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 드라마가 정지화면 상태로 끝난 것 같은 순간이었다. 로봇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베일리도, 바실리아 에일리나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드디어 바실리아가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는 웃음기가 걷힌 긴장된 얼굴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지구인, 지금 나더러 인간형 로봇을 죽인 공범이라고 했나요?" 베일리가 대답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박사." - P11
"글쎄, 그럴까. 자, 한번 시험해봅시다. 나는 지스카드에게 당신의 명령과 상충되는 명령을 내리겠소. 지스카드가 누구의 명령을 따를지 직접 확인해보는 게 좋지 않겠소?" "지스카드!" 바실리아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지스카드는 바실리아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상한 음색으로 말했다. "리틀 미스, 나는 베일리를 보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우선권이 있습니다." "정말이야? 그게 누구의 명령이지? 이 이방인의 명령이야?" 지스카드는 말했다. "한 패스톨프 박사님의 명령입니다." - P13
지구인, 내 말을 들어봐요. 물론 내가 그의 유전자 중 일부를 나눠 받기는 했겠지만, 한 패스톨프 박사는 나를………나를 하나의 인간으로는 보살피지 않았단 말예요. 그에게 나는 하나의 실험대상, 즉 관찰할 필요가 있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했어요. - P18
"나보고 말하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요, 말하죠. 이게 그 대답이에요. 한 패스톨프 박사가 관심이 있던 건 한 가지뿐이었어요. 오직 한가지뿐이죠. 그건 인간의 두뇌 기능이에요. 그는 인간의 두뇌를 어떤 방정식의 조합이나 선으로 이어진 다이어그램이나 미로풀이 정도로 단순화하기를 원했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인간 행동의 수학적인 과학을 세우고 싶어했지요. 그는 이 과학을 ‘심리역사학‘이라고 명명했어요. 당신도 분명히 그와 대화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서 그런 얘기를 들었을 텐데요. 그는 편집광이에요." - P19
바실리아가 외쳤다. "지스카드! 패스톨프 박사가 너를 더 이상 필요없어 하거든 우리 연구진에 합류하는 게 어때?" 지스카드는 그녀를 차분히 쳐다봤다. "패스톨프 박사가 허락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리틀 미스.", 이상하게도 그녀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제발 그래줘, 지스카드 한 시라도 너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저도 종종 아가씨를 생각했습니다, 리틀 미스." - P31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 나뿐만이 아니오. 그런데 뭐 하실 말씀이라도……." "당신과 얘기를 하고 싶소." "지금 얘기하고 있지 않소?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대답했다. "그레미오니스요." "샌트릭스 그레미오니스?" - P45
"나는 늘 완벽한 내 짝을 찾고 싶어했소. 다른 누구도 더 이상 필요없는 진짜 짝 말이오. 사람들은 이런 걸 가리켜 일부일처제라고들 하더군. 그런 제도는 오로라에는 없소. 하지만 어떤 행성에는 있어요. 지구에는 있을 테지, 안 그래요?" "이론적으로는 그래요, 그레미오니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요. 나는 오랫동안 그걸 기다려왔소. 내가 가끔씩 섹스 경험을 할 때도 항상 뭔가가 빠진 것 같았지. 바로 그럴 때 바실리아 박사를 만났던 거요. 더군다나 그녀는 내게 자기의 비밀을 이야기해주었소. 사람들은 예능요원과는 터놓고 지내는 법이니까요." - P69
"그 다음엔 글래디아에게 청혼하기 시작했지요?" "그렇소." "거듭해서 "그렇소." "왜 여자를 바꿨소?" 그레미오니스가 말했다. "바실리아 박사가 안 된다는 최후통첩을 보냈을 때 글래디아가 나타났고, 그리고 그녀는 바실리아 박사를 닮았기 때문이오." . . . "하지만 뭐 다른 게 있었을 텐데, 그런 건 없소?" "다른 거라니, 뭘 말하는 거요?" "글쎄……… 바실리아 박사가 당신을 영원히 거부하겠다고 했을 때, 어떤 암시 같은 건 없었느냐는 얘기요. 그러니까 당신에게 어떤 대안을 제시했다든지….." - P71
"이봐, 내 비록 천재라고는 할 수 없지만 허튼 소릴 지껄이는 천치는 아니라구.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내가 알아채지 못할것 같소!" "내가 뭘 어쨌단 말이오?" "당신 질문은 모두 내가 바실리아 박사 때문에 글래디아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도록 만들려는 교묘한 유도심문 아니오? 그래요, 바로 그거요!" 그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도 놀란 듯 입을 다물더니, 한참 후 중얼거리듯 말했다. "……… 나는 사랑에 빠졌소. 역사소설에서처럼 말이오." - P77
"그러면 내가 충고 하나 해도 괜찮겠소, 그레미오니스?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충고는 고맙소. 하지만 난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요.‘ "내 말은, 청혼을 할 때 그렇게 무미건조한 방식으로 하지 말란 얘기요. 당신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군." 베일리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말했다. "두 팔로 그녀를 껴안고 키스를 해봐요." . . . 베일리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그레미오니스가 도대체 뭐길래 바로 자기 자신이 그렇게도 갈망하던일을 하라고 설득하는 걸까! - P88
"하나, 살인이 발생한 곳에는 살인자가 있다. 본인은 아마디로 박사에게 자기를 변호할 기회를 주고 싶다………" "뭐라고요!" 씨시스가 말했다. - P93
아마디로는 희색이 만면해서 말했다. "베일리, 당신과 나는 할 말이 별로 없는 것 같소. 나는 당신이 이리로 오는 동안 그레미오니스한테서 미리 얘기를 들어두었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바실리아 박사를 호출하기로 했소. 베일리, 당신은 우리 둘을 잔더 파넬을 파괴한 공범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나도 범죄자라고 고발한 셈 아니오?" "저는 단지 질문을 했을 뿐입니다, 아마디로 박사. 지금도 그럴 생각입니다." - P110
"베일리, 당신의 입장에서라면 당신이 옳았다고 할 수도 있소. 하지만 당신은 그 말의 오로라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거요. 나는 부득이 그레미오니스의 메모를 의장에게 넘겨야 했소. 당신은 아마 내일 아침까지 이 행성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게 될 거요. 물론 일이 그렇게 된 건 매우 유감이오. 당신이 아무래도 수사를 계속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나도 걱정스럽소 "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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