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오밍이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무너졌어요. 단결심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도시 전체가 통제를 잃고혼란에 빠졌어요." 그는 방금 지하 도시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 P600
함대가 전멸하는 광경이 담긴 영상이 20천문단위 밖에서 세 시간 만에 지구에 도착했을 때 인류는 절망한 아이들 같았고, 세계는 악몽에 사로잡힌 유치원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고 모든 것이 통제 불능상태가 되었다. - P602
장베이하이는 다섯 함장들 너머 세 층으로 공중에 떠 있는 병사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동지들, 내가 자네들을 이 오래된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지금 모두가한뜻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앞으로 닥칠 미래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동지들,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 P603
장베이하이가 둥팡옌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전 그의 눈빛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던 반석은 사라지고 이제 남은 건 해쓱한 공허함과 무거운 비애뿐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더 이상 그는 비정하고 냉혹하며 신중하지만 과감하며 강인한 남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과거의 무게에 짓눌려 허리가 굽어버린 초췌한 사람이었다. 그를 보며 둥팡옌쉬는 지금껏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연민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 P611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인가?" 둥팡옌쉬의 목소리가 휑뎅그렁한 백색 공간에 메아리쳤다. 깊이 잠든사람이 가끔씩 하는 잠꼬대 같았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부가 죽거나 다 같이 죽거나. - P624
자연선택호가 마지막으로 지구로 전송한 영상 속에서 장베이하이는 1초 만에 모든 것을 파악했던 것 같다. 200여 년 동안 험난한 인생을 살아오며 마음이 무쇠처럼 단련된 그였지만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 전 그는 주저했다. 영혼의 전율을 억누르려 애를 썼다.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남아있던 한모금의 유약함이 그를 죽이고 자연선택호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였다. 한 달간 계속된 어두운 대치의 마지막 순간에 그는 상대보다 몇 초늦었다. - P631
"그럼 그렇지!" 태양계 양쪽 끝에서 어둠의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뤄지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는 어리둥절해하는 스창을 내버려둔 채 밖으로 뛰쳐나가더니 한달음에 마을을 가로질러 드넓은 화베이 사막 앞에 우뚝 멈추었다. 그가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내가 맞았어! 내가 맞았다고!" - P635
가까이 다가오는 스창을 보며 뤄지가 말했다. "다스 내 손에 인류를 승리로 이끌 열쇠가 있어요!" "뭐? 낄낄..…….…." 스창의 비웃음이 뤄지의 흥분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믿지 못하겠죠. 이해해요." - P635
"물방울이 뭘 하러 오는지 알아요? 그놈의 임무는 연합 함대를 섬멸시키는 것도 아니고 지구를 공격하러 오는 것도 아니에요. 바로 나를 죽이러 오는 거예요. 그놈을 만났을 때 다스가 내 곁에 있는 건 바라지 않아요." - P636
시장이 스창의 어깨 너머에 있는 뤄지에게로 시선을 옮기더니 반갑게손을 내밀었다. "오, 뤄지 박사, 안녕하세요! 200년 전에 당신의 팬이었답니다. 면벽자 네 명 중에 당신이 제일 면벽자다웠지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뒤이어 그가 내뱉은 한마디는 뤄지와 스창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박사는 내가 이틀 동안 만난 네 번째 구세주예요. 아직 수십 명이 밖에서 더 기다리고 있지요. 하지만 난 더 이상 그들을 만날 기운이 없군요. " - P641
물방울이 태양을 향해 간헐적으로 강한 전자기파를 발사하고 있었다. 전자기파의 강도가 태양이 확대시킬 수 있는 임계치를 뛰어넘어 모든 대역의 주파수를 차지해버렸다. - P653
하인스가 뤄지를 향해 깍듯한 말투로 말했다. "뤄지 박사, 방금 전 내가 UN 면벽 프로젝트 위원회의 연락관으로 임명받았어요. UN 면벽 프로젝트 위원회를 대신해 박사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UN의 면벽 프로젝트가 재개되었으며 당신이 유일한 면벽자로 지명되었습니다." - P657
모두의 시선이 뤄지에게로 쏠렸다. 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 가능성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제 저주가 효과를 발휘했나요?" 하인스와 조너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인스가 말했다. "항성 187J3X1이 파괴됐어요." "언제요?" "51년 전이에요. 1년 전에 관측됐는데 그 정보가 오늘 오후에 발견됐답니다. 지금까지 그 항성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 P658
