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당신의 무례를 봐드리지요, 베일리. R. 다닐은 살해당하지 않았어요. 오로라에 있는 인간형 로봇이 그것만은 아니니까……… 죽는다는 말을 써도 괜찮다면, R. 다닐이 아니라 다른 로봇이 살해된 거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양전자두뇌가 완전히 파괴되었소. 회복할 수 없는 영원한 로블럭 상태가 되어버린 거지." - P36
"패스톨프 때문입니다. 패스톨프가 다시 한 번 당신을 보내달라고요청했어요. 오로라에서 로블럭을 일으킨 장본인을 찾아달라는 거요. 그는 그것이 과격파들에게 반격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 P37
벤은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면 우주시를 지도에서 지우신 분도 아빠고, 오로라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 것도 아빠였어요. 아빠, 정부의 모든 사람들을 다 모은다고 하더라도 이만한 일을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아빠에게 감사하지 않는 걸까요?" 베일리는 말했다. "애당초 나는 영웅타입이 아니거든. 그런데 그 우스꽝스런 초파장 드라마가 내게 그 역할을 어거지로 떠맡겼던 거야. 그것이 시경 사람들 모두를 적으로 돌려놓고, 네 엄마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아빠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명성을 짊어지게 한 거란다." - P41
베일리는 R. 다닐이라고 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말했다. "로봇과 인간을 어떻게 구별하지?" "저절로 확연히 구별됩니다, 파트너 일라이저. 굳이 구별해서 말할 필요까지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로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지스카드에게 필름책을 가져오라고 시킨 걸 보면, 당신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오로라에 친숙해질 필요를 느끼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 P52
다닐과의 대화에서 끌어낸 이 결론을 확인하기 위해 지스카드에게 질문을 해볼까 어쩔까 망설였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 P57
"그러기에 충분한 기술을 가진 오로라인들의 리스트를 뽑을 수 있겠나? 용의자 그룹이 떠오르겠지만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거야." "벌써 했습니다, 파트너 일라이저." "몇 명이나 되나?" "리스트에 올려진 이름은 단 하나뿐입니다." 이번에는 베일리가 침묵할 차례였다. 그의 미간이 화가 난듯 바짝 모아졌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 한 사람이라고?" 다닐의 목소리도 조용해졌다. "한 명뿐입니다, 파트너 일라이저. 그 사람이 바로 패스톨프 박사님입니다. 박사님은 오로라에서 제일가는 로봇공학 이론의 권위자입니다." - P63
"패스톨프 박사님은 로봇 살해사건에는 인간이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확신하고 계십니다. 자기 외에는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으니까요. 박사님은 그것을 단순히 우발적인 사고라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당신이 박사님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을 원치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당신을 지켜야만 하는 겁니다." - P72
"내가 정말 바보같은 생각을 했군, 다닐." "우리가 당신을 오로라가 아닌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갈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습니까? 의심할 만한 이유라도 있나요, 파트너 일라이저?" "아냐. 잠재의식 속에 있는 광장공포증 때문에 불안해서 그랬을 거야. 전혀 움직이지 않는 우주의 경관을 보고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천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불안이 가중된 것 같아.", - P87
"패스톨프 박사, 여기에서 내가 실패하면 지구가 타격을 입게 된다는 건 알고 계시겠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겠죠. 여기서 실패한다면 다 그만두고라도 나 개인적으로도 큰 불행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패스톨프가 놀란 듯 베일리를 돌아보았다. "그렇게까지 될까요?" 베일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그렇게 될 겁니다. 지구정부의 표적이 될 테니까요." "당신에게 부탁했을 때 그 점에 대해서까지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베일리, 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 P96
패스톨프는 조용히 말했다. "내 의견으로는, 최고의 능력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내 생각엔 오로지 나만이, 그것도 상태가 아주 좋은 날이라야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로봇공학의 최고 두뇌들이 모여서 이런 정신동결상태에 빠질 수 없는 양전자 두뇌를 고안해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 P104
베일리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당신이 실제로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라면……… 당신이 잔더를 죽였습니까?" 패스톨프가 대답했다. "내가 범행을 부정하고 있다고 다닐이 말하지 않던가요." "그에게 듣긴 했지만, 당신에게 직접 듣고 싶습니다." 패스톨프는 팔짱을 끼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꽉 다문 이사이로 내뱉듯 말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하지. 나는 안 했소!" - P107
"범행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잔더를 정신동결상태로 만든 것은 두뇌회로에서 일어난 양전자 흐름의 자연발생적인 이상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아니오. 도저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렇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 . .
"그런데 자연발생적인 이상을 제가 어떻게 증명합니까? 아무래도 당신, 지구, 그리고 나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군요." "중요한 순서대로 말한다면 ..... 당신, 나, 그리고 지구입니다. 어쨌든 나도 여러 가지로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그것을 입증할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 P108
그 유명한 전설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원시적인 시대에 생산된 로봇의 이야기인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조립라인의 어딘가의 사고로 인해 우연히 텔레파시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 P112
"그러면 그 무의식적인 정신동결상태가 일어날 확률은 어느 정도입니까?" "평균적인 오로라인의 생존기간인 300년이란 기간중, 10만의 로봇 가운데 하나가 정신동결상태를 일으킬 수 있을 겁니다. 좀처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잔더와 같은 경우도 있을 수는 있지요." - P115
우리는 점점 무력하게 되어가고 있어요, 베일리 씨. 요즘 2세기 반 동안 새로운 우주국가는 개발되지 않았어요. 우리의 세계는 완전히 길들여져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해하기 때문에, 여기서 나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이 세계는, 지구가 완전히 기분 나쁜 곳이 되자 인간이 없는 신천지의 위험에 맞닥뜨린 사람들이 비교적 이쪽이 낫다고 해서 개발된 곳이죠. 솔라리아를 마지막으로 50개의 우주국가가 건설되자, 이제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위기감이나 필요성도 없어져버린 겁니다. 그리고 지구 자체는 지하의 강철동굴 안으로 잠입해 버렸구요. 그리고는 끝입니다. - P142
로복공학 3원칙이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그것이 있다면 어떨까요? 인간에게 적용되는 원칙이있다면 도대체 얼마나 있는 걸까요?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가 인간공학의 원칙을 발견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처럼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훌륭한 미래상을 과학적으로 예언할 수 있게 되어, 장차 인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있게 될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인류에게 벌어질 사태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오. 나는 때때로 심리역사학이라고 부르는 수학을 확립하겠다는 꿈을 꾸어보지요.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을 것이고……… 아마 아무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 P143
베일리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잔더의 소유자가 당신이었소?" "그러자 글래디아가 대답했다. "2년 전에 남편을 소유했던 것도 나였구요. 어째서 나를 거쳐간 존재들은 모두 살해될까요?" 베일리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볼로 가져갔다. 하지만 글래디아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말했다. "솔라리아에서도 당신은 나를 구해주려고 왔지요. 용서하세요, 당신에게 다시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자, 우리가요." - P162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베일리는 그녀를 똑바로 좌우로 흔들기만 했다. 쳐다볼 용기가 없어서 머리를 푹 숙이고 "나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요. 그저 ‘고마워요, 일라이저‘, 그걸로 끝이었어요. 마치 남편의 죽음이 몰고온 곤경에서 나를 구해주었기 때문에 고마워한 것처럼요. 하지만 그렇게 말했던 진정한 이유는 당신이 나의 삶에 빛을 던져주었다는 데 있었지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르쳐주고, 그에 도달하는 길이 있음을 가르쳐준 데 대한 감사였던 거예요. 그 자체는 가벼운 접촉이었지만,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어요."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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