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가 없다. 홍콩이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4개월 전 나는 우리의 도시가 이런 모습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 우리는 광기와 이성의 경계선에 위태롭게 서 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우리는 갈수록 무엇이 이성이고 무엇이 광기인지,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죄악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명하게 나눌 수 없어졌다. - P583
좌파 인사들 눈에 영국인을 위해 목숨도 거는 홍콩 현지인은 일본 침략시기의 친일파들과 다를게 없나 보다. 모두 민족의 대의를 저버린 매국노라는 것이겠지. 마찬가지로 홍콩인 경찰들은 영국인 경찰보다 좌파를 더욱 증오한다. 경찰이 범죄가 아니라 시민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나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 P590
이 시대는 이렇게나 괴상했다. 나는 날마다 형과 내가 어디선가 폭탄이 터져 죽을까 걱정한다. 치안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고, 정부는 전복될 위기에 처했고, 사회는 마비되었고, 도시는 전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 P594
권력이란 원래 이런 것이다. 높은 사람은 이상과 신념, 재물로 유혹해 아랫사람이 목숨도 바치게 만든다. 인간은 위대한 목표를 위해서 사는 것보다 평온한 생활을 추구한다. 충분한 이유만 주어지면 기꺼이 노예나 종이 된다. - P601
정톈성은 균형을 잃고 바지 주머니에 꽂았던 왼손을 빼내 아삼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그 순간 내 눈을 끄는 뭔가가 있었다. 손바닥만한 종이쪽지가 정톈성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내 발 앞에 떨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종이를 집어 들고 쓱 훑었다. 순간 남의 일에 괜히 말려들지 말자는 생각에 종이를 얼른 경찰들 쪽으로 내밀었다. - P605
"당신은 머리가 좋아요. 당신 덕에 그 지도도 찾아냈잖아요." 아칠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나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난 규칙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 외에 늘 상사의 지시대로만 해왔어요. 하지만 당신은 달라요. 사고방식은 거칠지만 섬세하고, 내가 보지 못하는 많은 부분을 찾아냈잖아요. 게다가 당신은 두즈창과 쑤쑹 등의 대화를 들은 핵심적인 증인이에요. 그러니 당신이 있어야 그들의 허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요." - P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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