"다스, 무슨 생각 해요?" 스창은 아까부터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놀라운 마술 쇼를 보고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이런 젠장! 환장하겠군!" "왜요? 내가 정의의 천사라는 걸 못 믿겠어요?" "때려죽여도 못 믿어." "그럼 은하계 문명의 대변인이라는 건요?" "천사보다는 낫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못 믿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우주에 정의와 도덕이 존재한다는 걸 못 믿어요?" "나도 몰라." "다스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잖아요." "내가 말했잖아. 모르겠다고 환장하겠다니까!" "그렇다면 다스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이성적인 사람이에요." - P661
"맞아요. 우주 문명에 두 가지 공리가 있어요. 첫째, 생존은 문명의 첫번째 필요 조건이다. 둘째, 문명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되지만 우주의 물질 총량은 불변한다." - P662
진정한 우주 문명 안에서는 다른 종족 간의 생물학적 차이가 ‘문‘, 아니 ‘계‘를 넘을 수 있어요. 문화적인 차이는 상상도 할 수 없죠. 게다가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의심의 사슬을 끊을 방법이 거의 없어요. - P667
"우주는 암흑의 숲이에요. 모든 문명이 총을 든 사냥꾼이죠. 그들이 유령처럼 숲속을 누비고 있어요. 길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살며시 치우고발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숨소리조차 낮추고・・・・・・ . 조심해야 해요. 숲속에곳곳에 사냥꾼들이 숨어 있으니까요. - P669
하지만 설원 프로젝트는 본격적으로 개시되지 않았다. 지구 세계와 함대 세계 모두 설원 프로젝트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대중이 면벽자에게 바라는 것은 세상을 구원할 전략이지 고작 적의 도착을 알릴 수 있는 계획 따위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것이 면벽자의 생각이 아니라 UN과 태양계 함대 협의회가 그의 권위에 기대어 추진하는 계획일 뿐임을 알고 있었다. - P679
사람들은 그가 하루 빨리 가족을 만나기 위해 큰 의미도 없는 일에 매달린다고 생각했다. 전 인류가 고대하는 인류 구원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뤄지는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항성급 출력으로 저주를 발사할 수 없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누누이 말했다. - P681
찬 비가 부슬부슬 흩날리는 가을 오후, 신생활 5촌의 주민 대표회가 한가지 결정을 내렸다. 뤄지를 마을에서 추방하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주민들의 생활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 P682
"내려주십시오." 남자가 다시 말했다. 뤄지는 그의 눈빛에 담긴 무언의 말을 읽었다. ‘세상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건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세상에 희망을 주었다가 다시 갈기갈기 찢어버린 건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야 - P686
뤄지는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겨우 추슬러 묘비에 의지해 일어났다. 그는 한 손으로 진흙범벅이 된 젖은 옷과 헝클어진 머리칼을 대충 매만진 뒤 주머니에서 금속성의 기다란 물체를 꺼냈다. 가득 충전해놓은 권총이었다. 뤄지는 희푸르게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지구 문명과 삼체 문명의 마지막 결전을 시작했다. - P690
"이제 내 심장의 박동을 정지시킬 것이다. 이 방아쇠를 당기는 동시에나는 두 세계의 역사에 가장 큰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두 문명에 깊은 사과를 전한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자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안다. 너희들은 인류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 무언은 가장 큰 경멸이다. 우리는 지난 200년 동안 경멸당해 왔다. 원한다면 계속 침묵해도 좋다. 30초의 시간을 주겠다." - P692
"마지막 조건이다. 삼체함대가 오르트구름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 P694
당신은 두 달 동안 혼자 집에 틀어박혀 원자 폭탄에 장착한 이온 엔진을 원격 조정해서 그것들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했다. 우리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신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무의미한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원자 폭탄들의 간격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 P698
나는 200년 전 지구로 경고를 보낸 감청원이다.
좡옌이 새된 소리로 외쳤다. "어머나! 아직 살아 있다고요?"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다. 나는 오랫동안 탈수 상태에 있었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탈수 상태에서도 늙어버렸다. 그래도 내가 바라던 미래를 보았으니 더없이 행복하다.
뤄지가 말했다. "존경스럽군요." - P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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