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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아무 것도 모르고 책을 집어 들었다..
사실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특히 최근에 출간되는 한국소설은 거의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강이라는 작가가 누군지 잘 모른다. 그리고 소설제목도 처음 듣는 책이라 원래대로라면 읽을 가능성이 참 낮은 책이었다.
평소 자주 듣는 팟캐스트를 듣다가 누군가가 2014년 최고의 소설책이라는 얘기를 던졌고 때마침 책 한 권을 다 읽었던 터라 어떤 내용인지,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기분좋게 낚여 줬다. 작가의 이름이 한강..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도 없고 아마도 필명인가 보다..하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굉장히 유명한 작가인데다가 한강이라는 이름도 본명인 여자 작가였다.
첫 장을 펴자마자 후회하고 말았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훅~ 들어 온다는 말이 있다. '소년이 온다'는 나에게 그런 책이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생각도 안하고 있다가 처음 몇장을 보고 나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인걸 알고 일단 책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 왔기 때문에 이미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겨버린 이야기.. 이제는 좀 잊고 피하고 싶은 역사.. 그렇기 때문에 광주에 대한 영화라든지 소설은 지금까지 거의 제대로 보지 않았다. 처음 책장을 펴고 몇 페이지를 읽어나가는데 아차~싶었다. 어떤 식으로 광주를 다루었는지 몰라도 가슴아픈 얘기가 지나갈텐데.. 읽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한번 책을 잡으면 다 읽기 전에 다른 책을 잘 집어 들지 않는 성격 덕분에 며칠동안 책을 읽지 않고 '소년이 온다'를 가방속에 넣고만 다녔다.
맘먹고 정면으로 광주의 슬픔을 마주한 작가.. 견딜 수 있었을까..?
'소년이 온다'는 도청을 점령하고 계엄군에 대항하던 싸웠던 시민군에 있었던 광주시민들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 7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지막 장은 작가의 취재노트 비슷한 에필로그이고 앞의 6장은 그 안에 있던 인물들과 그 주변 인물둘에 관한 이야기이다.
친구인 정대가 죽는 장면을 보고 마음속에 죄책감을 가지고 시체를 분류하는 중3 동호..
죽은 영혼이 되어 자신의 시체와 다른 시체들이 썪어 가는 것을 보고 있는 정대..
고3에 광주를 경험하고 후에 출판사에 취직한 은숙..
도청에서 리더같은 역할을 했던 진수와 같은 감방에 수감되어 있었던 사람..
성고문 후 아기를 낳지 못하는 몸이 되어 광주시절의 아픈 기억을 진술해 달라는 부탁을 듣고 고민하는 선주..
그리고 막내아들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살아간 동호의 어머니..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각기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받았던 고통을 작가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는 영혼까지 등장시켜서 시신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마지막 존엄성까지 지켜지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면 정말 작정하고 달려 들었다는 느낌이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 정도라면 책을 쓰는 작가도 정말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견디면서 썼을지..
서정적이다.. 그리고 특이한 시점으로 작가의 애정을 표현한다..
여섯개 장의 화자가 모두 다르고 그 느낌도 많이 다르다. 특히 첫번 째 장인 '어린 새'의 화자는 아마도 작가 자신이 아닐까 싶은데 동호를 '너'라고 부르면서 조금은 담담하지만 자세하게 당시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도청 안의 급박한 상황과는 좀 다르게 굉장히 서정적인 느낌이며 동호라는 인물을 굉장히 걱정하는 듯,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 후에도 자신의 얘기를 하기도 하고 3자의 시점으로 보기도 하면서 각 인물들의 사연들을 풀어 낸다. 광주에 관한 굉장히 슬픈 서정시를 보는 것 같았다.
광주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얘기였다..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는 '도대체 어째서 이 시점에서 또다시 광주인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읽으면서 새삼 다시 느꼈다. 역사로 넘겨 버리기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광주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6.25 때문에 고통을 받은 사람들도 아직 그 고통을 다 버리지 못했는데 자신을 지켜줘야 할 국가에 의해 살해당한 기억이 있는 광주가 아직 치유되었을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걸 다시 생각했지만 광주는 계속해서 그 슬픔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세월호 사건이 오버랩이 되었다. 역시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불쌍한 국민들.. 하지만 어느새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얘기하고 있다. 지겹지도 않느냐고.. 하지만 세월호의 유족들은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그만할 때라는 순간은 오지 않을텐데..
소설로서도 재미있다.. 충분히 추천할만한 책..
왠지 창비에서 나온 소설인데다가 이런저런 문학상을 받아온 작가의 책이라고 하면 재미보다는 문학성을 보는 태도로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질 수 있지만 '소년이 온다'는 읽는 재미(왠지 재미라는 말을 쓰는게 좀 미안하지만..)도 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술술 넘어간다. 그동안 번역한 책만 한참동안 읽어 오다가 오랜만에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을 읽으니 글을 읽는 맛도 굉장히 좋았다. 덕분에 국내 소설을 좀 찾아서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쪽 조금 넘는 책은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아서 맘먹으면 하루이틀이면 읽을 수 있다.
광주를 역사로 날려 버리지 않고 동시대의 사건으로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