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1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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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살짝 있습니다.

 

밝히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

신을 믿지 않는 천재적인 과학자, 에드먼드 커시가 있다. 이미 젊은 나이에 전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부를 이루었다. 에드먼드 커시는 어느날, 전세계를 향해 도발적인 예고를 한다. 세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를 줄 발표라고 한다. 그리고 발표를 하기 전에 천주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지도자에게 미리 발표할 내용을 비춰 준다. 세 명의 종교 지도자는 경악을 하게 되고,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지도자는 에드면드 커시가 발표를 하기 전에 미리 본 내용을 누출하여 김을 빼려고 하지만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한편, 에드먼드 커시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발표하기 위해 구겐하임 미술관을 통째로 빌리고, 유명한 석학들을 미술관으로 초대한다. 그 중에는 학생시절 수업을 들었던 로버트 랭던 교수가 있다. 서론을 마치고 본 내용을 발표하려는 순간, 발표회장에 몰래 숨어 들어온 옛 해국 제독 아빌라에게 총을 맞고 사망하게 된다. 행사를 주관하던 미술관장이자 스페인 왕자의 약혼녀인 암브라와 함께 에드먼드이 발표하지 못한 내용을 발표하려는 랭던 교수. 그를 돕는 인공지능 윈스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들을 쫒는 아빌라 제독, 그리고 종교지도자 중에 홀로 살아 남은 발데스피노 주교. 항상 죽도록 고생했던 랭던 교수는 이번에도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댄 브라운 Dan Brown. 영어교사를 하다가 디셉션 포인트를 쓰며 소설가로 데뷔. 다빈치 코드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댄 브라운 팬이라면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손에 잡을 소설

 

댄 브라운의 일곱 번째 소설이면서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처음 등장한 종교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이 다섯 번째로 활약하는 소설이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를 쓴 후 전세계적인 논란과 신드롬을 일으킨 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한다는 믿음이 있는데다가, 평소에 관심이 많은 기호학과 도상학을 소설의 소재로 많이 쓰기도 할 뿐더러, 이미 그의 소설을 다 샀기 때문에 이 책도 어차피 살 거라는 생각에 나오자 바로 사서 읽었다. 그냥 이름만 보고 아무 고민없이 책을 구매하는 작가가 몇 명 있는데, 나에게는 댄 브라운이 그런 작가 중에 한 명이다. 그리고 댄 브라운은 이번에도 나의 기대에 딱 맞는 그만큼의 만족감을 준다.

 

구겐하임 미술관. 비달 암브라는 이 미술관의 원장이다. 에드먼드 커시가 이 곳에서 총에 맞아 즉사하면서 모든 사건이 시작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오리진은 제목에서 보듯이 '기원'에 관한 책이다. 소설은 계속해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넌 도대체 어디서 온 거야?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책을 읽는 동안, 아직 책 속의 대답이 나오기 전까지 이 질문은 계속된다. 소설 속에서 에드먼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냈고, 발표하려고 한다. 당연하지만 그 기원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그럼 도대체 뭐지? 글을 읽는 동안 도대체 어떤 그럴듯한 결말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대답을 가지고 왔길래, 에드먼드는 그렇게 자신만만했으며, 댄 브라운은 그런 자신만만한 주인공을 만들어 냈는지 궁금하다. 설마, 세상의 기원을 소설 책에서 알 수 있게 되는 걸까?

 

파드레라 La Pedrera. 바르셀로나 소재.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아파트. 작중 에드먼드 커시가 임대하여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뛰어난 흡입력, 하지만.. 너무 똑같다

댄 브라운의 소설은 추리스릴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무서울 정도의 흡입력을 지닌다. 두 권 합쳐서 700페이지를 넘는 소설의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 재미있다. 하지만, 너무 똑같다. 천사의 악마부터 시작해서 다빈치코드, 로스트심벌, 인페르노에 오리진까지.. 패턴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 패턴을 한 번 보자.
1. 댄 브라운은 어느날 유명한 사람의 초대를 받는다.
2. 사건이 터진다.
3. 로버트 랭던은 유력한 용의자 중에 한 명으로 공권력으로부터 쫒긴다.
4. 게다가 무지막지한 살인자로부터도 쫒긴다.
5. 옆에는 미모의 아름다운 여자 조력자가 있어서 썸은 타지만 연결은 되지 않는다. 딱히 큰 도움도 되지 않는다.
6. 쫒기는 동안 믿을만한 조언자가 있다.
7. 범인은 도와주는 줄 알았던 조언자이다.

