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노선께서 중원에 친히 행차하셨으니 개방의 제자들은 속히 무릎을 꿇고 맞이하라!" 말이 끝나자마자 둥둥둥둥 하고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북소리가 세차례에 걸쳐 울려퍼지고 지잉 하는 징소리가 들리자 북소리는 멈추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 P228
동안학발의 이 노인은 바로 중원 무림 인사들에게 있어 증오의 대상인 성수노괴 정춘추였다. 그는 성수파의 삼보 중 하나인 신목왕정을 여제자인 아자에게 도둑맞자 수차에 걸쳐 제자들을 보내 잡아오게 하고 심지어 대제자인 적성자까지 보냈었다. 그러나 번번이 비합전서를 통해 전해져오는 소식은 모두 실패했다는 내용들뿐이었다. - P230
원래 성수노괴는 살인을 밥 먹듯 하고 사람의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자라 유탄지가 개방 제자들의 생사를 확인토록 만들어 그 김에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던 그를 제거하려 했다. 뜻밖에도 유탄지는 몇달 동안 수련을 계속해온 터라 빙잠의 기독이 이미 그의 체질에 융합되어 정춘추가 개방 제자들 몸에 묻혀놓은 독질조차 그를 해칠 수 없었다. - P236
유탄지는 머리에 쓴 철가면이 마치 불에 달궈진 듯 얼굴 전체가 뜨거워지자 속으로 무섭기 짝이 없었다. 그는 아자에게 갖은 괴롭힘을 당한 이후 이미 어떤 고초도 참고 견딜 수 있었지만 시비와 선악의 구별이나 강직한 기개 같은 관념에 대해서는 깨끗이 잊은 지 오래였다. 그는 오로지 목숨만을 보전할 생각에 다급하게 답했다. "사부님, 제자 유탄지가 사부님 문하에 들어가고자 하니 부디 사부님께서 거둬주십시오." - P240
바로 그때 맞은편 길에서 한 승려가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정자 밖에 이르러 두 손으로 합장을 하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시주 여러분, 소승이 지나는 길에 목이 말라 정자에서 물 한잔하고 좀 쉬어가려 합니다." 흑의를 입은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스님께서는 예가 지나치시오. 다들 지나는 과객이고 이 정자는 우리가 지은 것도 아니지 않소? 그냥 들어와 마시도록 하시오." "아미타불, 고맙습니다." 승려는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정자 안으로 들어왔다. 그 승려는 스물서넛 정도 되는 나이에 진한 눈썹과 큰 눈 그리고 커다란 코에 콧구멍이 하늘을 향해 있어 용모가 추하기 짝이 없었다. 승포 곳곳에는 기운 자리가 있었지만 오히려 아주 깔끔해 보였다. - P244
"소스님께서는 걸음걸이가 매우 씩씩하고 힘찬 것을 보니 무공을 할 줄 아는 것 같구려. 스님에 대한 호칭을 어찌해야 하며 어느 보찰에 출가하셨는지 가르침을 내려주시오." 승려는 물 사발을 항아리 뚜껑 위에 올려놓고 살짝 몸을 굽히며 답했다. "소승은 허죽이라고 하며 소림사에 출가했습니다." - P247
‘소림사 주지 현자가 합장으로 천하영웅들을 정중히 청합니다. 12월초여드레 납팔절 숭산 소림사에 왕림해주시어 좋은 인연을에 폭넓게 맺으시고 고소모용씨의 ‘상대가 쓴 방법을 상대에게 펼친다‘는 고명한 풍모도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 P249
"재하는 정춘추라 합니다." 정춘추라는 세 글자가 입에서 떨어지자 현난과 현통, 등백천, 공야건, 포부동, 풍파악 등 여섯 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깜짝 놀라며 서서히 안색이 바뀌었다. 성수노과 정춘추의 악명은 천하에 널리 퍼져 있었던 터라 그가 이렇게 품위가 있고 근엄한 모습의 인물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고, 더구나 이런 곳에서 만나리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 P257
총변선생은 농아노인으로 선천적인 농아였지만 굳이 ‘총변선생’이라는 별호로 불리기를 원했으며 그 문하의 제자들이 하나같이 그에게 귀를 찢기고 혀를 잘렸다는 사실은 이미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제자라는 이들은 모두 다 멀쩡히 들을 수 있고 또한 달변인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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