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 이젠 지쳤어. 모르겠어.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도. 이렇게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면서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 글쎄, 최소한 지루하다는 느낌은 가질 수 있잖아. 그리고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니야. 매번 변하고 있어.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면서. - P11

지난 토요일 저녁, 우리 여섯 명은 산장에 모였어. 하지만 정작 우리를 초대한 악마는 오지 않았지. 모두 초면인지라 선웃음을 지어가며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어. - P12

연쇄살인범은 다만 자신의 환상을 현실로 옮긴 자들입니다. 무기력한 몽상가가 아닌 과감한 행동가들이라고 할 수 있죠. - P17

모두들 무엇엔가 마음을 빼앗기고 싶어 하잖아. 그래야 자기 마음을 물끄러미 오래 들여다볼 필요가 없으니까. - P20

악마는 투명했어. 그가 올린 수많은 글을 살펴봐도 그에 대해 유추할 만한 단서는 전혀 없었지. 연령대, 성별, 직업은 물론이거니와 성향이나 생각조차도 알기 힘들었어. 역사와 심리에 해박하며 지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밖에는. - P23

"그러고 보니, 방이 꼭 여섯 개네요."
연우가 무심코 던진 말이 그들의 가슴 밑바닥에 끈적하게 눌어붙었다. 모임의 주최자인 악마까지 왔다면 인원은 총 일곱 명인데.... 혹시 이미 와 있는 게 아닐까? 모두가 똑같은 의혹을 품었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P30

이번 주말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회원 몇 분만 제 별장에 초청하여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마련할까 합니다. 홈페이지에 차마 올리지 못한 희귀 자료도 공개하고, 재미있는 게임도 준비되어 있으니 꼭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 P35

지금까지의 행태로 봤을 때 악마라는 놈은 철저한 조직적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직적 연쇄살인범은 일정한 기준과 목적을 먼저 세우고 거기에 맞춰 희생자를 선택하는 게 특징이죠. - P41

악마가 제안한 대로 우리는 친목을 다지고 있었어.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반나절 만에 몇 년을 가까이 지낸 지인들보다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되었지. 마치 예정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시간을 압축해서 친해지려는 사형수들처럼. - P44

오후 내내 묻는 말에만 마지못해 답하던 연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여섯 개의 눈동자가 그녀에게 몰렸다.
"우리 모두 연쇄살인범에 미쳤잖아요. 그래서 여기 모이게 된 거 아닌가요?" - P47

민규는 맞은편 벽에 기대앉은 연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간신히 목을 가누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지저분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것처럼 흐리마리했다. 몸이 구름에 감싸여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째 굶은 것인지, 어떻게 탈출할 것인지,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남은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저 여자가 잠들면, 내가 죽는다. - P67

지난 금요일 저녁, 우리 일곱 명은 산장에 모였어. 하지만 정작 우리를 초대한 악마는 오지 않았지.…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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