 

오리진 역시 이 패텬을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딱 1권을 다 일고 났을 때,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믿을만한 조언자가 바로 범인이다. 마지막 결말은 정말 내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건 마치 개그콘서트에서 성공한 코너 하나를 짜서 매회마다 상황만 조금씩 바꿔서 같은 웃음 포인트에서 모든 관객들이 함께 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ilia.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성당. 바르셀로나 소재. 작중에서 호아킴 베냐 신부가 주임 신부로 있으며, 에드먼드 커시가 요청하여 지하에 윌리엄 블레이크의 전집을 진열되어 있다.

 

어설프게 끌어다 쓰는 과학 + 밑천 다 떨어져 가는 종교기호와 상징

댄 브라운은 가장 가장 멀어 보이는 과학과 종교를 한 소설 안에 녹여내는데 장점이 있다. '천사와 악마'에서는 반물질과 함께 일루미나티라는 음모론의 정점에 있는 것 같은 단체, 그리고 멋진 앰비그램이 흥미를 끌었다. '다빈치 코드'는 기독교의 온갖 상징과 기호를 있는대로 끌어다 써서 관심을 끌었다. 오리진에서는.. 완성형 인공지능인 윈스턴이 등장하고, 무생물에서 생물이 나타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시뮬레이션의 근거가 되는 양자생물학이 등장한다. 종교적인 음모론의 한 축은 팔마리아 교회가 담당을 한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어설프다. 인공지능은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인데다 유머감각까지 지녔다. 양자생물학은 이제야 태동하는 학문으로 주류에 올라서지도 못했다. 그런데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런 것들을 가져다 쓴다. 대충 과학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지만 너무 황당무계해서 추리스릴러가 판타지 소설이 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제는 끌어다 쓸 종교적인 기호와 상징, 음모론도 다 고갈되어 버린 것 같다. 마지막에는 누명을 쓴 것으로 표현하긴 하지만 엉뚱한 교회를 음모론의 주체로 표현한다. 소재가 고갈된 것을 느꼈는지 오리진에서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이 주 무대로 등장한다. 책만 읽으면 가우디는 종교에 반하는 음흉한 계략을 건축에 적용시킨 사람처럼 느껴진다.

 

윌리엄 블레이크 판화 고대의 날 들. The Ancient of Days. 소설 속에서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라고 번역되어 있으며,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에 전시되어 있던 블레이크 전집은 이 그림이 보이도록 펼쳐져 있다.

 

불만이 많다. 그런데 재미있다.

불평불만을 털어 놓기는 했지만, 재미있다. 그게 댄 브라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일단 책을 집어들면 순식간에 끝까지 읽게 된다. 어설프게 지적인 부분도 건드려 준다. 덕분에 소설을 읽으면서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이름 몇 개를 알게 되고 어떻게 생격는지도 알게 됐다. 양자생물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심지어.. 정말 무식한 얘기인 것 같지만.. 스페인이 왕국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로스트 심벌'을 읽고나서는 이제 댄 브라운 소설은 읽지 말겠다고 다짐을 하곤 하는데, 그러다가도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또 사서 읽고 있다. 이 책도 읽으면서 이제 그만 사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다음 책이 나오면 또, 로버트 랭던 교수를 만나고 있을 게 뻔하다.

 

댄 브라운 소설을 이 책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천사와 악마' 이후의 소설을 두 편 이상 읽은 사람이라면, 장담하건데 그냥 똑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비슷한 얘기를 별로 읽고 싶지 않다면 패스해도 된다. 팬이라면 포기하고 그냥 읽으면 된다. 만약 이 책을 처음으로 사서 볼 생각이라면 일단 멈추고, 먼저 '천사와 악마'와 '다빈치 코드'를 먼저 사서 읽는 것을 추천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안토니오 가우디라는 건축가는 머릿속에 각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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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18 (10주년 특집판)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18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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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알고 싶어?

