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궤도 1 - 빨간 비행기 신의 궤도 1
배명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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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을 쓰고 15만년 후로..


김은경은 인공위성을 1,700개나 소유한 재벌 회장의 딸이다. 그런데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정상적이지는 않다. 은경의 엄마가 회장의 현지처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엄마를 닮아 예쁜 외모를 자랑하는 은경. 하지마 은경의 엄마는 어느날 들이닥친 회장의 본처에게 수모를 당하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다. 이에 절망한 엄마는 3주 후에 자살하고 은경은 고독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엄마는 진심으로 회장을 사랑했던 것 같다. 회장 역시 은경 모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이후 은경이 비행관련 공부를 해나가는 동안 눈치채지 못하도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은경은 아버지의 도움을 알게된 후에는 아버지와 연관되는 것을 거부한다.


은경이 다니던 비행학교에는 바클라바라는 터키 출신 소년이 있다. 바클라바는 김회장의 회사에서 실행한 실험 실수로 부모를 잃고 복수를 다짐한다. 은경이 김회장의 딸이라는 것도 알고 접근을 한다. 딱히 은경에게 복수하려고 하는 건 아니라서 둘은 티격태격하다가 가까워진다.


라경은 은경의 이복언니, 김회장 본처의 딸이다. 당연히 은경을 좋아할 리가 없다. 라경은 음모를 꾸며서 바클라바가 테러를 하도록 조장하고, 바클라바는 테러를 감행하다 죽게 된다. 라경의 음모에 의해서 은경은 공범으로 몰리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김회장은 은경을 살리기 위해서 몰래 빼내 동면하게 한 후 때마침 만들고 있었던 새로운 인간의 주거지, 정확히는 재벌들이 은퇴한 이후 살아가려고 만들고 있던 새로운 행성인 나니예로 가는 우주선에 탑승시킨다. 잠깐 자고 일어난 은경.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은경은 냉동되어 잠든 사이에 15만 년이 흘렀고 자신이 나니예라는 다른 행성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는다. 《신의 궤도》는 근미래의 지구로부터 15만 년이 지난 후 나니예 행성이 멸망의 위기를 맞아 활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1978 ~ . 한국의 SF소설 작가. 2011년에 《안녕, 인공존재》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자가상 수상


일꾼들만 있는 곳에 도착한 유일한 고객


배명훈이라는 작가의 SF 소설이다. 대체로 소설은 아무 정보없이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서점에서 그냥 손에 잡히는대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작가가 누군지도 몰랐고 소설이 SF인지도 몰랐다. 최근에 SF소설을 많이 읽고 있는데, 그 기운을 책에서 느꼈을지도.. 최근에 읽은 《삼체》는 마지막에 무려 수백억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버리면서 소설이 끝난다. 반면에 《신의 궤도》는 수백억년은 아니지만 무려 15만년 이후를 초반에 뛰어넘어 버리고 시작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소설같은 시간이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나니예 행성은 지구의 부자 20만 명이 은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휴양지라는 설정이다. 나니예를 적절한 휴양지로 만들기 위해서 일꾼들이 먼저 출발하고 그 후 고객들인 부자들이 떠났는데 출발한지 6만년 후, 사고로 인해 동면이 풀려 버린다. 아직 9만년을 더 가야 도착할 수 있는데, 다시 동면을 할 수는 없고, 식량도 3개월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모두 사망하고 만다. 우주선이 나니예에 도착했을 때, 미리 도착해서 나니예를 만들어 놓은 일꾼들은 백골로 변한 고객들밖에 볼 수 없었고, 나니예는 일꾼들만이 사는 행성이 된다. 하지만 단 한 명, 사형을 피해 창조주인 김회장이 먼저 보낸 김은경만이 고객 중에 유일하게 나니예 건설 270년 후 동면에서 깨어났다. 나니예 행성의 유일한 고객이다.


무려 15만 광년 멀리 있는 나니예 행성. 하지만 그 곳에 가려고 했던 20만 명의 고객은 불행하게도 중간에 깨어나고 만다.


