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사표를 냈다. 무미건조하게 이어 온 결혼 생활도 끝냈다. 분양 받은 아파트도 팔았고, 이름깨나 날리던 연극 판도 떠났다. 틈만 나면 모여서 부어라 마셔라 했던 형님들, 아름다운 여인들과도 모두 관계를 끊었다.(술이 생각나고 포커를 치고 싶어도 다시는 나를 찾지 말길!) 몇 년은 그럭저럭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한 다음 어두컴컴한 신하이 터널을 지나 새똥이 누덕누덕 덧입혀진 공동묘지 같은 이곳 워룽제에 새로 둥지를 틀고 사설탐정이 됐다. - P9
학과장, 학장, 총장은 약간 떨리는 손으로 사직서를 건네받더니, 마치 하늘에서 선물이 뚝 떨어지기라도 한 듯 하루 만에 신속히 사표를 수리했다. 대학 강단에 선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관료 시스템이 이렇게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처음 봤다. 이들은 학생들을 계속 가르치는 것이 어떠냐는 형식적인 말로 나를 붙잡는 척했다. 하지만 폭죽을 터뜨리고 북을 치며 환송하는 사람들이 없을 뿐, 내가 학교를 떠나는 것에 내심 고마워하고 흥분하는 눈치였다. -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