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곤이 등장했다. 기원전 24세기였다. 그는 아카드제국을 세워 뛰어난 무력으로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통일했다. 동서남북의 다양한 민족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 P61
이 이야기에서 사르곤을 모세로, 이쉬타르를 야훼로 바꾸면 구약성경의 모세 이야기와 병행하는 점이 퍽 많다. - P64
사르곤과 나람-신은 강력한 군주의 모델로서 후대의 여러 이야기에 등장한다. 이 둘은 영웅의 원형이다. 때로는 위대한 영웅으로 때로는 교만한 자의 모습을 오간다. - P67
우르는 남부의 수메르인들을 규합해 새로운 제국을 세웠다. 이른바 ‘우르 제3왕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원전 22세기였다. 전쟁보다는 외교가 중시되었다. 문(文)의 시대가 열렸다. 함무라피 법전보다 더 이른 ‘인류 최초의 법전‘인 우르-남무 법전이 선포되었다. - P74
아카드적인 것이 대체로 실용적이며 호전적이고 현세적인 북부의 경향을, 반대로 수메르적인 것이 원칙적이며 지혜롭고 종교적인 남부의 경향을 띤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경향은 메소포타미아 역사에서 계속해서 병행하며 드러난다. - P78
고대 이집트와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4천 년대에 문명이 시작되었지만 서로 퍽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고대 이집트의 자연, 사회, 종교, 이념, 문화, 역사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 ‘강력하고 우월한 하나의 중심이 대비되는 두 세계를 통합한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면 유리할 것이다. - P85
상이집트는 전통적이고 소박한 문화가, 하이집트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풍요로운 문화가 피어났다. 메소포타미아와 비교하면 남북의 경향성이 뒤바뀐 것이 흥미롭다. - P87
마아트는 삼라만상의 근본적 원리요 상지(智)였고, 파라오는 마아트가 체현된 인격이었다. 파라오는 ‘짐이 곧 국가‘라는 중세 유럽의 절대왕권보다 훨씬 더 강력했고 우월했다. 파라오는 최고의 인간이자 최고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 P89
이집트는 외국에 원하는 것이 없는 나라였다. 국경을 확장해 더 많이 더 넓게 다스려야 한다는 의지 자체가 희박했다. 오직 자신의 풍요로운 중앙을 방어하기 위한 계획, 곧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단조로운 논리만이 머릿속을 채웠다. 고대 이집트는 마아트를 따라 스스로 만족해 지속된 문명이다. - P94
가장 큰 피라미드는 모두 고왕국에서 나왔다. 세번의 중간기는 물론이고 중왕국과 신왕국에도 고왕국의 것만큼 큰 피라미드는 건설되지 않았다. 특히 4왕조는 ‘열렬히‘ 거대한 피라미드를 지었다. 이후로 그런 왕조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 P106
5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우나스부터 피라미드 내부에 문서가 새겨지기 시작한다. ‘피라미드 텍스트‘의 시작이었다. 대개는 "죽은 왕의 안녕을 보증하고, 신들 가운데서 그에게 부여된 지위를 차지하도록 돕는 종교적 문서이며 주술이다." - P120
이제 고대 이집트의 역사에서 고왕국 시기 정도 규모의 거대한 무덤을 건설하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언어도 종교도 체제도 그대로 유지되지만, 조금 다른 성격의 나라가 출현할 것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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