흥미로운 기본 설정


무려 15만년을 단위로 움직이는 소설이다. 생존가능한 다른 행성을 찾아 우주를 여행한다고 생각하면 현실적이기는 한데 숫자가 너무 커서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15만년 이후를 보장하는 계약이라니.. 그래도 터무니없이 긴 시간을 다루는 허무맹랑한 소설일 것 같지만 꽤 설득력이 있다. 특히, 15만 년 이후의 약속을 담보하기 위해서 안전보장 기금인 라경기금이라는 무력수단이 설정된 건 멋진 아이디어.


북반구를 지배하는 공식기구인 행정관리소 세력, 유목생활을 하면서 남반구를 지배하는 지난 세력, 천문교 세력으로 크게 3개의 세력이 있다. 천문교 세력은 또 관측신학자와 이론신학자로 나뉘고 남반구에는 지난세력에 저항하는 혁명 세력도 있다. 이 세력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비행기를 생명이 있는 양처럼 다루는 설정도 재미있고, 궤도를 돌고 있는 신의 존재를 밝히려는 천문교 관찰주의자파의 노력과 신은 관념으로만 존재한다고 믿어 실체를 부정하는 이론주의자파의 대립과 갈등을 다루는 것도 좋다. 



정치, 사회, 경제, 종교를 모두 아우르려는 욕심


미래를 다루는 SF소설은 여러가지 면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고려할 수는 없다. 대체로 작가가 관심이 많은 한 분야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어떤 소설은 인간과 로봇의 갈등을 다루기도 하고 인간과 외계 행성인의 갈등을 다루기도 한다. 지구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 디스토피아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그릴 수도 있다. 대체로 한가지 부분에 집중을 하면서 나머지 부분은 가볍게 처리해 나간다.


《신의 궤도》의 작가인 배명훈은 굉장히 똑똑하고 많은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 듯 하다. 두 권짜리 소설에 굉장히 많은 설정을 집어 넣었다. 정치적인 갈등과 종교인 사이의 갈등,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냈고, 경제 문제까지 다루었다.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너무 많다는 느낌이다. 설정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지만 얘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는 설정에 비해서는 아쉽다. 그래서 부분부분 설정 부분을 읽을 때는 굉장히 흥미로운데 책을 모두 읽고 나서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는가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작가가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쓴 소설이다. 그런데 너무 총동원되어 있다. 멋진 상상력을 잔뜩 모아 놨지만 번잡하다. 잘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다. 여러가지 떡밥을 풀어 놓기는 했는데 깔끔하게 회수도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작품을 통틀어 나니예에 가장 큰 위험이 되는 경라기금은 어떤 경로로 조성되었는지 밝혀 놓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설정이 좋기 때문에 소설의 설정이 나오는 1권, 2권의 첫 부분은 굉장히 흥미롭고 소설 전체에 대해 기대감이 생긴다. 하지만 설정 부분을 벗어나면 몰입감이 떨어진다. 흥미로운 설정에 비해서 필력은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책이 너무 짧다. 두 권짜리 책이고 600여 페이지이긴 한데 수많은 설정을 만들어 놓은 걸 생각하면 세부적인 과거와 현재의 얘기를 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다. 한 권 정도 분량을 더 늘려서 과거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놓고 현재와 연결시켰으면 좋았을 것 같다.



★★★☆


SF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상을 받은 건 굉장히 어필할 만한 경력이다. 그만큼 문학성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당연히 기회가 되면 배명훈의 다른 책도 읽어 볼 예정이다. 《신의 궤도》는 설정이 굉장히 흥미진진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장르적으로 더 재미있을 수 있는 설정이 충분히 빛을 보지 못한 느낌이다. 나중에 천천히 보면서 놓친 것이 있지나 않은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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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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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터, 죽음 이후를 책임지는 탐정


