개인적으로는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같은 책을 기대했다.)이 아니라 로알드 달의 잡문집, 좀 좋게 말하면 작품집 정도 된다. 그러니 각 글의 특성도 갖가지이고 소설의 질도 오락가락한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는 좀 흥미롭다. 《히치하이커》는 유쾌하고 《밀덴홀의 보물》은 '정말 그런 일이?'라는 느낌. 《백조》는 기괴하고 화가 난다.. 등등. 소설이나 에세이가 통일성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 사실 하나의 제목 아래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놓으면 안될 것 같다.



행복한 경험을 적은 《행운》

오히려 로알드 달이 어떻게 생각지도 않던 작가가 되고, 그것도 유명한 작가가 되어 세계의 유명한 사람들을 만나고 성공했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자전적 단편인 《행운》이 가장 흥미롭다. (《행운》을 읽고 나서야 로알드 달이 정말 유명한 소설가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당연히 재능이 있었기에 소설가가 되었겠지만 '우연히 운이 좋아서'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게 되는 작가의 모습이 흥미롭다. 하지만 그 행운의 지렛대가 되는 작품인 《식은 죽 먹기》를 보고 난 후에는 좀 고개가 갸웃거리기도 한다.


영화로 만들어 진 《찰리와 초콜릿 공장》


★★★☆

기대와는 달리 밋밋한 책이다. 흥미진진한 전성기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습작 느낌이 진하게 든다. 추측으로는 로알드 달이라는 유명 작가가 쓴 유명하지 않은 글들을 한 권이 될만큼 모아 펴낸 책이 아닐까 싶다.


재미도 어정쩡하니 추천하기도 어정쩡하다. 조만간 영화로든 책으로든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나 한 번 찾아 봐야겠다.

기상천외한헨리슈거이야기, 로알드달, 권민정옮김, 도서출판강, 소설, 영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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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남편을 흔들어 깨운다. 그는 깊게 잠들어 있어서 웬만해서는 깰 것 같지 않았지만, 그녀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왼쪽 어깨를 계속 흔들었다. 이윽고 그가 끙, 소리를 내며 몸을뒤척였다. 그녀는 그의 귀에 대고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 P57

그녀는 아버지가 이야기 꺼내는 걸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면 보일수록 자신의 마음이 더욱더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진실을 털어놓을 시간이가까워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 P68

"그렇지 않니?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아주 단순한 일이었다. 나는 뭐든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해왔어.
.
나는 우물쭈물한 적도 없었고, 갈팡질팡한 적도 없었지. 난말이다.
.
그래, 나는 내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살아왔어. 하지만,
그 부부에 대해서는 난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
맞다. 니 말이 맞아. 그들이 나에게 완전한 타인이기 때문에 그상관도 없는 타인 말이다." - P77

날씨가 좋은 오후에 P부인은 낮잠에서 깬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곤 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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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날의 열일곱번째 손님이었다. 마지막 손님이기도 했다. - P9

그런 인간들 지긋지긋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나 주면서 자신들이 그런 종류의인간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부류 말입니다." - P14

호텔 초이선 Choisun은 불에 탄 후, 6개월 이상 그 상태 그대로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었다. 어느 날 밤, 누군가 건물 내부의 작은 퓨즈를 하나 끊어버렸다. 그러자 연달아 자잘한 파열이 일어났다. 그 파열은 가스관에 도달했고 마침내 건물 전체를 무너뜨렸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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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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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아니, 어쩌면 네 가족일지도 모른다. 오인모는 단 한 순간도 전도유망해 본 적이 없는 실패한 영화감독이다. 입봉작에서 제작자에 20억이 넘는 손해를 끼치고 다시는 영화를 만들 기회를 잡지 못하고 10년이 넘는 세월을 충무로 난민으로 살았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 생활을 하다 죽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엄마 집으로 들어간다.


엄마는 형과 함께 살고 있다. 오인모도 그다지 볼 것 없는 막장 인생이지만 형은 개막장이다.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평범하지 않더니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살인만 빼고 할 수 있는 모든 범죄를 저지르며 큰집을 들락날락하더니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을 밑천으로 운영하던 당구장을 미성년자 강간에 대한 합의금으로 날려 먹고 오인모보다 먼저 엄마 집에 들어와 빌붙어 있다. 형은 오한모이다. 하지만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 생각 따위는 없다. 그저 오함마일 뿐..


