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부, 형부! 어서 앉으세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아자가 만일 이봐요!‘ 혹은 ‘교 방주!’, ‘소 오라버니!‘ 등으로 불렀다면 소봉은 본체만체하고 그대로 가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형부!‘ 하며 두 번이나 연달아 부르는 소리에 그는 아주 생각에 가슴이 시려와 대뜸 물었다. "뭐?" - P369
아자는 바닥에 널브러진 주보의 시체를 바라보고 웃었다. "저런 얼간이가 소나 말이랑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김승 한 마리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녀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하면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소봉은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악독하기 짝이 없는 성격을 지닌 계집애로구나. 내가 왜 이런 계집을 상대해야 하지?‘ - P370
적성자가 아자에게 물었다. "네 언니는 어쩌다 그런 자에게 시집을 간 게냐? 천하인들이 모두 죽기라도 했던 게냐? 아니면 그자에게 겁탈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처가 된 것이냐?" 아자가 실실 웃었다. "어쩌다 시집을 갔는지는 나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 언니는 형부의 일장에 맞아 죽었어요." - P399
‘이제 보니 저들의 서열은 입문한 순서가 아닌 무공의 강약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저자는 나이가 젊은데도 대사형 대접을 받고 저자보다 연장자인 수많은 사람이 오히려 저자의 사제가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상호 간에 늘 쟁투를 벌여 죽고 죽이는 일이 지속될 텐데 동문 간에 무슨 정과 형제의 의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 P406
적성자는 지극히 지친 기색을 하며 몸을 휘청거리다 갑자기 무릎에 맥이 풀린 듯 바닥에 꿇어앉아버렸다. 아자가 말했다. "대사형, 왜 그래요? 승복하는 건가요?" 적성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이… 이제… 대사형이라 부르지 마십시오. 그대는 우리의 대사저입니다!" 모든 제자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 P415
소봉은 비록 강호에서 참혹하고 흉악스러운 일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지만 아자처럼 수려하고 활달하며 천진무구한 소녀가 저렇듯 악랄하게 일을 행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발걸음을 옮겼다. - P416
아자가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형부, 그럼 가지 마세요. 나도 성수해로 돌아가지 않고 형부와 술이나 마시고 싸움이나 할래요." "넌 성수파의 대사저야. 성수파 문하에 후계자인 대사저가 없으면 어찌 되겠느냐?" "제가 대사저가 된 건 속임수였어요. 일단 마각이 드러나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거예요.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대단한 것도 없어요. 전 그냥 형부랑 술이나 마시고 싸움이나 하면서 놀고 싶어요." - P422
성수파의 암기는 무섭고 악랄하기로 소문나 있어 그의 독침에 적중됐다면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희박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순간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아자가 자신의 일장에 10여 장 밖으로 날아간 걸 보고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고! 이 일장을 저 아이가 어찌 견디겠나? 이미 죽었을지 모르겠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 양쪽 입가에서 두 줄기 선혈을 흘리고 있었고 얼굴에는 핏기라고는 없었다. 이번에는 정말 호흡이 멈춘 것 같았다. - P426
‘오래된 산삼은 장백산長白山 일대의 혹한 지역에서 자생한다고 하던데 운이 좋으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자를 속세에 하루라도 더 남겨둘 수만 있다면 저승에 있는 아주도 더욱 기뻐할 것이다. 내가 동생을 잘 돌보고 있다고 칭찬하면서 말이야.‘ -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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