구동치는 딜리터(deleter)이다. 탐정이기도 하다. 딜리터는 의뢰인이 꼭 없애고 싶은 물건을 죽기 전에 미리 부탁해 놓으면 의뢰인이 죽은 후 그것들을 모두 찾아서 없애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의뢰인이 없애고 싶은 것도 가지가지. 사진이 될 수도 있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일 수도 있다. 문서가 가장 많고 일기장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자료들을 없애려면 때로는 무단침입도 해야 하고 물건을 훔치기도 해야 한다. 물론 불법이다. 마치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돈되는 일이라면 불법적인 일들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구동치에게 의뢰한 사람 중에 배동훈이라는 사람이 죽었다. 그가 없애달라고 의뢰한 것은 네 가지. 그 중에 세 개는 찾아서 없앴는데 태블릿 PC 하나를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 태블릿 PC를 찾는 와중에 구동치는 큼지막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김중혁. 1971 ~ . 한국의 소설가.

잘 모르는 유명작가


처음 읽는 김중혁의 소설이다. 김중혁은 가끔 들었던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 이름을 들어 귀에 익숙하다. 소설가라는 것만 알고 있고 그가 쓴 소설을 읽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프로필을 살펴 보니 굵직한 문학상을 여러차례 수상한 실력있고 유명한 작가다. 내가 우리나라 문학에 대해서 너무 관심이 없다는 걸 잠깐 반성하고.. 그러니까 김중혁은 내가 잘 모르는 유명한 작가이다. 이 책을 집어든 것도 작가의 이름 때문이다. 그나마 귀에 익숙한 이름을 가진 소설가의 책도 손에 잡기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작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소설에 좀더 관심을 갖자고 다짐 한 번 한다.


큼큼한 냄새가 흐르는 군상극


처음엔 추리소설인가 했다. 형사도 나오고 추리하는 과정이 있긴 하지만 딱히 추리가 주가 되지는 않는다. 본격적인 수사물도 아니다. 사립탐정이 등장하는데 우리나라는 사립탐정이 합법적인 직업도 아니다. 정확히 정체를 밝히기 쉽지 않은 그저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뒷통수를 치는 군상극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그 중에 주인공인 구동치만이 가장 신뢰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척 한다. 하지만 구동치가 없앨 것을 요청받은 물품을 없애지 않고 사무실에 보관하는 것만 하더라도 의뢰인의 당부를 어긴 것이니 그다지 믿을만한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마지막에도 이영민과 천일수 사장의 뒷통수를 제대로 후려쳐 버린다.


여러 인간 군상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움직이다가 충돌하는 모습을 보면 소설 자체가 상쾌함과는 거리가 있고 좀 씁쓸하다. 씁쓸한 분위기를 더 가중시키는 건 작품 전체에 흐르는 냄새. 구동치의 사무실이 있는 악어빌딩에서는 특유의 큼큼한 냄새가 있다. 그리고 구동치는 자신이 가는 모든 장소를 냄새로 판단한다. 별로 좋은 냄새가 나는 곳이 없으니 찝찝한 느낌이 소설 전체에 흐르고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책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재미있는데 좀 허전하다


전체적으로 이미지도 선명하고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전개가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선배 형사인 김인천과 구동치의 관계가 그렇다. 김인천의 죽음이 구동치가 하던 일까지 그만 둘 정도로 충격을 준 사건이라는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 처음 김인천이 나올 때는 그저 구동치가 예전에 형사 생활할 때 동료로서 딜리터 일을 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악어와 악어새 사이 정도로 느껴졌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 설득력 있는 정황이 부족했던 것 같다. 소설 초반에 무엇보다 냉정하고 원칙주의자였던 구동치가 소설 후반에서는 감정적으로 변하는 모습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등장인물에 있어서도 소설 초반부터 나와서 작품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 같았던 작가와 정소윤이 어느 순간 공기가 되어 버린 것도 아쉽다. 작가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소윤은 활용할 여지가 많아 보였는데 구동치와 정소윤의 갈등이 마지막에 아무 것도 아닌 양 해결되어 버렸다. 마치 소설쓰는 동안 잊고 있다가 마지막에 생각나서 미안한 마음에 등장시켜서 결말지은 것 같은 느낌이다.