그나마 사람답게 사는 건 막내 오미연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만만치 않다. 살던 동네에서 오미연과 붙어먹지 않은 남자가 없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바람을 피우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어느날 갑자기 스윽 엄마 집에 들어 왔다. 그것도 싸가지라고는 밥말아 먹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개싸가지 여중생 딸까지 혹처럼 달고 말이다. 그나마 돈을 벌어 생활비를 내는 건 오미연 뿐이다.


가족이 모두 모였다. 오함마 52, 오인모 48, 오미연 45, 장인경 16. 가족 평균나이가 49라는게 좀 사소한 문제다.


천명관. 1964 ~ . 소설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찌질함

천명관의 소설은 두 권을 읽었다. 천명관이 쓴 모든 책을 가지고 있지만 좀 아껴가면서 읽는 것도 있고, 어쨌든 이름만 보고 무조건 책을 구매하는 한국작가 몇 명 중에 한 명이 천명관인데 아무래도 《고래》를 읽고 천명관에게 반한 게 그 이유다.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살짝 믿기 힘든데 작가마저도 숨기지 않게 서사를 풀어나가는 뻔뻔함. 최고의 이야기꾼 천명관의 소설은 이름만으로도 기대된다.


《고령화 가족》은 한 어머니가 2남1녀와 손녀 한 명을 거두어 먹이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세 명의 자식새끼들이 자기 스스로 앞가림하는 녀석이 없다. 기본적으로 경제능력은 전무라고 할 정도다. 어머니가 거둬 먹이지 않으면 실제로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을 정도다.

...

경제능력이야 운이 나빠서 어쩔수 없다치고 (그러고 싶지 않지만) 넘어가 보자. 그렇다 해도 이들을 (여기서도 막내는 빼자) 변호하기는 너무 어렵다. 좀 성숙한 중학생만 돼도 하지 않을 개유치한 행동들을 진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툭하면 형제간에 주먹질과 욕을 교환하고, 식탐을 부리고 차마 40~50대 남자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다. 단지 유치할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더럽기까지 하다. 큰 삼촌은 조카 팬티를 쥐고 자위를 한다.(물론 의도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가족 팬티인 건 틀림없다.) 작은 삼촌은 조카의 약점을 잡아 용돈의 절반을 삥뜯는다. 현실에서 부딪힐까봐 무서운 가족이고 형제다.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은 이제 많이 해체된 것 같다. 《고령화 가족》에서는 난장판같은 가족 관계 속에서도 결국은 하나의 가족이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인 듯, 가족아닌, 가족같은..

반푼이같은 자식들을 한없이 품어 주는 엄마. 하지만 그 전통적인 어머니상을 가진 엄마까지 젊은 시절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 애를 안고 다시 돌아온 사실이 알려지며 이 가족의 마지막 보루였던 엄마마저 무너진다. 가족이라는 말로 묶여 있지만 이 가족은 정확하게는 하나의 피로 이루어진 가족이 아니다. 첫째는 아빠와 전처의 아들, 둘때는 아빠와 엄마의 아들, 셋째는 엄마와 바람난 남자의 딸, 즉, 첫째와 셋째는 아예 피가 섞이지도 않았다. 《고령화 가족》은 내내 가족같지 않은 가족의 불화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언제 망가질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더니 모래알같은 가족의 구조를 다 밝힌 후에는 오히려 가족애가 끈끈해 진다. 첫째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조카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다 해외로 튀고, 둘째는 원수같던 형의 소재를 숨기기 위해 얻어맞아 절름발이가 된다. 놀라운 건 쓰레기같던 세 남매가 각자 딱 맞는 배필을 만나 그럴듯한 가정을 꾸민다는 것이다. (물론 얼마나 오래 갈지는 소설이 끝이 나버릴 때까지 알 수 없다.)


전통적인 모습이 해체된 가족 속 가족애

《고령화 가족》의 가족은 우리 머릿속에 이미지화되어 있는 이상적인 가족도, 단란한 가족도 아니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다정한 말이 오가는 일도 거의 없다. 마치 현대사회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진 가족의 씁쓸함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모두들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 낸다. 결국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는 '가족'이라는 것이 천명관이 드러내고 싶은 가치관이었을까? 온갖 형태의 전통적이지 않은 가족 형태가 부상하는 현대에 한 번쯤 돌이켜 생각해 볼 법하다.


검색을 하다 보니 2003년에 영화화된 것을 알게 됐다. 출연진도 괜찮고 넷플릭스에 있으니 조만간 시간내서 볼 예정.


