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전승에 따르면, 르호보암 5년에 파라오 시삭이 팔레스타인으로 출정한다. - P104

예루살렘만 남고 그것마저 산헤립에 의해 포위된 이후, 히스기야는 이에 굴복하고 막대한 조공을 바침으로써 예루살렘으로부터 산헤립의 퇴각을 얻어냈을 것이다. - P111

전반적으로 볼 때,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도시국가의 형태로 예루살렘만을 위임했으며, 나머지 유다지방을 분리하여 아시리아에게 충성하는 가사와 아스글론과 에그론의 블레셋 왕들에게 배분했다. - P111

요시야의 업적은 우선적으로 아시리아의 제의로부터 이스라엘의 신앙을 단호하게 정화하려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요시야는 이스라엘의 제의 역사 속에서 당당하게 제의 개혁자라는 칭호를 획득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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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경감이 말했다.
"당신이 보고 있는 시체는 브래드우드 저택의 주인이며 백만장자인 양탄자 수입업자 토머스 브래드입니다." - P65

브래드는 살해당할 때 무슨 이윤가로 해서 체커용 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범인이 그것을 몰랐던 것 같소. 그래서 여기다 매달 때 손에서 떨어진 거겠지. - P70

왜 체커 말을 갖고 있었는가? 바로 이것을 알아내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일지도 모르니까요. - P75

"재미있죠? 외국 출신이 분명한 세 사람은 본명을 감추려고 애쓴 것 같은데도, 국적을 나타내는 듯한 흔적을 남겼으니까 말이죠. 더욱이 그상황을 생각해 볼 때 자신들이 태어난 곳은 감추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요" - P102

링컨과 스톨링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브래드가 저녁 때 누군가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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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가 오므리의 통치 시기에 관해 전달해주는 가장 중요한 보고는 그때까지 비거주 지역이었던 사마리아에 새로운 북왕국의 수도가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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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작은 마을 애로요에서 반 마일 정도 떨어진 두 개의 도로 교차점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 개의 도로는 뉴컴벌랜드에서 퓨타운으로 통하는 주도로(主道路)이고, 다른 하나는 애로요로 통하는 갈림길이다. - P10

엘러리가 아버지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정말로 흥미 있습니다, 아버지. 어쩐지 이 사건은 광신자의 소행인것 같은데요."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루든 순경이 말했다. - P19

엘러리는 밴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피츠버그와 같은 대도시에서의 확고한 지위를 중도에 그만두고 애로요와 같은 시골구석에서 직업을 구했는지 궁금했다. - P31

"피켓 총경, 보고해 주시지요."
"애로요 근방을 철저히 수색했습니다만 죽은 남자의 머리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실종된 클링의 행적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클링의 인상착의를 인접한 각 주에 구석구석 배포하고 현재 수색중입니다." - P37

"나는 하라크트라는 사람인데, 대낮의 태양신이오. 라하라크트라는
송골매요." - P42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모양이었다. 모든 경위가 미치광이 짓같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도 없었으며, 조리에도 맞지 않았다.
게다가 무참하게 목이 잘린 처참한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다니! - P48

범인은 범죄현장 근처에 T문자, 또는 표시를 일부러 만들고서 사라졌다는 겁니다. 도로 교차로의 T자형, 도로표지판의 T자 모습, 시체의 T자 모습, 피해자의 현관문에 피로 휘갈겨쓴 T자, 이런 사항들은 신문에 보도되었듯이, 모두 사실 그대로입니다. - P50

"타우 또는 T 십자가만이 그것을 가리키는 명칭은 아닙니다. 때에 따라서는 그것은..."
엘러리는 잠시 멈추었다가 조용히 말을 맺었다.
"이집트 십자가라고도 불리어집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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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왕국과 남왕국의 공존시대 (926-722년 BC)는 가장 분명하게 역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들을 통해 기록된 이스라엘 역사의 시기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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