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사흘 전 일이었다. 정수연은 학원에서 친구들과 몰려나오는 중이었다. 이전에는 혼자 다니는 일이 많았는데 이번일을 겪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친구가 늘어나 있었다. 단발머리가 여전히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짧은 목이나 두툼한눈꺼풀도 여전했다. 다만 움츠리고 있는 것 같던 어깨가 당당하게 펴지고 표정이 다양해져 있었다. 그러니까 정수연은, 신나게 웃어젖히고 있는 중이었다. - P133

닥터 팽이나 다른 사람에게 굳이 확인해보지 않더라도, 정수연 실종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다름 아닌 나였다. - P135

-다 닥터 때문이잖아요!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전화를한 거예요? 왜 내가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 거죠?
-난 거짓말 같은 건 한 적 없네.
-뭐라고?
물론 꼬박꼬박 누가 오긴 했지. 하지만 그게 정말 자네였는가?
- 무슨 말 같잖은 소릴 하는 거예요!!
- 자네는 상담 받는 내내, 진실을 말했던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은가?
닥터 팽의 형형한 눈빛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 P197

닥터 팽이 옳았다. 하지만 틀리기도 했다. .
내게 누나 같은 건 없었다. 엄마도 물론 본 적이 없다. 그의 말마따나 나는 서류상으로도 현실상으로도 완벽한 외아들이다. - P217

- 도대체 진실이라는 게 뭐죠? 뭐가 현실인가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은 현실인가요? 여기 있는 내가 현실이에요? 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 거죠??
- 자네가 믿고 싶어 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전부 현실이지. 자네가 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 그게 바로 진실일세.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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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생활 능력이라곤 전혀 없는 늙은 양아치였다. 우리 가족은 엄마가 공장에서 사탕 봉지를 비틀어 벌어온 돈으로 연명했다. 하루 수백, 수천 개의 봉지를 비트는 동안 엄마 성격도 조금씩 비틀렸고 덩달아 아빠의 성격이나 양심, 뭐 그런사소한 것들도 함께 비틀렸다. - P74

아니, 잠깐. 이때는 벌써 엄마가 죽어버린 뒤였던가?
아무려면 어때. 사소한 것들은 그냥 넘어가자.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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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전 때문에 병원에 가는 건 달갑지 않았다. 의사라는것들은 너무 말이 많고 건방졌다. 거북한 시간을 참아낸 뒤얻을 수 있는 약의 양도 터무니없이 적었다.
.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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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팽은 검은색 홈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두꺼운 목과 각진 어깨가 홈드레스의 가느다란 어깨끈을무색하게 만들고 있었다. 납작한 가슴에는 팥알만 한 보라색구슬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연결 실이 고스란히 비칠정도의 싸구려였다. - P9

상대방을 모두 이해하고 동조할 수 있어야만 연애가 가능한것은 아니다. 꾸준한 노력과 약간의 연기, 철저한 사전 준비만 있다면 고릴라와도 연애가 가능하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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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내가 더없이 불행할 거라고 넘겨짚지말아요. 난 내 코르셋에 익숙해져 있어요. 그 코르셋은 나를 안정시키고 보호해주죠. 언젠가 질식하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하면 돼요. - P111

9) 레오, 끝이 곧 끝이 아닌 것이 끝이 아닌 것이 끝이 아니기때문이에요. 마지막 끝의 끝은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요. - P163

베른하르트는 부활절 휴가 때 아이들은떼어놓고 나랑 일주일 동안 카나리아 제도의 라 고메라 섬에 갈거예요. 여기서 강조할 건 그 사람이 나랑 가는 거지 내가 그 사람이랑 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 P209

결혼이란 단지 거기에 발을 담근 사람들이 발판을 잃었을 때 꽉붙잡고 매달릴 수 있다고 믿는 하나의 구조물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 P217

계는 당신과 나의 관계랑은 완전히 달라요. 내 감정에 어떤 정해진 양이 있어서, 그것을 쪼개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에게 배분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나에게 중요한 사람은 저마다 따로따로 내안에 자기만의 자리를 갖고 있어요.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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