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도 잘 알고 있듯이, 무거운 침묵은 누군가와 따로 얘기할 때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다음에 올 말이 가장 중요한 말이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 P671

에밋은 샐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점도 위안이 되었다.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비난의 아픔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위안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감각이 다른 사람과 공유되었고, 그래서 더 진실에 부합한다는 것을 알게 된 데서 오는 위안이었다. - P675

우리 둘 다 숨을 내쉬었다.
"자, 그럼 네가………?" 나는 손짓으로 다이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뭐지? 아니야, 네가 해."
"좋아." 내가 두 손을 비비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며 말했다. "비밀번호를 알려줘. 그럼 내가 해볼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울리가 진심으로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비밀번호?" 그가 물었다.
그 말에 나는 웃었다. 콩팥이 아플 때까지,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때까지 웃었다. - P689

"우린 젊을 때 우리의 악과 분노, 시기심, 자존심을 억누르는 것의 중요성을 우리 자신에게 가르치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보기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결국 생각과 달리 미덕에 의해 저해되는 것 같아." - P698

침대로 돌아온 울리는 조그만 갈색병에 들어 있던 조그만 분홍색 알약들을 협탁 위에 다 쏟았다. 그는 그 알약들을 손가락 끝으로 밀어서 손바닥 안에 넣으며 읊조렸다. 감자 하나, 감자 둘, 감자 셋, 넷, 감자 다섯, 감자 여섯, 감자 일곱, 더 많이. 그런 다음 그 알약들을 물과 함께 꿀꺽 삼킨 후 다시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 P706

이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네브래스카주에서 온 어린 소년이 점잖은 태도로 사무실에 나타나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가죽 장정의 책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언어로 쓰인 서사시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록 보관소나 도서관 서고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 자체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 P714

빌리는 조심스럽게 빛이 카펫을 향하도록 - 형을 깨우지 않도록 - 겨눈 채 손전등을 켰다. 그런 다음 애버네이스 교수의 『영웅, 모험가 및 다른 용감한 여행자 개요서』를 꺼내서 25장을 펼친 후 연필을 집어 들었다. - P716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25장을 펼친 뒤 연필을 손에 들고 몸을 기울인 빌리는, 에밋의 모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은 형이 원장의 차 앞좌석에 앉아 설라이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그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 P721

"알았어. 대학도 아니고 우체국도 아니라면, 그럼 뭘 하고 싶어?"
"군대에 들어갈까 생각하고 있어."
"군대?" 에밋이 놀라며 물었다.
"그래, 군대." 타운하우스가 마치 그 소리를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안 될 거 없잖아. 지금은 전쟁이 없어. 보수도 괜찮고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 운이 좋으면 해외에 배치되어 세상의 다른 어떤 것들을 볼 수도 있을 테고."
"넌 막사로 되돌아가려 하는구나." 에밋이 지적했다.
"난 그런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는데." 타운하우스가 말했다.
"집합……… 명령 복종… 제복 착용…………." - P731

에밋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겪은 모든 일을 고려하면……… 빌리와 내가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둘이 함께 새 출발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 빌리와 나 둘이서만." - P744

에밋은 끔찍한 예감을 느끼며 침대로 다가갔다. 울리의 이름을 부른 후 부드럽게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에밋의 손에서 느껴지는 그의 몸은 뻣뻣했다.
"오, 울리." 그가 맞은편 침대에 앉으며 말했다. - P756

크게 놀라서 당황한 사람은 그런 식으로 남을 비난하는 법이니까. 그런 사람은 손가락질을 한다. 누가 됐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모임을 이루는 방식의 본질상 그런 사람은 적이 되기보다는 친구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 P770

빌리는 망을 친 문을 통해 지금 에밋 형이 끓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형은 벌게진 얼굴로 더치스의 멱살을 잡고 소리질렀다. 신탁자금은 없다고, 유산은 없다고, 금고에 돈은 없다고 소리 질렀다. 그런 다음 더치스를 땅바닥으로 밀쳤다.
이건 틀림없어, 빌리는 생각했다. 이것은 틀림없이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필수적인 나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내가 있어야 하는 시간과 장소인 거야. 그래서 빌리는 망을 친 문을 열고 형에게 금고안에는 돈이 있다고 말했다. - P784

에밋이 창고방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더치스는 빌리를 복도로 밀어붙이며 나아갔고, 에밋이 두드리는 행동을 멈추자 더치스는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경찰과 캘리포니아에 짓게 될 집에 대해서 얘기했다.
갑자기 빌리는 전에 여기에 있었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치스의 꽉 쥔 손아귀와 다급하게 얘기하고 있는 태도가 빌리로 하여금 어둠에 잠긴 웨스트사이드 고가철도에서 존 목사의 손에 붙잡혀 있었던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게 한 것이었다. - P785

에밋은 다시 걸음을 옮겨서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갔다.
"에밋," 더치스가 예상대로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널 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네가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너를 쓰게 될 거야." - P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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