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700년대의 어느 시기에 이스라엘 국가는 당시의 초강대국 아시리아의 공격을 받아 그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됐다. - P41

이러한 트라우마 상황 안에서 예언자 호세아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야웨가 자신의 백성의 부모, 즉 하나님의 백성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부모라고 선포했다. - P43

호세아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성실, 즉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와 신적 형상 헌신이 정확하게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의 압제 아래서 고통받는 이유다. - P45

호세아는 더욱 깊은 무언가가 진정으로 잘못됐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은 전략적 결정을 잘못했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신 야훼에게 전적으로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 P50

깊이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심판하고 있다는 생각보다 그들을 더욱 두렵게 하는 단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이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다. - P51

다른 신들과 우상들에 대한 백성들의 숭배를 간음으로 묘사함으로써, 호세아는 트라우마를 입은 청중들이 가장 취약하다고 느낀 시기에 가장 소중한 종교적 관습 중 일부를 포기하도록 충격을 주려고 했다. - P53

유일신론적 충격의 틀 안에서 이해된다면, 모든 종류의 고통은 옛 신들을 포기하려는 열성의 부족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 P61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대한 아시리아의 황폐가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을 파괴했던 하나님은 끝나지 않았다. - P66

아시리아와 성서 자료의 조합은 예루살렘 포위로부터 아시리아의 기이한 철군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고, 이것이 기적적인 재앙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조공을 제공한 것에 의해 진행됐다고 보는 것이 더욱 가능성 있다. - P73

분명히 요시야의 율법책, 신명기는 서기관들에 의해 모세의 연설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아시리아의 영향을 받은 언약 문서에 고대의 권위를 더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 P86

호세아가 유다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스라엘인 예언자였다면, 요시야는 북쪽에서 기원한 한 문서를 사용함으로써 호세아와 같은 생각들을 제정했던 유다의 왕이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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