★★★☆


작가는 별것 아닌 것 같던 사망사건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면서 그에 연관된 인물들이 우왕자왕하고 나름대로 살 길을 찾는 소설을 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일파만파까지는 아니고 일파십파 정도에서 파도가 멈춘 것 같아서 아쉽다.


재미있게 읽었으니 비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하지는 않다. 이 책이 김중혁 작가의 대표작은 아닌 것 같고.. 다른 소설을 찾아서 읽어 본 후에 김중혁이라는 작가의 소설이 나한테 맞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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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산장 살인 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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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가시마 다카유키. 이 작품의 주인공. 도모미의 약혼자.

모리사키 도모미. 가시마 다카유키의 약혼자. 사망

모리사키 노부유키. 도모미의 아버지

모리사키 아쓰코. 도모미의 어머니

모리사키 도시야키. 도모미의 오빠

레이코 시모조. 모리사키 노부유키의 비서, 냉정한 성격.

시노 유키에. 도모미의 외사촌 동생. 미인. 가시마 다카유키에게 끌림

기도. 시노 가의 주치의. 시노 유키에를 마음에 두고 있다.

아가와 게이코. 도모미의 친구. 도모미의 죽음이 살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진과 다구. 산장에 침입한 범죄자들.

후지. 진과 다구가 기다리는 공범


산장에 모인 사람들과 침입자


도모미가 죽었다. 결혼을 얼마 남기지 않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식 준비를 위해서 산장 근처의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절벽으로 떨어졌다. 약혼자였던 가시마 다카유키는 망연자실, 슬픔을 이길 수 없다. 도모미가 죽은지 3개월 후 도모미의 아버지인 모리사키 노부유키는 산장에서 지내는 피서에 모리사키 일가와 지인들을 산장으로 초대한다. 아들과 같았던 다카유키도 초대받았다. 모리사키 일가와 초대받은 손님들은 산장에서 즐겁게 보낼 예정이다. 도모미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그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되새긴다. 모인 사람들 중에는 게이코처럼 도모미가 살해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게이코가 운전하기 전에 평소에 먹고 있던 진통제를 누군가 수면제로 바꿔서 운전중에 사고가 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진과 다구는 은행을 털었다. 후지라는 공범이 은행 내부에 있다. 세 명은 은행을 턴 후에 은신처 겸 접선장소로 사람 출입이 많지 않은 산장을 선택했다. 진과 다구가 산장에 도착했는데, 평소에 사람이 없던 곳에 사람이 가득차 있다. 어쩔 수 없이 라이플로 사람들을 위협하여 산장에서 후지가 올 때까지 기다기로 했다. 산장에서 피서를 보내려던 모리사키 일가와 초대 손님들도 운이 나빴지만 은행털이범들도 재수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 은행털이범들은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산장의 주인과 손님들은 어떻게든 외부에 산장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애를 쓴다. 이렇게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도모미의 외사촌 동생인 유키에가 등에 칼을 맞고 죽는다. 유키에는 누가 죽였을까? 유키에의 죽음은 도모미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까?


미심쩍은 죽음, 산장에 모인 관계자들. 도모미의 죽음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 그리고 유키에의 죽음. 전형적인 추리 무대가 만들어졌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우연히 산장에 총까지 들고 침입한 두 명의 범죄자. 그들에 의해 산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일행들이다. 일행들은 어떻게든 외부에 산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리려고 하지만 모든 시도는 알 수 없는 내부인에 의해서 저지당한다. 가끔씩 순찰을 도는 경찰들은 눈치도 없다. 유키에의 시신을 이층에 두고 인질들과 범인들은 신경이 계속 날카로워진다.