★★★★☆

천명관의 《고래》는 내가 읽은 소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최고로 꼽는 작품이다. 《고령화 가족》은 화자의 말투가 바뀌어 구비문학을 전승한 것 같던 《고래》에서처럼 귀에 들러붙는 맛은 없이 훨씬 정제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두런두런 남의 집 흉보는 모습이 보이는 등 이전 소설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 한다. 결국 천명관의 소설이다.


재미있게 술술 읽히고 생각해 볼 틈도 많다.


강력히 추천한다.

고령화가족, 천명관, 문학동네, 소설,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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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정승섭 옮김, 바나나몽스 그림 / 혜원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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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신을 원합니다. 편안한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와 현실적인 위험과 자유를 원하고, 선과 죄악을 원합니다."

"알 수 없군요. 왜 불행해지는 권리만 원하는지."

"네, 그래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늙어서 추해지고 무능해질 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기아의 권리, 더러워질 권리,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할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말할 수 없는 온갖 고통에 시달릴 권리…..."

존은 잠깐 숨을 들이마시며 무스타파 몬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결론을 짓듯이 말했다.

"저는 이러한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p.286

야만 지역의 존

서기 2540년, 포드력 632년, 존은 어머니 린다와 함께 뉴멕시코에 살고 있다. 인디언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문명과는 동떨어진 상태로 남겨진 지역으로 문명인들은 야만 지역이라고 부른다. 린다는 존이 어릴 때부터 문명 세계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다. 아름답고 행복하고 소마가 있는 곳. 존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들은 문명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자랐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문명세계에 비하면 현재 살고 있는 야만 지역은 시궁창과 같다. 존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지낸다.


이웃들과 달리 어머니로부터 글자를 배운 존은 처음에는 어머니가 문명 세계에서 가져온 '태아의 화학적 세균학적 행동조절, 베타 태아저장실 종사원을 위한 실질적인 안내서'를 읽었다. 야만 세계에는 책이라곤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린다의 정부인 포페가 가져온 '윌리엄 셰익스피어 전집'은 존에게 큰 기쁨이 된다. 존은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고 또 읽어 외울 정도가 된다. 다른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올더스 헉슬리 Aldous Leonard Huxley 1894 ~ 1963 영국의 소설가


야만의 세계에서 문명의 세계로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삶을 살던 존은 어느날 운명적인 남녀를 만난다. 남자는 심리학자인 버나드 마르크스, 여자는 레니나 크라운. 그들은 문명 세계에서 왔다. 린다는 레니나를 보자마자 부둥켜 안고 자기와 아들 존을 원래 살던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정말로 문명세계 출신으로 원래 야만 지역에서 살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레니나는 뚱뚱하고 더러운데다 늙기까지 한 린다와 닿는 것을 질색하고.. 버나드는 서유럽 회장인 무스타파 몬드에게 부탁하여 린다와 존을 문명 세계로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받는다.


한편 존은 레니나를 보고 야만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다른 아름다운 모습에 한 눈에 반하고, 레니나 역시 허우대 멀쩡하고 야만인이라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존을 보고 내내 잠자리를 하고 싶어한다.(야만 지역을 구경하고 싶어서 접근권한이 있는 버나드를 꼬셔 함께 온 기억 따위는 훨훨 날려 버린 레니나) 하지만 두 사람이 살아온 세계가 다른만큼 가치관도 완전히 다르다. 야만 지역에서는 한 남자는 한 여자와만 사랑하는 것이 룰이고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문명 세계에서는 모든 여자와 남자는 원하기만 하면 상대와 성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심지어는 7살 때부터 아이들이 성적인 놀이를 교육받으며 한 남자와 4개월 이상 만나면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여러가지 문제를 품은채 함께 문명세계로 돌아온 버나드와 레니나, 그리고 린다와 존. 린다는 늙고 추한 모습 때문에, 존은 말끔한 모습과 특이한 생각과 행동 때문에 문명세계의 이슈가 된다. 린다는 소마에 취해서 행복을 느끼며 비몽사몽에 빠지고, 존은 처음 만나는 문명세계를 경험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임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통' 속에서 자란다. 그 통속에 있을 때 산소의 양을 조절하여 아이들의 계급과 직업을 미리 설정한다.


디스토피아를 다룬 걸작 소설, 도대체 어떻게 읽었을까?

