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챈감포가 황금으로 만들어진 녹도모綠度母상을 혼인 예물로 바치자 당 태종이 그에대한 화답으로 석가모니 12세 등신상을 혼수로 보낸 것이다. - P97

현장은 인도로 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태종에게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합법적인 길은 막혀 있었다. 그는 국법을 어기는 것을 감수하고 몰래 인도로 향했다. - P104

규기는 술과 고기와 여자를 금하지 않는 것을 출가 조건으로 내걸었고, 현장은 이를 수용했다. 규기는 수레 석 대를 거느리고 다녔는데, 앞쪽 수레에는 경전을 싣고 가운데 수레에는 자신이 타고 뒤쪽 수레에는 술과 고기와 여자를 싣고 다녔다. 그래서 규기를 ‘삼거車 법사‘라고도 한다. - P115

규기는 현장의 법맥을 전수받는 수제자의 권리로 독점 강의를 요구했다. 이를 거절할 수 없었던 현장이 형식적으로는 규기의 요구를 들어주되 실질적으로는 원측에게도 가르침을 나눠주고자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 P120

태종은 "구리를 거울로 삼으면 의관衣冠을 바로잡을 수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밝힐 수 있다"라면서 위징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다. - P125

"두려워할 것은 오로지 백성뿐입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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