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라는 것은 긴 시간이다. 하지만 소년은 남자가 아는 것을알았다. ‘늘‘ 이라는 것은 결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 P35
그는 카트에서 쌍안경을 꺼내더니 도로 한가운데 서서 아래의 평원을살폈다. 잿빛으로 서 있는 도시의 형체가 보였다. 광야 위에 숯으로 스케치를 해놓은 것 같았다. 볼 것은 없었다. 연기도 나지 않았다. - P13
거기 있는 거야? 남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을 마침내 보는 건가? 내 손으로 잡아 비틀 목은 있나? 심장은 있어? 당신은 영원히 저주받아야 해, 영혼은 있나? 오, 신이여. 남자는속삭였다. 오, 신이여. - P17
남자는 깜깜한 숲에서 잠을 깼다. 밤의 한기를 느끼자 손을 뻗어 옆에서 자는 아이를 더듬었다. 밤은 어둠 이상으로 어두웠고,낮도 하루가 다르게 잿빛이 짙어졌다. - P7
백화점은 사람을 좀 이상하게 만들었다. 가방 앞에서 살까 말까 망설일 때만 해도 가방만 사고 나면 모든 갈증이 다 사라질 것 같았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지고 더 이상 사고 싶은 것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겨우 며칠 사이에 사고 싶은 게 또 생기고 자꾸 목이 마르다. 바닷물을 퍼 마시고 있는 것같다. - P44
김씨 아줌마는 세면대에 튄 물기를 빠르게 닦았다.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파우더 룸의 거울을 닦고 여자들이 버리고 간 기름종이와 물건 포장지도 말끔히 치웠다. 파우더 룸 청소를 마친후에는 화장실 안에 있는 휴지통을 차례로 비우고 두루마리 휴지도 꼼꼼히 채워 넣었다. 청소를 다 마치고 한숨 돌릴 생각에바쁘게 움직였다. - P7
결제일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한숨을 쉰다. 카드 값을 막아 줄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열심히 찾아보지만 그런 번호가 있을 리 없다. 씀씀이를 줄여야겠다고 다짐하며 지갑을 꼭 틀어쥐지만 이상하게 악순환은 반복되고 만다. -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