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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18 (10주년 특집판)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18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11월
평점 :
트렌드를 알고 싶어?
어차피 너무 많은 정보가 흘러 넘치는 세상이다. 유행도 너무 빨리 지나간다. 사실상 유행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 틈에서 조금의 흐름이라도 알려고 해 봐야 나침반 없이 바다를 헤매는 항해사나 다를 것 없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정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중에서 의미있는 정보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펴낸 '트렌드코리아 2018'은 복잡하지만 방향이 있다고,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 보라고 유혹을 한다. 매년 연말, 베스트셀러 상위에 항상 올라가 있는 책이다. 베스트셀러는 잘 읽지 않는데다가 실물경제에 관한 책은 읽지 않는 삐딱한 독서습관을 가졌지만 올해에는 비자발적인 이유로 이 책을 손에 들고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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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저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
YOLO : You Only Live Once의 해가 지나간다
2017년은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뭘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는 이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로 세계사적으로 의미있는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였다. 민중들은 정치적으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 자신감은 여전히 어렵고 힘든 경제에 대한 자신감으로도 전이되어 앞으로의 한국에 대한 희망이 이전보다는 높아진 것 같다. 만연했던 갑질에 억눌렸던 을들이 새로운 정부의 탄생과 함께 기지개를 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엿보인다.
근래 10년을 되돌아봐도 유난스럽게 시끌벅적했던 2017년이었는데, 개인의 삶에서 보면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온 욜로라는 말이 한 해를 휩쓸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원래는 '너 한 번 살고 말거냐',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내 맘대로 살 거야' 정도의 의미로 비아냥거리는 뉘앙스가 있는 말인데, 우리나라로 들어 오면서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멋지게 살아 보자'라는 뉘앙스를 가지게 되면서 20~40대에게 굉장히 쿨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온갖 SNS부터 미디어까지 욜로의 열풍이 흔들고 지나간 한 해였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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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g The Dog은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말로 원래는 주식시장에서 선물시장이 현물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으로는 권력자가 자신의 부정을 감추기 위해서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결국 부수적인 것이 본질적인 것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 주객전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2018년의 키워드.. WAG THE DOGS!
2018년을 맞아 책에서 만들어 낸 말은 '꼬리가 개를 흔든다'이다. 각 알파벳을 어두로 하여 10가지의 트렌드를 예측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며, 본질보다 현상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결국은 본질은 파편화되어 무엇이 본질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사회를 반영한 키워드이다. 2018년을 휩쓸지도 모르는 말을 이 안에서 한 번 찾아 보자.
What's Your 'Small but Certain Happiness'?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Added Satisfaction to Value for Money: 'Placebo Consumption' 가성비에 가심비를 더하다: '플라시보 소비'
Generation 'Work-Life-Balance' '워라밸 세대'
Technology of 'Untact' 언택트 기술
Hide Away in Your Querencia 나만의 케렌시아
Everything-as-a-Service 만물의 서비스화
Days of 'Cutocracy' 매력, 자본이 되다
One's True Colors, 'Meaning Out' 미닝아웃
Gig-Relationship, Alt-Family 이 관계를 다시 써보려 해
Shouting Out Self-esteem 세상의 주변에서 나를 외치다
주의깊게 봐야 할 단어들이 몇 개 있다. 소확행, 플라시보 소비, 언택트, 케렌시아라는 말은 이 책에서 처음 만들었던지 강조된 말들이다. 워라밸이라는 말은 이미 트렌드화되어 버린 말이다. 개인적으로 2018년도의 트렌드로 가장 확실해 보이는 단어는 워라밸이다. 그리고 단어가 유행을 하지는 않더라도 경향성이 확실해 보이는 것은 소확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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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은 Work & Life Balance, 즉,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한다. 책에서는 2018년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선택을 했지만 불황의 시대에 이것이 과연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일부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는 점에서 가슴이 아프다.
이 책 자체가 Wag the Dog이다
이 책은 10주년 기념으로 발간된 책이다. 이전에는 이 책을 사 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지만 10주년 기념 책답게 지난 10년 간의 메가 트렌드 분석이 앞머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에 대한 평가, 2018년에 대한 예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내가 인터넷이나 여러 매체에서 봐왔던 말들이 이미 이 책에서 언급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분석을 잘 한 책인 것 같다는 느낌이다.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과연 이 책이 트렌드를 분석한 것인지, 아니면 트렌드를 만들어 낸 것인지 생각해 볼 구석은 있어 보인다. 흔한 예처럼, 어떤 최고의 패션디자이너가 '내년에 유행할 색은 오렌지 색이고 강아지 모양의 문양이 유행할 것이다'라고 예측을 하면 많은 의류제조업체들은 오렌지 색을 바탕으로 하는 의상을 만들어 내고 강아지 모양의 아이템을 만들어 낼 것이다. 오렌지 색의 옷이 잘 팔리고, 강아지 모양의 아이템이 유행을 끌게 된다면, 패션디자이너가 유행을 예측한 것일까, 유행을 만들어 낸 것일까?
이 책 역시 같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라는 이름값에 더해 10년이라는 역사까지 더해지면서 매년 연말을 장식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렸다. 아마도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이나 관련 업계 종사자, 강사들에게는 연말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 안에 있는 말들을 계속해서 인용하고 언급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책이라고 살 수 있다. 그리고 사실은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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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읽어 낸 책인지,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책인지. 이 책 자체가 Wag The Dog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문제.
트렌드의 원인 = 불황 + 개인화 + 무한경쟁
책 자체가 Wag The Dog이라고 하긴 했어도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파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트렌드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억지로 꿰어 맞춘 것이라고 해도, 그런 흐름을 머릿속에 넣어 두고 사회적인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어 보인다.
책 속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심화되어 가는 불황과 고착화되어 가는 개인화 경향이다. 더불어 치열한 경쟁이 지속되는 사회가 트렌드를 만들어 낸다. 자본은 계속해서 거대해져 가고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 애를 쓴다. 하지만 경제적인 불황으로 소비자는 지갑을 열기가 힘들어 지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화되어감에 따라 적은 금액으로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기를 바란다. 결국 이런 경향을 잘 읽어내면 트렌드를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대표저자의 이전 저작에 대한 반감도 있고, 실몰경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도 없을 뿐더러 유행이나 트렌드에 민감한 성격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고 보니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한번쯤은 지금의 사회문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서 쓴 것처럼 이 트렌드가 읽어낸 것인지, 만들어 낸 것인지를 구별할 필요는 분명히 있고, 정말 그런 것인지 고민해 봐야할 지점도 있다. 하지만 현상을 제대로 나열해 놓은 것만 해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책이 거의 500페이지에 가까워서 두꺼운 편이다. 하지만 읽기 어렵지 않다. 하나의 주제당 열페이지 약간 넘는 정도로 짧게 끊어져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고, 약간 긴 블로그 글을 읽는 정도라서 부담스럽지도 않다. 출퇴근하면서, 짬나는 시간동안 읽기에 좋고, 반드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욱 읽지 않고 관심 있는 부분만 발췌해서 읽기에도 좋다.
마케팅 관련 종사자는 내가 추천하지 않아도 당연히 읽어 볼 것이다. 보고서나 강연을 할 때 인용해서 쓸 수 있는 말이 많다. 그리고 이 책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프레젠테이션이다. 잘 요약만 해도 윗사람이나 청중에게 그럴싸한 말 몇마디 던질 수 있는 훌륭한 소스가 된다.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작년에 이 책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과연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년 동어반복적인 내용이 들어 있을 거라는 추측이다. 나는 아마 내년에는 이 책을 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