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질은 부드러워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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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꼭 고기를 먹어야 한다

테호는 육류 가공공장 ‘사이프러스’에서 신입직원 관리와 교육을 맡고 있는 직원이다. 원래 간호사였던 아내 세실리아는 별거 중인데 둘 사이의 아이가 죽은 후 실의에 빠져 친정에서 지내고 있다. 세실리아는 난자의 수가 적어서 다시 임신하는 것도 요원하다. ‘사이프러스’는 원래 테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전 지구의 동물들에게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모두 살처분(혹은 그냥 죽었는지)한 후에 도축할 고기가 없어서 직원이었던 크레이그에게 양도했다. 그런데 크레이그는 동물이 없는데 도대체 어떤 고기를 도축하는 걸까?

'사이프러스’는 인간 고기를 도축하여 가공하는 공장으로 변모한다.


충격적인 소재와 더 충격적인 묘사

이 책을 쓴 작가는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 아르헨티나의 작가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라고 하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밖에 모르고 예전에 멋도 모르고 그의 소설을 읽다가 머리가 터질 뻔한 적이 있어서 아르헨티나가 원래 이런 분위기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소설 역시 다른 의미로 심상치 않다.

미래에 식량이 없어서 인육을 먹는다는 소재는 흔히 있을 법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볼만한 흔해 보이는 소재다. 하지만 이 소설이 돋보이는 점은 ‘인육을 먹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아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은 간단하게 등장인물들을 소개한 후, 테호가 ‘사이프러스’에 취업하려고 하는 두 지원자에게 공장을 견학시키는 장면을 자세히 설명한다. 고기로 사용할 인간을 하역하고 타격구역에서는 이마에 충격을 주어 단번에 기절 시킨다. 도살구역에서 도살하고 방혈실에서는 피를 뽑는다. 이후 내장처리실에서 내장을 끄집어 낸 후 절단실에서 알맞게 자르고 지육작업실까지 거치고 나면 이제 식탁에 올릴 수 있는 상품으로서 고기가 완성된다.

고기로 사용되는 인간들은 일반적인 인간과 같지는 않다. 태어날 때부터 아예 인간과는 분리해서 사육하고 빨리 고기를 얻기 위해서 성장촉진제를 사용한다. 당연히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는다. 성대를 잘라 버려서 말도 못한다. 그저 생존본능만 있고, 인간과 똑같이 생겼을 뿐, 동물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소설의 긴장감은 엉뚱한 곳에서

그냥 인육을 먹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을 묘사해 나가던 소설은 뜻밖의 뇌물 때문에 갑자기 긴장감이 생긴다. 테호에게 잘 보여야 하는 사육장 사장이 테호에게 암컷 FGP를 뇌물로 건네는데, FGP는 순종 1세대로 성장촉진 호르몬도 사용하지 않고, 유전자변형도 하지 않은 정상적인 인간과 똑같은 개체이다. 변형이 있는 개체에 비해 훨씬 맛이 좋기 때문에 알아서 처리하라고 테호의 집에 두고 간 것인데, 테호는 이 암컷을 헛간에 키우다가 집안으로 들이고 재스민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그리고 관계를 맺은 후 재스민은 임신을 한다.

이 세계관에서 고기용 인간과 성관계를 맺는 것은 불법이며, 발각이 되면 개체 뿐만 아니라 성관계를 맺은 사람까지 인육이 되는 처벌을 받는다. 가정에서 사육되고 있는 개체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개체 사육 관리청’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사육 개체는 검사도 받아야 한다. 재스민의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애정을 가지게 된 테호는 어떻게든 아이를 낳고 싶어하고, 그 아이를 가진 재스민도 따스하게 돌봐 주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구체적인 설정, 그리고 결말이…

소설은 1부와 2부로 되어 있다. 1부는 주로 끔찍한 설정,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세상을 다룬다. 인간을 고기로 다루는 과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인신매매를 통하여 고기가 아닌 인간을 잡아먹는 일도 있고, 회사 밖에는 스캐빈저라고 하는 최하층 인간들이 상품가치가 없는 고기를 던져주면 먹어치우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인간의 먹이로 희생하는 교단까지 생긴다. 전제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전제를 인정하고 나면 있을 법한 상황이 계속 펼쳐진다. 이후 2부에서는 재스민이 어떻게 될 것인지, 뱃속의 아이는 어떻게 될 것인지 긴장감 있게 읽을 수 있다. 테호가 정성스레 돌보는 재스민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재스민은 뱃속의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까.

그리고 결말은… 근래 읽었던 책 중에서 이 정도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소설이 있을까 싶다. 마지막 두 페이지의 반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의미를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 어쨌든 읽어볼만한 소설 책을 읽는 내내 이 작가가 비건일 것이라는 추측을 쉽게 해 볼 수 있었다. 인간을 도축하고 먹는 끔찍한 과정을 그대로 동물에게 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작가는 비건이긴 한데, 채식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결말을 보면 비건으로서 육식을 비난하고자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닌 것 같다.

★★★★

아르헨티나의 소설은 좀 신기하다. 신기한 소설만 아는 것인지 원래 그 나라가 그런 소설들이 인기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괴상하다. 굉장히 구체적으로 써서 그런 것인지, 충격적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읽을 만하고 재미있다. 페이지도 술술 잘 넘어간다. 그냥 읽으면서 꼭 동물에 대한 연민이 아니더라도 생각할 것이 많아 보이는 소설이다. 마지막 반전 때문에 별 반 개를 더 추가한다.

가볍게 한 번 읽어 보는 것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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