어차피 너무 많은 정보가 흘러 넘치는 세상이다. 유행도 너무 빨리 지나간다. 사실상 유행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 틈에서 조금의 흐름이라도 알려고 해 봐야 나침반 없이 바다를 헤매는 항해사나 다를 것 없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정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중에서 의미있는 정보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펴낸 '트렌드코리아 2018'은 복잡하지만 방향이 있다고,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 보라고 유혹을 한다. 매년 연말, 베스트셀러 상위에 항상 올라가 있는 책이다. 베스트셀러는 잘 읽지 않는데다가 실물경제에 관한 책은 읽지 않는 삐딱한 독서습관을 가졌지만 올해에는 비자발적인 이유로 이 책을 손에 들고 읽게 되었다.

 

대표저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

 

YOLO : You Only Live Once의 해가 지나간다

2017년은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뭘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는 이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로 세계사적으로 의미있는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였다. 민중들은 정치적으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 자신감은 여전히 어렵고 힘든 경제에 대한 자신감으로도 전이되어 앞으로의 한국에 대한 희망이 이전보다는 높아진 것 같다. 만연했던 갑질에 억눌렸던 을들이 새로운 정부의 탄생과 함께 기지개를 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엿보인다.
근래 10년을 되돌아봐도 유난스럽게 시끌벅적했던 2017년이었는데, 개인의 삶에서 보면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온 욜로라는 말이 한 해를 휩쓸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원래는 '너 한 번 살고 말거냐',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내 맘대로 살 거야' 정도의 의미로 비아냥거리는 뉘앙스가 있는 말인데, 우리나라로 들어 오면서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멋지게 살아 보자'라는 뉘앙스를 가지게 되면서 20~40대에게 굉장히 쿨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온갖 SNS부터 미디어까지 욜로의 열풍이 흔들고 지나간 한 해였었던 것 같다.

 

Wag The Dog은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말로 원래는 주식시장에서 선물시장이 현물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으로는 권력자가 자신의 부정을 감추기 위해서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결국 부수적인 것이 본질적인 것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 주객전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2018년의 키워드.. WAG THE DOGS!

2018년을 맞아 책에서 만들어 낸 말은 '꼬리가 개를 흔든다'이다. 각 알파벳을 어두로 하여 10가지의 트렌드를 예측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며, 본질보다 현상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결국은 본질은 파편화되어 무엇이 본질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사회를 반영한 키워드이다. 2018년을 휩쓸지도 모르는 말을 이 안에서 한 번 찾아 보자.

 

What's Your 'Small but Certain Happiness'?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Added Satisfaction to Value for Money: 'Placebo Consumption' 가성비에 가심비를 더하다: '플라시보 소비'
Generation 'Work-Life-Balance' '워라밸 세대'
Technology of 'Untact' 언택트 기술
Hide Away in Your Querencia 나만의 케렌시아
Everything-as-a-Service 만물의 서비스화
Days of 'Cutocracy' 매력, 자본이 되다
One's True Colors, 'Meaning Out' 미닝아웃
Gig-Relationship, Alt-Family 이 관계를 다시 써보려 해
Shouting Out Self-esteem 세상의 주변에서 나를 외치다

 

주의깊게 봐야 할 단어들이 몇 개 있다. 소확행, 플라시보 소비, 언택트, 케렌시아라는 말은 이 책에서 처음 만들었던지 강조된 말들이다. 워라밸이라는 말은 이미 트렌드화되어 버린 말이다. 개인적으로 2018년도의 트렌드로 가장 확실해 보이는 단어는 워라밸이다. 그리고 단어가 유행을 하지는 않더라도 경향성이 확실해 보이는 것은 소확행이다.

 

워라밸은 Work & Life Balance, 즉,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한다. 책에서는 2018년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선택을 했지만 불황의 시대에 이것이 과연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일부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는 점에서 가슴이 아프다.

