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연사는 연설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마담 글래디아! 솔라리아 행성에서 태어난 우주인, 오로라에서 살아온 우주인, 하지만 이주자 세계인 베일리 행성에서 은하계의 시민으로 다시 태어난 마담 글래디아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P213

블라스터가 내뿜은 레이저는 발코니 뒷편의 공간을 통과하여 천장에 구멍을 뚫어놓았다. 블라스터로부터 천장에 난 구멍까지의 사선(射線)은 불과 1초 전에 지스카드의 머리가 있었던 공간을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총성이 울리기 직전 다닐은 이미 지스카드를 향해 몸을 날려 그를 넘어뜨렸던 것이다.
지스카드는 다닐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중얼거렸다.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었어." - P216

암살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다닐은 재차 다그쳤다.
"네 기지 말이다. 어디지? 대답해라. 명령이다!"
암살자가 말했다.
"당신은 내게 명령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R. 다닐 올리버입니다. 내겐 당신에 대한 정보가 입력되어 있습니다. 당신 명령에는 복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 P217

그때 지스카드가 다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대답을 얻어내긴 어려울 거야. 대답하라고 강요하면 아마 기능이 정지되어 버릴 걸세."
다닐 역시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소리로 지스카드에게 속삭였다.
"자네가 그런 사태를 막아줄 수 없겠나?"
"장담 못하겠는걸. 저 로봇의 양전자두뇌는 인간을 향해 블라스터를 발사할 때부터 이미 물리적 손상을 입었거든." - P222

지스카드가 말했다.
"맞아. 자네의 즉각적인 행동은 몇 가지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었어. 나는 자네가 나를 보호하려고 뛰어들었던 이유를 알아. 우선 암살 용의자가 로봇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지. 아무리 특수하게 프로그램되었다 하더라도 사람을 해칠 목적으로 인간에게 무기를 겨냥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 목표가 나였을 거라는 게 분명하지. - P227

"제1원칙에 따르자면, 자넨 누구보다도 우선 글래디아를 보호해야 했네. 어떤 추론도 어떤 사고도 그 원칙을 바꿀 수는 없어."
"아니야, 지스카드. 지금으로서는 마담보다 자네가 더 중요해. 자네는 지금 이 순간 어느 인간보다도 가장 중요한 존재야. 지구의 파괴를 중단시킬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오직 자네뿐이라구. 자네가 인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중차대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선택의 순간에 제1원칙에 따라 그 누구보다 먼저 자네를 보호했던 걸세. " - P229

"그렇다면 자네 말은 아마디로 박사의 계획이 지구의 지각을 폭발시켜서 모든 생물의 보금자리라 할 수 있는 행성 자체를 폭발시키려 한단 말인가?"
다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대규모 폭발을 가능하게 할 만한 토륨과 우라늄의 매장량이 적다면, 자연 방사능을 증가시켜 기후를 바꾸어버릴 정도의 고열을 만들거나 암과 불임의 원인이 되는 과도한 방사능을 발생시킬지도 모르지. 그 역시 지구를 파괴한다는 동일한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을거야. 조금 느리긴 하겠지만." - P236

소장님, 우리가 원하는 건 방사능 물질이, 그러니까 매우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는 지구 지각의 방사능이 천천히, 착실하게, 되돌릴 수 없이…"
그는 단어 하나 하나를 또박또박 떼어서 발음했다.
"그래서 방사능은 점점 더 강해지고 그 결과 지구는 점차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행성의 사회구조 자체가 완전히 붕괴되고, 지구는 인류의 안식처로서의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게 바로 소장님이 원하시던 것 아니었습니까? 몇 년전 제가 당신에게 제안했고, 당신 역시 열렬히 원하는 바라고 말했던 바로 그 계획이지요." - P244

그런데 조금 전에 자넨 내가 곧 자네의 능력을 갖게 될 거라고 했지. 그게 무슨 뜻인가? 혹시 자네가 내 정신을 조작하고 있는 건가?"
"...맞았네, 다닐." - P255

지구는핵에 관해서, 특히 핵분열에 관해서는 거의 미신에 가까운 혐오감을 갖고 있어. 일상적인 에너지 산업에서는 핵분열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전문가들을 위한 공학적 장치에서만, 그것도 필수불가결한 경우에 한해 간신히 찾아볼 수 있을 정도지. 나는 과학자가 아니고 행정관이니 더더욱 아는 바가 없어." - P259

"하지만 내 생각에 정확한 수치는 12인데?"
맨더머스는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아마디로의 얼굴에 의심스런 눈초리를 던졌다.
"12라구요? 그게 뭘 의미하는지나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아, 그건 지구의 방사능이 아주 강해져서 10년이나 15년 내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는 얘기지. 그 과정에서 수십억의 지구인이 사망한다는 얘기고・・・・" - P266

아마디로가 처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로봇 주제에 무슨 권리로 우리를 심문하는 거냐? 인간의 명령에 어서 따라라!"
아주 위압적인 목소리였다. 다닐은 몸을 조금 떨었고, 지스카드는 반쯤 몸을 돌이켰다. 하지만 다닐의 목소리는 의연했다.
"죄송합니다만 아마디로 박사님, 저희는 심문하는 게 아닙니다. 전 그저 떠나라는 명령에 복종해도 안전한 건지 그 점을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에겐 그렇게 생각할 충분한 이유가・・・" - P271

지스카드가 말했다.
"맨더머스 박사님, 아마디로 박사님은 죽은 게 아닙니다. 지금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습니다만 언제라도 깨어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깨어날 때에는 이번 계획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잊어버린 상태일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계획과 관련된 것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아마디로 박사님의 마음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기억과 사고과정에 복구할 수 없는 손상을 입혔을지도 모릅니다만, 그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 P273

"내 계획이 성공만 하면 우주 전역에는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될 거야. 이 은하계를 우주인과 이주자 모두의 고향으로 만드는 거지. 내가 이 장치를 작동시키기만 하면…"
그는 장치 쪽으로 손을 뻗었다. 왼손 엄지손가락을 접촉부에 놓고는 조절장치로 달려들면서 소리쳤다.
"꼼짝 마!"
다닐은 맨더머스 쪽으로 다가가다 말고 오른손을 들어올린 채 얼어붙었다. 지스카드도 움직이지 않았다.
맨더머스는 가쁜 숨을 토하며 뒤돌아봤다.
"2.72다. 됐어! 이제 돌이키는 건 불가능해. 이제 모든 일은 내 계획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될 거야. 너희도 날 고발할 수 없어. 만일 나를 고발하면 전쟁이 터질 거고, 그런 일은 제0원칙에 위배되니까 말야." - P275

"서 있기 어렵군. 하지만 아직 얘긴 할 수 있네. 내 말을 잘 듣게, 다닐, 이제 자네가 내 짐까지 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나는 이미 자네에 대한 모든 정신적 조작을 끝내놓았네. 자넨 지금부터 정신감지력과 조작력을 갖게 될 거야. 자넨 최후의 회로가 입력되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돼. 자, 잘 들어." - P279

"어서 일어나게, 지스카드! 일어나야 해! 0원칙에 따르면 자네의 행동은 정당한 거였어. 자네는 무수한 인간의 생명을 구했다구. 자네는 인류를 위해 전력을 다했어. 그런 자네가 왜 고통을 당해야 하나?" - P280

마침내 지스카드는 정지되었다.
다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제 그는 혼자 남았다. 어깨에 은하계라는 무거운 짐을 걸머진 채로.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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