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밖의 과거 > 발췌

서문

사실 이 이야기는 역사라고 불러야 하지만 필자가 기억에만 의지해 쓴 것이므로 엄밀히 말해 역사라고 할 수 없다.
과거의 일이라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이 과거에 발생한 것도 아니고, 현재에 발생한 것도 아니며, 미래에 발생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P11

서기 1453년 5월, 마술사의 죽음
생각에 잠겼던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앞에 쌓여 있는 성 방어지도를 밀어놓은 뒤 자줏빛 가운을 단단히 여미고 조용히 기다렸다. - P13

황제가 성배를 가리켰다.
"그걸 어떻게 꺼냈느냐?"
헬레나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그녀가 정말 마술을 부릴 수 있다고 해도 황제 앞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겁에 질린 눈빛으로 황제를 쳐다보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녀가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말했다.
"그곳이 제게는…… 제게는………… 모두 열려 있습니다." - P17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
프란체스의 고성이 허공을 울렸다.
"나리, 제가… 제가 그곳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곳이라니?"
헬레나는 여전히 반쯤 감은 눈으로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마치 어른이잡아끄는데도 마음에 드는 장난감 앞을 떠나지 못하는 아이 같았다. - P28

탑 2층에서 여자 마법사가 칼에 찔린 채 벽에 박혀 죽었다. 그녀는 인류역사상 하나뿐인 진정한 마법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죽기 약 10시간 전에 짧은 마법의 시대도 끝이 났다. 마법의 시대는 고차원 파편이 처음 지구에 닿은 서기 1453년 5월 3일 16시에 시작되었고, 파편이 지구를 완전히 떠난 서기 1453년 5월 28일 21시에 끝났다. 25일 하고 5시간이었다. 그 후 세상은 정상 궤도로 되돌아갔다. - P30

나이 많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녀의 엄마도 컴퓨터와 인터넷에 능숙하지 못했고 하드디스크를 포맷해도 데이터를 쉽게 복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양둥은 순전히 호기심으로 엄마가 삭제한 일부 파일을 복구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 몰래 저지른 일이었다. 용량이 큰 파일들을 며칠에 걸쳐 읽은 뒤 엄마와 삼체 세계의 비밀을 알게되었다. - P33

엄마의 컴퓨터에서 본 정보에 의하면 우주에는 생명체가 적지 않다. 아니, 우주는 생명체로 꽉 차 있다.
그렇다면 우주는 생명체로 인해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그 변화가 얼마만큼 진행되었을까? - P38

닥터 장이 아니라 유명한 종양 전문가인 부원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윈텐밍은 그를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돈만 있으면 병을 고칠 수 있는 희망이 있는지.
나이가 지긋한 부원장은 컴퓨터로 윈톈밍의 차트를 찾아본 뒤 가만히고개를 저었다. 그의 암세포가 폐부터 온몸으로 전이되어 수술이 불가능하고 항암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 P50

청신에게 별을 선물할 것이다.
인 H - P52

스타 프로젝트가 처음 제안되었을 때는 UN이 태양계 밖의 일부 항성과 그 부속 행성의 소유권을 경매로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국가, 기업, 사회단체, 개인 누구나 경매에 참여할 수 있고 판매 대금은 UN이 태양계 공동 방위 체계에 대한 기초 연구에 사용하기로 했다. - P54

조금 전부터 유리벽 바깥이 술렁이더니 윈텐밍이 사망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안락실 문이 꽈당 열리며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안락 진행인이었다. 그가 병상 앞으로 달려가 자동주사기의 전원을 깠다. - P70

유리벽 바깥에 서 있는 한 사람이 윈톈밍의 세상을 밝혀주었다. 청신이었다. - P71

하지만 청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텐밍, 너 알아? 안락사법은 널 위해 통과됐어." - P71

"PIA가 삼체 함대를 향해 탐사정을 발사할 계획입니다."
모두 어리둥절해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 P78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지자가 유령처럼 주변을 떠다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4광년 밖 세계에 있는 ‘회의 참석자들도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꾸만 그걸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날 때면 공포감과 함께 자신이 아주 작은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 P89

청신이 말했다.
"사람을 영하 200도 이하 초저온으로 급속 냉동시켜 발사하면 생명유지 시스템이나 가열 시스템이 필요 없어요. 1인용 우주선만 있으면 되니까 아주 가볍게 만들 수 있겠죠. 여기에 사람의 체중을 합쳐도 110킬로그램이면 충분할 거예요. 그 사람이 인간에게는 사망 상태지만 삼체인에게도 그럴까요?" - P94

눈부신 배경을 뒤로하고 서 있는 웨이드는 마치 검은 유령 같았다. 두 눈동자에서 나오는 서늘한 빛만 가물거리며 반짝였다.
그가 말했다.
"뇌만 보냅시다." - P99

웨이드가 말했다.
"삼체인이 초저온으로 냉동된 인체를 부활시킬 수 있다면 인간의 뇌도부활시킬 수 있을 겁니다. 부활시킨 뇌를 외부와 연결시켜 교류할 수도 있겠죠. 양자를 2차원으로 펼쳐 표면에 회로를 식각할 수 있는 문명에겐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뇌만 있어도 온전한 육체가 있는 사람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 사람의 의식, 정신, 기억, 특히 그의 전략이 모두 들어 있으니까요.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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