 

이 책 자체가 Wag the Dog이다

이 책은 10주년 기념으로 발간된 책이다. 이전에는 이 책을 사 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지만 10주년 기념 책답게 지난 10년 간의 메가 트렌드 분석이 앞머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에 대한 평가, 2018년에 대한 예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내가 인터넷이나 여러 매체에서 봐왔던 말들이 이미 이 책에서 언급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분석을 잘 한 책인 것 같다는 느낌이다.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과연 이 책이 트렌드를 분석한 것인지, 아니면 트렌드를 만들어 낸 것인지 생각해 볼 구석은 있어 보인다. 흔한 예처럼, 어떤 최고의 패션디자이너가 '내년에 유행할 색은 오렌지 색이고 강아지 모양의 문양이 유행할 것이다'라고 예측을 하면 많은 의류제조업체들은 오렌지 색을 바탕으로 하는 의상을 만들어 내고 강아지 모양의 아이템을 만들어 낼 것이다. 오렌지 색의 옷이 잘 팔리고, 강아지 모양의 아이템이 유행을 끌게 된다면, 패션디자이너가 유행을 예측한 것일까, 유행을 만들어 낸 것일까?
이 책 역시 같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라는 이름값에 더해 10년이라는 역사까지 더해지면서 매년 연말을 장식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렸다. 아마도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이나 관련 업계 종사자, 강사들에게는 연말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 안에 있는 말들을 계속해서 인용하고 언급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책이라고 살 수 있다. 그리고 사실은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트렌드를 읽어 낸 책인지,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책인지. 이 책 자체가 Wag The Dog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문제.

 

트렌드의 원인 = 불황 + 개인화 + 무한경쟁

책 자체가 Wag The Dog이라고 하긴 했어도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파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트렌드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억지로 꿰어 맞춘 것이라고 해도, 그런 흐름을 머릿속에 넣어 두고 사회적인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어 보인다.
책 속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심화되어 가는 불황과 고착화되어 가는 개인화 경향이다. 더불어 치열한 경쟁이 지속되는 사회가 트렌드를 만들어 낸다. 자본은 계속해서 거대해져 가고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 애를 쓴다. 하지만 경제적인 불황으로 소비자는 지갑을 열기가 힘들어 지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화되어감에 따라 적은 금액으로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기를 바란다. 결국 이런 경향을 잘 읽어내면 트렌드를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대표저자의 이전 저작에 대한 반감도 있고, 실몰경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도 없을 뿐더러 유행이나 트렌드에 민감한 성격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고 보니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한번쯤은 지금의 사회문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서 쓴 것처럼 이 트렌드가 읽어낸 것인지, 만들어 낸 것인지를 구별할 필요는 분명히 있고, 정말 그런 것인지 고민해 봐야할 지점도 있다. 하지만 현상을 제대로 나열해 놓은 것만 해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책이 거의 500페이지에 가까워서 두꺼운 편이다. 하지만 읽기 어렵지 않다. 하나의 주제당 열페이지 약간 넘는 정도로 짧게 끊어져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고, 약간 긴 블로그 글을 읽는 정도라서 부담스럽지도 않다. 출퇴근하면서, 짬나는 시간동안 읽기에 좋고, 반드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욱 읽지 않고 관심 있는 부분만 발췌해서 읽기에도 좋다.

 

마케팅 관련 종사자는 내가 추천하지 않아도 당연히 읽어 볼 것이다. 보고서나 강연을 할 때 인용해서 쓸 수 있는 말이 많다. 그리고 이 책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프레젠테이션이다. 잘 요약만 해도 윗사람이나 청중에게 그럴싸한 말 몇마디 던질 수 있는 훌륭한 소스가 된다.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작년에 이 책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과연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년 동어반복적인 내용이 들어 있을 거라는 추측이다. 나는 아마 내년에는 이 책을 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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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문선 1~9 세트 - 전9권 한국 산문선
유몽인 외 지음, 안대회 외 옮김 / 민음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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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회 교수, 정민 교수, 이종묵 교수.. 이름만 들어도 책의 질이 보장되는 분들의 이름이 실려 있다.. 무척 탐나는 책이다.. 하지만 사놓고 과연 제대로 읽을지 걱정도 된다.. 일단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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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내용에 대한 심각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강력 추천하며, 미리 내용을 모르고 읽는다면 그 충격이 더해질 것입니다.

 

 사랑스러워 보이는 표지에 속아서 본다면 더 재미있을 만화.

 

어머니처럼 따르는 그녀는, 친부모가 아니다. 함께 사는 그들은, 형제가 아니다
이곳 '그레이스 필드 하우스'는 고아원이며, 나는 고아, 그런 줄만 알고 있었다.

행복한 고아원.. 따뜻한 엄마.. 사랑스러운 친구들.. 하지만..

