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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음악가 - 낭만시대의 한가운데서 ㅣ 음악의 글 1
슈만 (Robert Schumann) 지음, 이기숙 옮김 / 포노(PHONO) / 2016년 3월
평점 :
작곡가, 평론가로 변신한 손가락을 다친 피아니스트.
슈만은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나 보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서 가곡과 교향곡, 실내악에서 뛰어난 작품을 쏟아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작곡가의 길을 걷기 전에 이미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만약에 무리한 연습으로 인한 손가락 부상만 아니었으면 작곡가보다는 연주자로 당대에 더 유명했을지도 모른다. 슈만이 손가락을 잃은 것은 속주를 위해 모래주머니를 손가락에 걸고 연습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피아노 연습을 돕는 기계를 무리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연주자로서는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었지만, 그 부상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는 그의 음악들은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슈만에게는 출판업자이면서 집필가이기도 했던 아버지의 재능까지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음악과 음악가'는 음악가 슈만과 작가 슈만이 함께 당대의 음악과 음악가들에 대한 비평을 모아 놓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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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만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 ~1856 독일의 낭만주의 작곡가, 피아노 음악, 가곡, 관현악곡으로 유명하다.
다비드 동맹을 통한 문학적인 음악 비평
음악이나 소설, 시사에 대한 오래된 비평을 읽다 보면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글쓴 사람의 의견을 드러내는 경우가 간혹 있다. 슈만은 '음악신보'라는 음악 평론지를 통해서 다비드 동맹이라는 가상의 음악평론가 집단을 만들고 개성이 다른 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서 당대의 음악을 평가하고 있다. 그러니까, 활발한 성격이면서 격정적으로 평론을 하는 '플로레스탁', 이성적이면서 짧게 핵심을 찌르는 '오이제비우스', 슈만의 스승인 프리드리히 비크를 형상화한 '라로 선생' 등,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인물이 아니라 평론이라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다. 그런 글쓰기 방식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고 하나의 음악을 가지고도 각기의 인물들이 다른 평가를 하는 것도 재미있다.
천재를 사모했던 슈만
맨 처음에 나오는 글이 '쇼팽'의 '작품2'에 대한 찬사로 시작을 한다. '여러분, 모자를 벗으세요. 천재예요.'라는 유명한 말이 들어간 평론으로부터 시작해서 슈만은 계속해서 천재와 수재의 차이점에 대해서 강조를 한다. 아마도 일반적인 사람들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끊임없이 천재를 찾아내고 소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재능만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창작자의 삶이 음악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할만큼 인격까지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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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슈만 Clara Schumann 1819 ~ 1896 슈만하면 떠오르는 그의 부인. 슈만의 스승의 딸로 결혼전의 이름은 Clara Josephine Wieck이다.
전설이 된 음악가들이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책은 음악평론집이기 때문에 원래는 딱히 재미가 있을 책이 아니다. 하지만 슈만은 역시 글을 쓰는데도 뛰어난 소질을 지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중간중간 위트있는 문장들도 있고 당시의 상황을 짧게짧게 소개하는 글들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지금은 전설이 된 쇼팽, 멘델스존, 리스트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이 처음 나왔을 때 그들을 평가하는 평론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지적인 우월감으로 독자들에게 훈계하듯이 가르치는 모습은 조금 불편하기도 한데, 워낙 거장이니 그러려니 하고 읽을 수밖에 없다. 책 전체를 통틀어 낭만주의 시작이라고 할만한 베토벤의 영향력이 물씬 풍기고 있어서 당시 음악계의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다.
사실 이 책은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모든 곡을 다 찾아 들으면서 듣고 싶었지만 나중에 천천히 들으면서 하나씩 다시 읽어 보려 생각중이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연주자에 대한 평은 거의 없고 대개 작곡가에 대한 평에 맞추어져 있다. 지금은 작곡가보다는 연주자에 평론이 집중되는 것과는 많이 다른 점이다. (지금은 클래식 뿐만 아니라 가요도 작곡가에 대해 평을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인 것 같다. 읽고 있으면 부제처럼 마치 내가 낭만주의 음악시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읽으면서 요새 고민하는 것과 맞닿는 말이 있어서 적어 놓겠다.
아류의 불행은 원작의 돌출된 특징만 따올 뿐 본연의 아름다움은 저도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모방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 오이제비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