몰입도는 뛰어난데 너무 짜여져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다른 소설들과 같이 몰입도가 돋보인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 많은 소설들, 특히 장편소설들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기가 어렵다. 《가면산장 살인사건》도 마찬가지.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도모미는 정말 사고로 죽은 건가? 자살한 건가? 살해당한 건가? 유키에는 누가 죽인 걸까?


그런데 중반을 지나면서 소설 자체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주인공인 가시마 다카유키가 보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다. 게다가 침입자들이 너무 착하고, 별 상관도 없는 도모미의 죽음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갖는다. 무사히 도망가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할 침입자들이 도망가는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합류하기로 했다는 후지의 존재도 의심스러워졌다. 상황이 너무 작위적이다. 여기서 몇가지 의문을 갖고 책을 계속 읽었다.


1. 유키에는 정말 살해당했을까?

2. 도모미가 살해당했다는 게이코의 추리가 맞을까?

3. 침입자는 정말 범죄를 저지른 도망자일까?

4. 후지는 존재하는 사람인가?

5. 첫 장의 제목이 '무대'이다. 이 모든 상황이 연극이 아닐까?



오로지 반전을 위해 끝까지 달린다


굉장히 몰입해서 읽던 《가면산장 살인사건》은 위의 의문을 갖는 순간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은 가시마 다카유키가 도모미를 살해하려 했는데 도모미가 눈치를 채고 슬픔에 자살을 했다는 것. 그리고 산장에 모인 사람들은 가시마 다카유키가 살해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모여서 한바탕 연극을 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너무 작위적이고 전개가 자연스럽지 않다. 결말도 너무 안배를 해 놓은대로 흘러 간다. 마지막 반전 몇십 페이지에서 충격을 주기 위해 소설 전체를 짜놓았기 때문에 결말 쪽으로만 관심을 쏟고 읽게 된다. 결말을 위해서 모든 과정을 희생한 느낌이다. 계산이 틀릴 경우, 예를 들자면 다카유키가 죽음을 무릅쓰고 범인들에게 덤벼든다든지, 탈출을 하는 등 변수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무대가 마련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반전을 보고도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


머리 식히면서 금세 읽기 좋은 소설이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하지만 주의깊게 읽다 보면 어색한 장면들이 많아서 결말을 읽을 때 쯤이면 실망을 할 수 있다. 반전이 유명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으면 나쁘지는 않은데,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하지는 않다.


어정쩡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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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1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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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에 빠진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백야행》도 일단 한 명 죽여 놓고 시작한다. 제일 처음 죽는 사람은 기리하라 요스케, 전당포 주인이다. 건축하다 말고 버려진 폐빌딩이 살해된 장소. 그의 주변을 탐문하던 경찰은 애인일지도 모르는 30대 중반의 여자 니시모토 후미요와 그와 연인관계로 보이는 40대 마쓰우라 이사무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유력한 용의자 두 사람은 모두 알리바이가 있다. 이제 그들의 알리바이를 깨고 범행을 입증해야 하는데 남자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리고 일년 후 니시모토 후미요는 집에서 가스중독으로 죽는다.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아, 전당포 주인에게는 류지라는 아들이 있고, 후미요에게는 유키호라는 딸이 있다는 건 잘 기억해 두는 것이 좋겠다.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 ~ ) 일본의 소설가.


뛰어나 몰입감,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소설 중에 꼭 읽어야 할 명작이라고 해서 사두었다가 큰 마음 먹고 있다가 붙들고 읽기 시작했다. 《백야행》에 손이 잘 가지 않은 건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에 두꺼운 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다지 두껍지 않은 단권짜리였는데, 《백야행》은 꽤 두꺼운데다가 두 권 짜리 책으로 1,200 페이지에 달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새하얀 표지는 괜히 열어 보지 말라고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사놓고도 오랫동안 책장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한 일주일 정도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출퇴근하면서 사흘만에 모두 읽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책장이 잘 넘어간다.