때는 서기 2045년 10월.. 고아원인 그레이스 필드 하우스(GF 하우스)에는 38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고, 그들을 보살피는 한 명의 엄마가 있다. 엄마는 따뜻하게 아이들을 돌보고, 그런 보살핌을 받으면서 아이들은 행복하게 생활을 한다. 때때로 입양되는 아이들과 헤어지는 슬픔은 있지만, 그외에는 아무런 구김살없이 공부하고 테스트받고 고아원 밖으로 나가는 것 외에는 자유롭게 뛰어 노는 고아들에게는 굉장히 편안한 안식처같은 곳이다. 같이 지내던 코니(6세, 여)가 입양되는 날 역시 조금 우울하긴 하지만 어딘가로 가서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보내 준 날, 주인공 엠마(11세, 여)와 노먼(11세, 남)은 코니가 남겨 놓고 간 토끼 인형을 떠나기 전에 주기 위해서 고아원 밖으로 잠깐 나갔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왼쪽부터 노먼, 엠마, 케이. GF 하우스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면서, 테스트마다 300점 만점을 기록하는 천재들이다.

 

데스노트와 진격의 거인을 잇는 충격적인 세계관

최근에는 출판되는 만화는 딱히 볼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계속해서 보고 있던 몇가지 만화만 사서 보고, 새로운 만화에 발을 들여 놓을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괜찮은 만화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을 읽을 때 스포일러를 걱정해서 미리 내용을 미리 보지 않았을 때는 고아들이 삶을 헤쳐나가는 따뜻한 만화라는 생각을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속았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만화를 보면서 가장 충격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한 세계관을 가진 만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데스노트와 진격의 거인을 꼽는데, 약속의 네버랜드는 앞의 두 작품의 세계관과 맞먹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나처럼 어떤 내용도 모른채 이 책을 처음 읽는다면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 다시 한 번 주의를 드립니다. 작품의 충격을 제대로 느끼고 싶으신 분은 그만 읽고 책부터 읽으시길 바랍니다.

약속의 네버랜드는 데스노트와 진격의 거인과 많이 닮아 있다.

 

GF 하우스의 정체는..

엠마와 노먼은 코니를 따라 갔다가 죽어 있는 코니를 발견하고 자신들이 사실은 괴물들에게 먹잇감으로 제공되기 위해서 길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스러운 엄마는 사육사였고, 따뜻한 보금자리였던 GF 하우스는 인육농장이었다. 충격을 받은 두 아이는 엄마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숨긴다. 얼마 후 같은 또래 친구인 케이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셋은 의기투합하여 2개월 이내에 탈출하기 위해 계획을 세워 나간다. 계획을 세우는 중에 세 사람의 의견이 갈리기도 하고, 엄마가 그들의 계획을 눈치채서 다른 보조 보모인 시스터를 GF 하우스로 불러들이기도 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한다. 과연 이들이 탈출에 성공할까? 그리고 고아원 밖의 세계는 어떤 상태일까?

 

왼쪽에서 보이는 따뜻한 모습의 엄마는 사실 괴물들에게 아이들을 키워 공급하는 사육사였다.(이미지 출처 : 알라딘)

 

또다시 데스노트와 진격의 거인

코니가 죽는 순간 작품은 따뜻한 일상물에서 순식간에 기괴한 판타지로 바뀌어 버린다. 세계관이 충격적이긴 한데, 낯설지가 않다. 배경의 설정은 진격의 거인과 굉장히 비슷하다. 주인공을 포함한 주요 인물들이 한 장소에 갇혀 있다는 점, 벽을 경계로 해서 벽 밖의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점, 벽 밖의 세상은 극도로 위험한 점, 인간을 위협하는 미지의 생물이 존재한다는 점이 그렇다. 괴물의 디자인 캐릭터는 데스노트의 사신을 떠오르게 한다. 엄마와 아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치열한 두뇌싸움을 하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 역시 데스노트의 설정과 유사하다. 카이우 시라이라고 하는 원작자가 두 작품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이 괴물들의 정체는 무엇이며, 인간과 어떤 계약을 맺은 것일까? (이미지 출처 : 알라딘)

 

반전에 또 반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두려운 미래

아이들이 탈출을 계획하면서 충격으로 시작했던 만화는 두뇌싸움으로 변경이 된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세 명을 압박하는 엄마(이자벨라)와 그의 하수인이면서도 이자벨라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시스터(크로네)는 가장 큰 위협이다. 모두 함께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엠마,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케이, 두 명의 의견을 조율하면서도 엠마의 탈출계획을 돕고 싶어하는 노먼의 의견차이 역시 불안한 요소. 게다가 벽 바깥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밖을 나가서 생존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아이들 중에 이자벨라의 끄나풀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세 명은 심각해 지기도 한다. 이자벨라의 끄나풀의 정체 역시 반전을 선사한다.

