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8월 16일, 나는 발레라는 수도원장이 펴낸 한 권의 책을 손에 넣었다. 1842년 빠리의 라 수르스 수도원 출판부가 펴낸 『마비용 수도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佛)한 멜크수도원 출신의 베네딕트 회 수도사 아드송의 수기였다. - P11
눈치 빠른 독자는 벌써 알아차렸을 테지만 나는 멜크 수도원의 도서관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드소의 수기와 관련된 자료는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 P13
잘츠부르크에 이르기 전, 우리는 몬트제 호반에있는 조그만 호텔에서 일박했는데, 이 하룻밤이 나에게는 비극적인 밤이었다. 나와 동행하던 친구가 발레 수도사의 책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 P13
책의 내용을 훑어보면서부터는 정말 내가 그책을 번역했던 것인지, 아니면 꿈을 꾸었던 것인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 P16
늙고 병든 육신을 여기 안온한 멜크수도원의 독방에 가둔 나는 지금 소시적에 우연히 체험하게 된 저 놀랍고도 엄청난 사건의 기록을 이 양피지에다 남겨 놓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 P30
선친께서는 전부터 나를 눈여겨보시던 마르실리오와 이 문제를 상의, 결국은 나를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박식한 수도사인, 바스커빌 사람 윌리엄의 수하에 넣기로 작심하시게 된다. 당시 윌리엄 수도사께서는 모종의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큰 도시 및 큰 수도원을 차례로 순방하고 있었다. - P35
만상이 엇길로 들어서 있던 이런 시절에 나는 하느님 은혜로 윌리엄 수도사 같은 분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배움에의 욕구를 채우고 사물을 바로 보는 감각을 익혔으니, 내가 험로를 헤맬 때도 스승의 교훈이 나를 인도하지 아니한 적이 없었다. - P38
그때 사부님은 웃으면서, 참기독교인이라면 상대가 이교도들이라고 하더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 P40
산허리로 감겨드는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나는 수도원을 보았다. 그리고는 놀라고 말았다. 기독교 세계에서 흔히 보아 왔던, 수도원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벽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 벽 안에 자리잡고 있는 엄청나게 큰건물에 놀란 것이었다. - P49
내가 보기에, 윌리엄 수도사는 일부러 시간을끌어 수도사 패거리를 먼저 수도원으로 올려 보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수도사 일행으로 하여금 수도원장에게, 자기가 드러내 보인 통찰의 기적을 소상하게 보고할 시간 여유를 주었던 것 같다는 것이다. - P53
우주는 궁극적인 것(그것은 언제나 희미하게만 나타나는데)뿐만 아니라 비근한 것까지 드러내되 그 드러냄이 참으로 분명하다. 궁극적인 것 은 어려울 뿐 비근한 것과 다르지 않은 법이다. - P54
사부님은 만사가 이런 식이었다. 그는, 자연이라는 위대한 책을 읽어 내는 방법에 정통했다. 뿐만 아니라 수도사들이 성서를 읽는 태도, 그리고 성서와 성서를 통해 갖게 되는 수도사들의 사고 방식에도 정통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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