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로니아를 패배시켰던 페르시아 제국의 왕 고레스의 말로 포로기를 둘러싼 침묵은 끝난다. 역대기의 끝과 에스라서 시작에서 반복되는 한 선언에서, 고레스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되고, 포로민들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 P175

바빌로니아는 오직 "그땅의 비천한 자들"만이 유다에 남아있게 했다(왕하 25:12). 따라서 바빌로니아 포로민은 비교적 엘리트 지위를 가지고 있던 자들로서 이미 그 땅에 남아있던 사람들과 구별됐다. - P177

이 포로민들은 바빌로니아 탈출을 제2의 출애굽으로, 그리고 그 땅으로의 재진입을 새로운 정복으로 간주했다. 디아스포라 생활 가운데 거의 죽을 뻔한 집단적 경험은 포로민들을 유다에 남아있던 "그 땅의 비천한 자들"과 더욱 분리시켰다. - P178

비-포로민 아내들과의 이러한 이혼은 성서 이야기 안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로 남아있다. 그것은 포로기에 표면화됐던 선택받음과 정결함에 관한 믿음의 부정적인 결과를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해준다. - P186

에스라 및 다른 이전의 포로민들은 회복탄력성이 매우 강한 공동체 구조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유대교는 약속의 땅을 몹시 지향하고 있었지만 이는 그 땅 밖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실천될 수 있는 포로민의 종교였다. 대부분의 고대 민족 형태와는 달리 과거 포로기의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 어떤 왕정이나 심지어 부족 정치 구조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어떠한 제국도 그들의 신적인 왕을 추방시키거나 처형할 수 없었다. - P189

메넬라오스의 부추김을 통해서든, 아니면 자신의 분노나 다른 동기에 의해서든 안티오쿠스는 유대교 자체를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 P194

하스모니아의 왕들은 스스로를 그리스인에 대항하는 수호자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 왕조는 헬레니즘의 문화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기치(brand)는 반-그리스였지만, 그리스의 방식을 사용하여 그 기치를 촉진시켰다. - P197

하스모니아 왕조는 히브리 경전이 표준화되기 시작한 곳이었다. 이전의 유대인들은 경전에 대한 보다 유동적인 개념을 가지고서 활동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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