 

데미즈 포스카의 일러스트 작품들. 작화 실력이 탄탄한 작가이다.

 

회수되어야 할 복선들.. 그리고 걱정

세계관을 특이하게 설정해 놓았고, 비밀에 붙혀 놓았기 때문에 숨겨놓은 것들을 상상해 가면서 읽는 것이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도대체 괴물들의 정체가 무엇이며, 아이들과 보모들의 목에 있는 기호는 무엇인지, 인간과 괴물들은 어떤 계약을 맺고 있는 것이며, 벽의 바깥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하나 밝혀지는 동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세 아이의 탈출계획과 그것을 막으려는 보모들의 두뇌싸움도 볼만하다. 2권 마지막에 존재가 알려진 윌리엄 미네르바는 또 누구일까?
이 두뇌싸움이 너무 심해지면 데스노트가 L의 사후에 두뇌싸움이 너무 복잡해 져서 지루해졌던 전철을 밟게 될까봐 걱정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GF 하우스를 탈출하게 되면 또다른 스토리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도 같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굉장히 재미있게 진행이 되고 있다.
탈출은 하겠지. 몇 명이 탈출할까? 담장 밖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뒷편이 궁금하다.

 

우리나라에는 얼마전에 2권까지 정식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는 6권까지 출간이 되었다고 한다. 2권까지는 한국어판을 구매해서 읽었지만 뒷내용이 궁금하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뒷내용이 나오긴 하겠지만 미리 내용을 알고 싶지도 않고, 언제 출간이 될지도 모르겠어서 오랜만에 일본에 만화책을 주문했다. 주문하는 김에 작가인 데미즈 포스카의 아트북도 함께 주문했다. 그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한 책이니 만화를 읽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 보라고 추천한다.

 

제목이 약속의 네버랜드이고 영어로 보면 The Promised Neverland이다. '그 어디에도 없는 약속된 장소'라는 뜻이니 아이들이 탈출한다고 해도 그 앞날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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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에게
기돈 크레머 지음, 홍은정.이석호 옮김 / 포노(PHONO)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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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vs. 엔터테이너, 이상 vs. 현실

이건 정말 진부한 질문이다. 예술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너는 뭘 추구하는지 물어 볼 때, 도대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진정한 음악가의 길을 갈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많은 젊은 음악가들이 최고가 되고자 하는 꿈을 꿀 것이고, 최고라는 것은 물론 상업적인 성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예술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꿈을 갖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보다는 이상을 좇는 것이 예술가의 운명..이라고 하기엔 현실이 만만하지는 않다. 기돈 크레머는 많은 음악가들이 꿈꾸는 위대한 음악가의 반열에 들어서 있는 연주자 중에 한 명이다. 엔터테이너가 되기보다는 예술가가 되어야 하고, 현실을 좇기보다는 이상을 꿈꿔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생각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현직 바이올린 연주자의 책이다.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는 책인데, 1~3부와 4부의 성격이 좀 다르다. 책 속의 설명을 보면 1~3부는 독일어로 쓴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이고, 4부는 영어로 쓴 '루트비히를 찾아서'이다. 앞의 세 개의 글은 끊임없이 음악가가 가져야 하는 자세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1부는 아우렐리아라는 한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미모의 피아니스트인 아우렐리아의 음악적 재능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미디어를 통한 성공에 매몰되어 버릴까봐 걱정한다. 2부는 호텔 방안에서 잠깐 쉬는 사이에 꾼 꿈을 적어놓고 있다. 3부는 음악에 대한 생각을 성서의 십계명에 빗대어 설명을 하고 있다. 사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좀 지루할 것이라고 지레 추측을 했는데, 굉장히 재미있다. 좀 의외다.