결국 만나는 평행선


아버지가 살해당한 남자아이 류지, 어머니가 자살한 여자아이 유키호는 각자 삶을 산다. 각각의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마치 앨범에서 사진 하나씩 꺼내보듯이 펼쳐 놓는데, 평범한 듯 보이면서도 이상한 사건들에 연루되기도 하고(유키호), 컴퓨터에 일찍 눈을 떠서 컴퓨터 관련 범죄로 돈을 버는 과정(류지)을 시간 흐름에 따라 보여준다. 두 아이는 아무런 연관없이 각자의 삶을 사는데 유키호는 현명하고 사랑스럽게, 류지는 어두운 카리스마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처음에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던 둘의 삶이 묘한 곳에서 교차하고 교차점은 책을 읽을수록 넓어지고 뚜렷해진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사건을 쫓는 형사인 사사가키 준조와 독자는 강한 의심만 가질 뿐이지 확신할 수는 없다. 두 사람의 인생 궤적은 마치 굉장히 큰 구체의 한 곳에서 평행이었던 두 대의 직선이 표면을 따라가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나는 것 같다. 그리고 두 직선이 만나서 안개속에 싸여 있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것을 깨닫고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재미뿐만 아니라 문학성까지..


백야행을 읽으면서 구성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결말의 처리방식은 더욱 감탄할 만하다. 많은 일본소설들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반전을 강하게 주려는 욕심에 용두사미가 되고 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도 그런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백야행은 다르다. 반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로지 반전만을 위해서 내달린 소설이 아니다. 책의 절반 정도 읽으면 유키호와 류지, 두 아이가 많은 사건에서 공모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결말이 오기 전에 이미 독자는 두 사람이 모르는 부분에서 연관이 있고 19년 전 살인사건의 전말을 모를 뿐이다. 그리고 19년 전 사건의 진상을 알았을 때, 충격은 충격이지만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다.



개운하지 않지만 여운이 남는 결말


그 많은 사건들에 대해 유키호가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형사가 추측하고 독자가 수긍한대로 유키호와 류지는 긴 시간동안 공모한 것이 사실인지 소설에서는 명확하게 알려 주지 않는다. 두 사람이 어떻게 알게 되고 서로 연락을 하면서 지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모든 것이 정황 뿐이다. 류지의 죽음을 본 유키호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인 듯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만에 하나 형사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결국 소설은 정확한 결말을 맺어 주지는 않고 끝이 난다. 상쾌하지 않고 찝찝하다. 하지만 굉장히 멋진 결말이다.


★★★★☆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하는 대중소설가이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문학적인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백야행》은 소설의 재미도 재미지만 문학적으로도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다. 밝고 긍정적으로 보이는 유키호에게 숨어 있는 차가움과 섬뜩함이 잘 표현되었고, 류지의 성격도 매력적으로 묘사되었다. 무엇보다 이면에 숨어있는 사건을 뚜렷이 보여주지 않은 채 겉모양만 보여주고 점점 뚜렷해 지도록 구성해서 독자가 상상으로 메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 가장 좋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소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몇 편 중에 한 편이다. 시리즈 중의 한 편으로 엮이지 않아서 배경을 몰라도 된다는 점 역시 강점이다.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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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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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이곳 현실에서 퍼즐 조각들을 그러모아, 그것들을 서로 아귀가 맞게 조금씩 비틀어서, 전혀 다른 그림의 새로운 퍼즐을 하나 만들었던 거야.

p.257


이건.. 소년탐정 김전일?


산장에 서로 처음 보는 여섯 명의 남녀가 모였다. 여섯 명은 온라인 동호회 실버 해머의 회원들이다. 동호회 운영자인 닉네임 악마가 초대해서 모였는데, 악마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실버 해머'는 연쇄살인마를 주제로 하는 동호회. 여섯 명의 닉네임은 그에 어울리게 한니발, 유혈낭자, 불면증, 왕두더지, 폐쇄미국, 전신마취이다. 악마는 기다려도 오지 않고, 준비된 음식이라곤 고급스러운 양주 뿐. 여섯 명은 어쩔 수 없이 빈 속에 양주를 마시다 각자 방에 들어가 잠을 잔다.