어릴 때 분명히 읽었는데 너무 오래 돼서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는 책들이 꽤 있다. 그 중에 다시 읽고는 도대체 이 책들을 읽고서 이해를 제대로 했을까 싶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과학적으로 고찰해서 추리소설로 풀어 놓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나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어른이 되어 읽어 보니 너무 야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 같은 《아라비안 나이트》같은 책이 그런데, 《멋진 신세계》 역시 빠지면 서럽다. 이렇게나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풍자가 넘치는 책을 제대로 이해했을 리가 없다. 아마도 SF소설 중 한 권 정도로 이해하고 《은하철도 999》 보듯이 읽었겠지. 나이가 들어 다시 읽은 《멋진 신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었다.


버나드와 존, 그리고 무스타파 몬드

처음엔 계획을 벗어나 못생긴 채 태어난 버나드가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소문에 따르면 부화병 안에 혈액 대신 알콜을 주입받아 머리는 좋으나 신체적 약점을 안고 태어난 버나드. 충분히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동기도 가졌고, 두뇌도 가졌다. 사회 전복의 주인공이 될 것 같았던 버나드는 야만인 지역에서 존을 만난 후 빠르게 이야기 중심에서 벗어난다. 존이 진주인공으로 소설의 후반부를 장식하면서 버나드가 연심을 지니고 있던 레니나 크라운까지 존만 쳐다본다. 대단한 역할이 있을 것 같았던 버나드가 사실은 존을 등장시키기 위한 마중물 정도였다. 한 가지 더 역할이 있다면 미래사회를 보여주기 위한 안내인 정도.


이야기는 존이 문명사회에 던져진 후부터 본격적으로 굴러 간다. 존이 살던 세계는 구역질날 것 같지만 사실은 약간 지저분한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에도 세계의 어떤 곳은 그렇게 살고 있다. 문명사회는 상상으로 만들어 낸 사회다. 존은 어머니를 통해 들어서 동경해 오던 문명사회가 처음엔 좋았으나 철저한 계급과 소마에 의해 콘트롤되고 있는 사회에서 자유가 없음을 느끼고 절망한다. 그 후에 최후의 자유, 즉 스스로를 망가뜨리면서 결말을 맞는다. 굉장히 장엄한 결말을 맞은 존.. 그런데 정말 존이 옳았던 걸까?


멋진 신세계에서 성은 그저 오락일 뿐이고 자손을 두는 수단이 아니다. 책임지지 않는 쾌락이 지배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유명한 디스토피아, 하지만..

《멋진 신세계》가 만들어 놓은 문명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의 세계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디스토피아 세계이다. 하지만 이 세계가 정말 디스토피아일까?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점에서 분명히 디스토피아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신조작에 의해서 모든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 완벽하게 만족하게 만족하고 살고 있다. 알파는 알파대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감마 이하 하층민의 육체노동을 경멸하며 산다. 그렇다고 하층 계급이 상류층을 부러워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충분히 삶에 만족하며 산다. 게다가 우울하거나 불행이 느껴질 여지가 생기면 부작용없는 마약인 소마로 행복감까지 추가로 얻을 수 있다. 사회는 안정적이고 절대 가난도, 악인도 없다. 도리어 존이 문명사회로 와서 잘 돌아가는 사회의 시스템을 망가뜨리려고 하고 죄악을 원한다고 외치고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은 존의 행동에 공감하고 그의 감정흐름에 따라가는데, 소설을 덮고 나서 생각하니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 소설 속 사회와 다르지만 다른 방향으로 시스템화되어 있는 현대 한국사회(특히 대도시)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견딜 수 있을까?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멋진 신세계》의 사회는 현대의 모든 국가들이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구현해 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지만 진정 자유로운 사람은 상위 몇 명 뿐 아닐까? 매트릭스를 보면 끔찍하지만 만약 매트릭스 안에서 완벽한 삶을 구가할 수 있디면 현실로 돌아가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결국 통속의 뇌가 되어 행복할 것인지 현실을 살면서 불행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데..


소설 속의 사람들은 사실 불행해 할 틈이 없다. 게다가 조금 불행하다 싶으면 '소마'가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어쩌면 이상적인 사회일지도..

★★★★☆

《멋진 신세계》는 SF소설이면서도 보기 드물게 고전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소설이다. 당시 사회에 비추어 미래를 상상한 것도 대단하다. (다른 방향으로) 많은 부분 현실화된 것도 있다. 문명세계와 야만세계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킨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전반부에 학생들을 통해 세계를 자연스레 설명하는 기법은 이후 SF소설에서 수없이 사용되어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있을 정도이다. 무엇보다.. 소설이 정말 재미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며 고전이다. 하지만 원래 '고전'이라는 게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실제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을 말하는만큼 실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재미있고 생각해 볼 여지도 많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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