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임꺽정이의 이야기를 붓으로 쓰기 시작하겠습니다. 쓴다 쓴다 하고 질감스럽게 쓰지 않고 끌어오던 이야기를 지금부터야 쓰기 시작합니다. - P7
연산주 때에 이장곤長이란 이름난 사람이 있었는데, 일찍이 등과하여 홍문관 교리 벼슬을 가지고 있었다. - P14
그럭저럭 몇 해를 지내는 동안에 왕의 심법과 행사는 나날이 더 고약하여 이교리는 무슨 화가 자기 몸에 내리지 아니할까 두려워서 하루라도 맘이 편할 날이 없었다. - P15
이튿날 아침에 이교리가 집에 나와서 아침상을 대하였을 때, 자기를 거제로 정배하되 배도압송하라는 왕의 명령이 내린 것을 알고 아침을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얼마 아니 있다가 금부도사가 재촉하는 대로 총총히 귀양길을 떠나 문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 P21
삭불이는 다시 하하하 웃으며 일어섰다가 얼굴에 걱정하는 빛을 띠고 다시 자리에 앉으며 한씨를 보고 하는 말이 "이교리가 지금 죽지는 않았더라도 죽기가 십상팔구일 것이오. 지금 임금이란 것이 의심이 많은데다가 사람을 죽이는 데 수단이 난 터이니까. 내 청으로 이교리를 좀 살려봅시다. 네?" - P28
그 처녀는 헐떡거리는 나그네를 한번 흘끗 돌아보더니 바가지에 물을 떠서 한손에 들고 한손으로 머리 위에 늘어진 버들가지에서 잎사귀를 따서 물바가지에 띄운 뒤에 외면하며 바가지 든 팔을 내밀었다. - P55
주팔이가 형을 보고 "김서방은 두말이 없답니다." 하니 그 형수가 내달아 말하였다. "그렇지, 당초에 두말이 있을게요?" 이리하여 김서방과 봉단의 혼사가 결정되고 주팔이가 날을 받아 칠월 칠석날로 혼인 날짜까지 작정되었다. - P75
김서방이 일손이 느릴 뿐이 아니라 게으름을 부리어서 조만한 잔소리가 아니면 당초에 일을 잡지 아니하는 까닭에 주삼의 아내가 게으름뱅이라고 별명을 지어서 김서방을 부를 때에 "게으름뱅이 게 있나?" 하면 김서방도 "네." 대답하게 되었다. - P91
돌이는 조금 불쾌한 기운이 있는 말로 "무슨 소문이 무어요. 읍내는 지금 야단법석입니다." 하고 주삼의 방으로 가까이 와서 "새 상감이 났다고 옥문을 열어젖히고 죄인들을 내놓고 야단인데 옥에 갇히지 않았던 사람들도 경사가 났다고 들뛰어서 부중안이 와글와글합니다." - P138
이교리가 원과 수인사하고 조정 소식을 대강 들은 연후에 그동안의 소경력을 대강대강 이야기하니, 원도 놀라고 책방도 놀라고 통인도 놀라고 이야기 듣던 사람으로 놀라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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