잠시 눈을 붙이다 날카로우 비명소리에 잠을 깨서 나가 보니 한니발이 둔기에 맞아 살해되었다. 사람들은 당황하고 유력한 용의자 유혈낭자를 침대에 묶어 놓는다. 휴대폰은 통화권 이탈, 경찰을 부를 수 없다. 때마침 눈보라까지 휘몰아쳐 하산할 수도 없다. 그런데 묶어 놓은 유혈낭자마저 몸쓸 짓을 당한후 살해된 상태로 발견된다. 범인은 모였던 여섯 명 중에 있을까? 아니면 악마가 어딘가 숨어서 연쇄살인을 벌이는 것일까? 그런데 이거.. 《소년탐정 김전일》 아냐?


최제훈 1973 ~ . 사진 출처: 아주경제


실망스러운 시작에 이은 파격적인 전개


두 번째로 읽는 최제훈의 소설이다. 이전에 읽은 《퀴르발 남작의 성》을 굉장히 재밌게 읽어서 그의 소설책 세 권을 더 샀다. 그런데 기발한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으로 신선했던 《퀴르발 남작의 성》에 비해 도입부가 너무 식상해서 실망할 뻔했다. 김전일이라니.. 눈보라 치는 산장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이라니..


그런데 두 번째 장인 <복수의 공식>을 읽으면서 머리가 번쩍 뜨인다. 이게 뭐야?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아니 그것보다 이렇게 얘기를 분해해서 재조합해도 되는 거야? 어떤게 현실이고 어떤게 환상이지? 아니면 둘다 현실이 아닌 건가?


두 번째 장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짧은 소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다섯 개의 이야기 구조가 심상치 않다. 첫장의 산장에서 인물들이 한 얘기를 마치 소인수분해하듯이 이야기의 원소로 나눈 후 그 원소들을 재조합해서 전혀 다른 얘기를 만들어 낸다. 그 와중에 또 다른 곳에서 가져왔을 법한 이야기를 첨가하기도 한다. 2장 내내 1장에서 나왔던 여러 개의 이야기 조각을 이리저리 퍼즐 맞추듯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마치 소설 습작을 쓰는 것 같다.



알고 보니 소설?


그러더니 드디어 3장에서 커서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소설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인가? 하지만 여전히 긴가민가하다. 세 번째 장 역시 앞서 있던 1, 2장의 소설을 또 잘게 쪼개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최제훈이라는 소설가가 여러 개의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이리저리 조합을 하면서 습작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앞의 두 장과 조금 다르다면 이번에는 확실히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정확히는 번역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거하며 계속해서 번역을 강요하는 것같은 여자. 번역하고 있는 소설은 첫 장의 제목과 같은 '여섯 번째 꿈'. 여전히 현실과 소설, 환상이 이리저리 뭉개져 있다. 이건 4장까지 계속 이어진다.


파편화된 이야기를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이야기가 계속된다. 전작인 《퀴르발 남작의 성》도 특이했는데 이건 더 심하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지만 머릿속이 복잡하지는 않은데 그 이유는 이 소설이 몰입도가 정말 뛰어나기 때문이다. 마치 '나는 가지고 있는 조그만 이야기 조각으로 독자를 이렇게까지 끌어당길 수 있는 필력이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주장하는 듯하다. 읽기 어려울 것 같은 이야기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작가의 플롯 구성능력과 필력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최근에 책을읽으면서 특이한 이야기 구조에 많이 끌리는데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그 중에서도 최고다. 난해한 듯 하면서도 몰입도가 뛰어나고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엉뚱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통 책을 읽을 때 인물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헷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관계, 성격 등을 메모하면서 책을 읽는데 끝까지 읽고 보니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없다. 혼돈의 미로를 헤매다 탈출못하고 갇혀 버리는 경험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퍼즐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소설이다. 라비린토스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분을 느껴 보길..


오랜만에 내 기준으로 별 다섯 개짜리 소설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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