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 제자들은 원래 신명난 상태로 야심차게 소림사로 달려왔었다. 예측할 수 없는 방주의 가공할 무공에 의지해 무림의 맹주 자리를 차지한다면 개방은 이제 소림파를 누르고 중원 무림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장 방주가 처음엔 정춘추를 사부로 모시더니 나중에는 소봉에게 당해 두 다리가 부러져버리자 다들 흥미를 잃고 무안해하고 있었다. 여전히 전임 방주였던 교복을 추앙하고 있던 제자들만이 암암리에 쾌재를 부를 뿐이었다. - P182
"소형 부자가 재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만 하면 당장 재하의 목숨을 취해 부인을 위한 복수를 해도 재하는 저항하지 않겠소." 이 말을 하면서 찌익 하고 옷자락을 찢어 가슴팍 살갗을 드러냈다. - P220
그때 창문 밖 회랑에 한 청포를 입은 깡마른 승려 하나가 빗자루를 들고 구부정한 자세로 바닥을 쓸고 있었다.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그 승려는 듬성듬성 하얗게 센 긴 수염에 행동이 느릿느릿한 데다 기력이 없어 무공을 지닌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 P223
그는 두 손을 옷소매 안에 넣고 암암리에 무상겁지를 펼쳐내 쥐도새도 모르게 그 노승을 향해 튕겨냈다. 그러나 지력이 그 노승의 몸 앞에서 3척 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마치 부드럽지만 딱딱하기 이를데 없는 한 겹 보호벽에 부딪힌 것처럼 피육, 교육, 피육 몇 번의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다시 튕겨나오지도 않았다. 구마지가 깜짝 놀라 생각했다. ‘저 노승이 과연 괴상한 수작을 부리는구나. 괜한 허풍을 떠는 게 아니었어.‘ - P232
노승이 두 손으로 합장을 하고 말했다. "아미타불, 불문의 성지이니 두 분 시주께서는 경솔한 행동을 삼가주시기 바라겠소." 그는 두 손을 들어 합장을 했을 뿐이지만 마치 한줄기 기운이 무형의 높은 담장을 쌓아놓은 듯 소봉과 모용복 사이를 가로막아버렸다. 소봉이 산을 밀어치우고 바다를 뒤집어엎을 듯한 엄청난 기세로 펼쳐낸 장력은 이 담장에 부딪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 P239
사람들은 그제야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노승이 조금 전 장경각에서 두 사람을 후려친 것은 잠시 기식을 멈추고 심장이 뛰지 않게 만들었을 뿐이며 이는 중한 내상을 치료하기 위한 요결이었던 것이다. - P250
허죽은 또 정춘추를 소림사 계율원에서 관장하도록 했다는 말도 했다. 매년 단오와 중양 두 명절에 소림사 승려들이 그에게 영취궁의 알약을 먹여 생사부가 발작하는 고통을 해소시켜줄 것이며 그의 생사가 남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감히 더 이상 악행을 저지를 수 없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소봉은 박장대소를 했다. - P296
"맞습니다. 여래께서 과거 왕사성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셨으니 영취라는 두 글자는 원래 불법과 인연이 있는 것 아닙니까? 언젠가는 제가 영취궁을 영취사로 바꾸고 영취궁 내의 파파와 수수, 낭자들을 모두 비구니로 만들어야겠습니다." - P298
"어? 그 추팔괴는 어디 갔지?" 사람들은 조금 전 허죽이 사람을 구하는 데만 온정신이 팔려 있다 그제야 유탄지와 아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단예가 물었다. "큰형님, 둘이 떠났나요?" 소봉이 말했다. "벌써 떠났네. 자네가 응낙을 해서 나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어." 이 말을 하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금치 못했다. 아자가 유탄지를 따라간 후 장차 어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346
"그… 그분이 서하의 부마가 되러 가신대요. 공야 둘째 오라버니가 오더니 대연 재건을 위해선 아녀자와의 사사로운 정을 돌볼 수 없다면서 절 설득했어요." 그녀는 이 몇 마디 말을 내뱉고 몸을 돌려 단예의 어깨에 안겨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단예는 그녀의 과분한 표현에 깜짝 놀라 감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자기도 모르게 멍한 상태로 기뻐해야 할지 힘들어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 보니 왕어언이 상심한 이유는 바로 모용복이 서하 부마가 되러 간다는 말에 있었다. 그가 서하 공주를 맞아들이면 자연히 왕어언을 돌보지 않을 것이 확실할 테니 말이다. - P352
그는 가슴을 쭉 내밀며 말했다. "염려 마시오. 내가 앞장서서 서하 부마가 될 것이오. 낭자 사촌오라버니는 부마가 되지 못할 것이니 낭자와 혼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왕어언은 놀랍고도 기쁜 마음이 들었다. "네?" 단예가 말했다. "내가 부마도위駙馬都尉" 자리를 빼앗을 것이오." - P357
"내 호의를 믿지 못한다면 그건 당신 마음이오. 어찌 됐건 난 당신이 서하 공주를 맞아들이지 못하게 할 것이오. 왕 낭자가 당신 때문에 상심해하며 자결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소." "공주를 맞아들이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하, 정말 그럴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오? 내가 맞아들이겠다면 어찌할 것이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저지할 것이오. 나 혼자로는 그럴 힘이 없으니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오." 모용복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는 소봉과 허죽 두 사람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심지어 단예 본인도 육맥신검을 펼쳐낼 때는 자신이 도저히 당해내지 못하지 않았던가? - P373
단예가 연이어 몇 번의 재채기를 하자 왕어언이 말했다. "왜… 왜 그래요? 어디 불편하세요?" 단예가 말했다. "아… 아니오… 에취! 에취! 불편한 데는 없소. 에취… 풍한에 든 게 아니라 기쁨에 겨워 그러는 것이오. 왕 낭자… 에취! 너무 좋아서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소." ‘사촌 오라버니한테 시집가고 싶지 않아요. 공자가 저한테 너무 잘해주셔서요‘라고 한 그녀의 말이 단예 귀로 뚫고 들어가자 그 소리는 마치 신선들의 풍악 소리처럼 들렸다.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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