 

기돈 크레머 Gidon Kremer(1947 ~ ) 자타가 공인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의 한 명.

 

사실 좀 속았다

글을 쓰는 방식이 좀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쉽게 말하면 일반적인 형태의 에세이가 아니라 일정한 컨셉을 가지고 글을 써려 간다. 1부를 읽을 때는 아우렐리아라는 피아니스트가 누군지 잘 몰라서 검색을 해 봤는데 도대체 나오지를 않는다. 분명히 여자 피아니스트인 것 같은데 가능한 본명을 찾아 보고 해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절반 정도 읽으면서, '이거 가상의 인물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맞았다. 2부 역시 어처구니없는 설정으로 반어적으로 음악이 우스꽝스러워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서 그런지 꿈이라는 걸 금새 알아챌 수 있었다. 3부는 그런 반전은 없지만 성서의 십계명을 차용해서 음악에서의 금언을 적어 놓은 것이 흥미롭다.

 

글 좀 쓸 줄 아는 기돈 크레머
기돈 크레머의 바이올린이야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테지만, 글까지 잘 쓸 줄은 몰랐다. 사실 음악가들이나 평론가들이 쓴 글은 지루하기 짝이 없을 때가 많은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저자가 말을 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읽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기돈 크레머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굉장히 유쾌하고 재치가 넘치는 사람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미 연주자로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글도 이렇게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책도 있으면 읽어 보고 싶어 진다.

 

4장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 최고의 앨범을 찾는 과정에서 기돈 크레머가 연주의 어떤 면을 살펴보는지 보여준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4장
앞의 3장도 굉장히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4장이 제일 흥미진진하고 생각할 것이 많았다. 4장은 프랑스의 클래식 음악잡지인 디아파종 Diapason이 기돈 크레머에게 의뢰해서 10개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61)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음반을 선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데서 시작을 한다. 스스로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이면서 당연히 같은 곡을 녹음한 기돈 크레머는 10장의 음반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고민에 빠진다. 기돈 크레머는 어떻게든 한 장을 뽑아야 하는 곤란한 처지에 놓이고 만다. 모두 다 훌륭한 연주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돈 크레머는 자신이 음악을 듣는 기준을 중심으로 음반을 하나하나 살펴 보면서 좁혀 나가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최고의 연주자가 음악을 보는 관점을 지켜 보면서 어떤 점에서 음악을 들으면 좋은지 안내를 받았다. 흔히 3대나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하는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 차이코프스키, 멘델스존, 브람스의 곡은 많이 들어 봤는데, 베토벤은 거의 들어 보질 않은 것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결국 몇 장의 음반을 주문해 버렸다. 이 책의 4장은 10장의 음반을 모두 들어 보면서 다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기돈 크레머는 결국 최고의 연주 하나를 뽑아내고야 만다. 그런데...... 엄청난 반전이 독자를 기다린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보면서 나는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고, 무의식적으로 입으로는 상소리를 내뱉었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말을 내는 기돈 크레머의 극악무도함에 속았다는 사실이 억울했기 때문이다. 즐거운 속임수이자 반전이었다.

 

기돈 크레머가 추천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바로 이 한 장의 앨범이다. 지네트 느뵈 바이올린, 한스 로스바우트 지휘, 남서독일 라디오오케스트라 협연. 1949년 9월 녹음.

 

이제 막 예술을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음악이든 미술이든 어떤 종류의 예술을 하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현실적인 필요와 이상적인 목표 사이에서 갈등을 하기 마련일 것이다.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생활의 부담도 있고, 어쨌든 유명해 지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이 예술가로서 성공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분명히 원래의 초심을 잃고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낙담에 빠질 수도 있다. 난.. 솔직히.. 어느 쪽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상업적인 성공도, 예술적인 성공도 이루지 못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거의 대부분일텐데, 어느 쪽이든 성공을 이룬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돈 크레머의 생각은 충분히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는 말이고 이상적인데다가 도덕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라고 장담은 못하겠다. 특히 지금같은 대중 예술의 시대에 기돈 크레머의 관점은 고루해 보일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예술적인 성취야 말할 것도 없고,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대가가 하는 말이라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므로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더불어 일반 사람들도 읽기에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3장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4장은 좀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클래식을 감상하는 방법을 자세히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욱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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