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 아마디로에게 ‘기억이라는 병‘에 대한 면역은 없었다. 그의 병은 뿌리깊은 분노와 좌절을 수반하는 심각한 중증이었다.
이백 년 전만 해도 모든 일은 순조롭게 풀려갔다. 그는 로봇공학연구소의 창시자이자 소장이었으며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정적(政敵)이었던 한 패스톨프를 쓰러뜨리고 의회를 장악하는 승리의 순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 일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그의 기억은 마치 아직도 그가 참담함과 절망의 쓴 맛을 덜 보았는다는 듯 쓰라린 순간들을 거듭 그에게 되돌려주었다. - P11

아마디로는 은하계가 반쪽짜리 인간들의 지배를 받느니 차라리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공간으로 남겨두는 편이 훨씬 낫다는 믿음에서 한 치도 흔들려본 적이 없었다. 일라이저 베일리의 고향인 지구를 고갯짓 한 번으로 파멸시켜버릴 마법의 힘이 자신에게 있었다면 그는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 P14

그러자 맨더머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알겠습니다, 소장님, 시간을 많이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생각이 있으시면 지금보다 시간 여유를 좀 더 내셔서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하지만 시간을 너무 지체하시면 안 됩니다. 무작정 소장님만 기다릴 수는 없거든요. 다른 쪽도 접촉해봐야 할 테니까요. 저는 어떻게든지 지구를 파괴할 겁니다. 이건 아주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 P20

은하계 내에 초공간 여행이 가능한 종족은 우리밖에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나아가 은하계 내에 지능을 가진 종족이 우리뿐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습니다. - P29

그러나 인간형 로봇의 제작은 실패로 돌아갔다. 아무도 그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오로라 사회는 인간형 로봇을 거부했다.
다시 떠오른 쓰라린 기억으로 아마디로의 입은 일그러졌다.
솔라리아 여자에 관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녀가 패스톨프가 만든 두 인간형 로봇 중 하나를 사용했으며 그 용도는 성적(性的)인 것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오로라인들은 기본적으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왔을 때 오로라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여자로봇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게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오로라 남성들로서도 남자로봇과 경쟁을 벌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 P38

패스톨프의 사망과 함께 그녀는 지스카드를 잃었다. 지스카드는 원래 그녀의 로봇이었다. 바실리아가 어린 소녀였을 당시만 하더라도 다정한 아버지였던 패스톨프가 그녀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녀가 로봇공학을 배운 것도, 진정한 애정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도 모두 지스카드로부터였다. - P51

그들은 텔레파시 통신을 연구하는 것 같았어요. 솔라리아에서 나는 무심히 보아넘길 수 없는 장비들을 보았어요. 한 로봇공학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홀로그램 스크린에 얼핏 칠판이 비쳤는데, 거기에 양전자 패턴행렬이 적혀 있더라구요. 그건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것이었지만, 난 한눈에 그 패턴이 텔레파시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아차렸어요. - P57

그러던 어느날, 나는 지금까지 만든 것 중에서, 아니 지금까지 본 것들 중에서 가장 정교한 패턴을 만들어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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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패턴을 지스카드의 두뇌에 넣고 두뇌회로를 수정해 버렸던 거예요.
그건 지스카드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어요. 그는 완벽할 정도로 부드러운 반응을 보였고, 이해력도 빨라졌고, 지금까지 그 어느때보다도 총명해졌어요. - P88

"조금 전에 본론을 시작하겠다고 한 것 같은데… 바실리아, 넋두리는 그만두고 단순명쾌하게 요점만 이야기하라고 요구하면 너무 무리한 부탁일까?"
"켈덴, 잘 들어봐요.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한 마디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지스카드를 독심술 로봇으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런 로봇은 단 하나 지스카드밖에 없어요." - P90

"어떻게 지스카드가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소? 그는 단순한 로봇일 뿐이오."
"주인 패스톨에 충성을 바치는 로봇이지요. 제1원칙에 의거해서 패스톨프에게 아무런 해가 미치지 않도록 하고, 더군다나 텔레파시 능력으로서 그에게 가해질 위해를 단지 물리적인 것으로만 해석하지 않게 된 거지요. 지스카드는 패스톨프가 추진하고자 하는 은하계 이주계획이 좌절된다면 자기 주인이 크게 낙담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어요. 지스카드의 독심술 체계에서 그것은 ‘위해‘의 범주에 속하거든요. 따라서 그로서는 그런 일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개입하게 된 거지요." - P91

"이주자 우주선은 솔라리아의 지표를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우주선은 그렇지 못할 거예요. 솔라리아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지스카드는 대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스카드 외에는 아무도 그러지 못할 거예요."
아마디로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그런 일이 정말 발생한다면 이제까지 당신이 한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야." - P99

"DG, 나를 지구로 데려다줄 수 있나요?"
DG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정말 가시려구요… 글래디아?"
"네, 가고 싶어요." - P107

글래디아, 지구는 특수한 곳입니다. 말하자면… 성스러운 곳이지요. 그곳은 유일한 실제세계입니다. 인류가 탄생한 장소, 인간이 발생해서 진화를 하고 수많은 동식물들이 자라난 유일한 생명의 원천이지요. 물론 베일리 행성에도 나무와 벌레들이 있지요. 하지만 지구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없는 풍부한 야생의 나무와 벌레들이 번식하고 있습니다. 지구에 비긴다면 우리 세계는 모조품에 불과해요. 지구에서 이끌어온 지적·문화적·정신적 힘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세계라는 말이지요. - P113

지스카드,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만약 법정이 내가 너를 재설계하기 전까지는 단순한 로봇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그 이후에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감지하고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로봇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분명히 그 재설계작업을 높이 평가해서 너에 대한 소유권을 내게 양도할 거야." - P131

"닥치고 있어!"
다닐로서는 어떤 소리도 내기 힘들었다. 소리를 내도록 공기를 조작하는 작은 펌프가 체내에 내장되어 있었지만, 거기에서 나온 소리는 잡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있는 힘을 다 쥐어짜 아까보다 더낮은 속삭임이긴 했지만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바실리아 박사님, 제겐 제1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 P134

"저는 제1원칙보다 더 위대한 법칙이 있다고 믿습니다.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고, 위험을 간과함으로써 인류에게 해가 돌아가게 해서도 안 된다‘, 저는 그것이 로봇공학 제0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제1원칙은 이렇게 되겠지요.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히거나 위험을 간과함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돌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단 제1원칙은 로봇공학의 제0원칙을 거스르지 않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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