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저 베일리는 불안감을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지난 2주 동안 그 불안감은 점점 심해졌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전부터였다. 그것은 워싱턴에서 그를 소환하면서부터, 재임용되었다는 말이 조용히 전해지면서부터 시작된 불안감이었다. - P11

이건 진짜 웃기는 얘기다. 지구인이 우주를 쳐들어간다는가정, 이 얼마나 유치한 짓거리인가. 은하탐사! 은하세계는 지구인을 차단하고 있다. 은하는 수세기 전에 지구를 떠난 사람들의 자손인 우주인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지구 주위에 울타리를 높이 쌓았다. 열린 공간에 대한 공포와 함께 시티문명안에 지구인을 가두었다. - P14

미님이 입술에서 시가를 빼내 들고 연기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법부에서는 자네를 솔라리아에 파견키로 했네."
베일리의 마음은 잠시 허공의 환상을 찾아 헤맸다. 솔라리아, 아시아? 솔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다음 순간, 베일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놀란 목소리를 냈다.
"외계의 솔라리아 말입니까?"
미님은 베일리의 눈길을 애써 외면했다.
"맞아." - P16

우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트너 일라이저!"
베일리는 깜짝 놀라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순간 그는 놀라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툭 튀어나온 커다란 광대뼈, 미끈한 얼굴 윤곽, 멋진 대칭을 이루고 있는 몸매, 무엇보다도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푸른 눈・・・・・…
"다, 다닐!"
우주인이 말했다.
"기억해주시니 기쁘군요, 파트너 일라이저."
"기억하다마다!"
베일리는 그를 보고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P30

베일리는 이 친구의 표정 없는 눈이 자신의 마음을 읽지 못했기를 간절히 바랐다. 순간적이긴 했지만, 아직도 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격정의 순간, 자신이 이 친구에게 사랑이라고도 할 만한 친밀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눈치채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 해도 다닐 올리버를 친구로서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람이 아닌 로봇을! - P31

외계의 50개 우주국가 중에서 솔라리아가 다양하고 뛰어난 로봇 모델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라리아는 다른 모든 우주국가에 전문화된 로봇 모델을 수출하고 있지요 - P36

"그럼, 솔라리아인이 사는 지역은 행성 전체로 보면 얼마나 되나?"
"경작할 수 있는 지역엔 모두 살고 있습니다."
"넓이가 얼마나 되는데?"
"경계지역까지 포함해서 3,000만 평방마일입니다."
"겨우 2만 명이 그 넓은 땅에 산단 말인가?"
"거기에는 대략 2억 정도의 양전자로봇들도 있습니다."
"제기랄! 사람 한 명에 로봇이 일만 대로군."
"그건 외계에서도 최고로 높은 비율이지요. 그 다음으로 비율이 높은 곳이 오로라인데, 사람 하나 당 로봇이 약 50대예요." - P40

베일리는 곤혹스런 낯빛으로 주위를 휘둘러보며 말했다.
"이 웅장한 묘 속에 날 홀로 집어넣어서 어리둥절하게 만들려고 많은 사람들을 내쫓았단 말인가?"
"이 집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겁니다. 솔라리아에서는 한 사람한 사람이 모두 이런 집을 갖고 있습니다."
"모두 다 이런 집에서 산다구?"
"예, 모두 다요." - P48

그런데 다닐은 왜 철저하게 인간인 척하는 걸까? 베일리가 앞서 세웠던 가설, 즉 다닐을 설계한 오로라인의 자만심의 과시라는 가설만 가지고는 아무래도 설명이 부족하다. 이 가면극에 뭔가 더 중요한 동기가 있는 게 분명하다. - P60

다닐이 말했다.
"행성은 비어 있지 않습니다. 행성은 여러 개의 영지로 분할되어 있는데, 각 영지마다 하나씩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 다 자기 영지에 살고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2만 개의 영지마다 솔라리아인이 한 명씩 살고 있단 말이군."
"영지 수는 그보다는 적습니다, 파트너 일라이저. 남편과 아내는 한 영지를 공유하니까요." - P63

베일리가 말했다.
"한번 더 생각해봐요, 글래디아. 아무도 당신 남편을 만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조금 접어두고, 누군가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가정해보시라구요. 그랬다면 누구겠습니까?"
"소용없는 일이에요. 아무도 그럴 수 없어요."
"누군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루어 씨는 딱 한 사람 의심받을 만한 사람이 있다고 했어요. 분명히 누군가 있을 거예요."
여자의 얼굴에 전혀 기쁜 기색이라고는 할 수 없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 사람이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요."
"그래요? 누굽니까?"
그녀는 작은 손을 자기 가슴에 얹었다.
"저예요." - P86

"정말 특이한 사건이로군요. 동기도 없고, 수단도 없고, 목격자도 없고, 증거도 없어요. 증거가 되는 게 좀 있나 했더니 그건 파괴됐다고 하고……… 당신네들은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혐의를 두고 그녀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군요. 다른 누군가가 범인일 가능성은 아무도 염두에 두고 있질 않아요. 당신도 전혀 다를 바 없군요. 그렇다면 한 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왜 날 불렀습니까?"
그루어가 눈살을 찌푸렸다.
"진정하시오, 베일리 씨" - P100

리케인 델메어가 뭔가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오. 그는 내게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고 했어요. 난 그의 말을 믿었지요. 불행히도 그는 조금밖에 얘기해주지 않았어요. 스스로 조사를 완료한 후에 당국에 알리고 싶어했지요. 그는 최근에 조사를 거의 완료했던 모양이오. 그렇지 않다면 저들이 그렇게 야만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또 공개적으로 그를 살해했을 리 없잖소? 델메어가 말한 게 있어요. 인류 전체가 위험에 빠지고 있다는 이야기였죠. - P101

베일리는 손바닥으로 뺨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 만일……."
그는 얘기를 꺼내려다 말고 의자에서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홀로그램임을 깨닫고는 우뚝 멈춰섰다.
그루어가 잔을 노려보며 목을 꽉 움켜쥐고 절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목이・・・・・・목이 탄다! 목이 타!"
그루어가 잔을 떨어뜨렸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심하게 일그러졌다. - P103

다닐이 묘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무릎이 아픈 것 같은 태도였다. 다닐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처음이다. 정말로 사람이 무릎에 어떤 이상이라도 생긴 것 같은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다닐이 말했다.
"사람이 해를 입는 모습을 보면 내 기계장치 어딘가에 이상이 옵니다."
"자네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하나도 없었네."
"네, 압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볼 때마다 내 사고 경로에 장애가 오곤 해요. 말하자면 사람이 충격을 받은 것과 같은 상태죠."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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