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가 말했다.
"정 그러시면 제가 사람을 보내 호수 밖으로 배웅토록 하겠습니다."
아주마저 자신을 붙잡지 않는 것을 보자 단예는 더욱 기분이 좋지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그 모용 공자란 자가 도대체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기에 다들 무슨 천상의 봉황처럼 떠받드는 거지? 소림파니 개방이니 서하의 일품당같은 건 모두 안중에도 없고 어서 빨리 모용 공자와 재회할 생각만 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러고는 말했다.
"그럴 필요 없소. 그냥 배 한 척과 노만 빌려주시오. 내가 직접 저어가겠소." - P261

그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왕어언을 깊이 사모하고 있었지만 그녀 가슴속에는 단예의 그림자라고는 전혀 없었고 포부동과 아주, 아벽 세 사람 역시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주 귀하게 자라왔다. 대리국의 황제, 황후를 비롯한 그 누구도 그를 대단한 존재로 느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적을 만났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남해악신은 전심전력으로 그를 제자로 거두려 했고, 구마지는 고생을 마다치 않고 그를 대리에서 강남까지 납치했으니 무척이나 중시했다고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종영과 목완청 두 소녀는 그에게 첫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던가? - P267

서쪽 편에 앉아 있던 대한 하나가 고개를 돌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두어 번 훑어봤다. 단예는 우람한 체격의 그 사내를 바라봤다. 나이가 서른 안짝으로 보이는 그는 낡아서 거의 해진 장포를 걸쳤는데 짙은 눈썹과 큰 눈, 높은 콧대와 큼지막한 입에다 사방에 각이 져서 네모난 얼굴 모양을 하고 있었다. 모진 풍상을 겪은 듯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눈빛 속에서 범상치 않은 위세가 느껴졌다. - P274

단예는 이 불가사의한 손가락 장난으로 독주가 체내에서 한 바퀴 돌기만 하고 곧바로 쏟아져 나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주량이 무궁무진하다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대한은 진정한 자신만의 술 실력에 의지해 연달아 서른 사발을 비웠음에도 여전히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심지어 약간의 취기조차 없었다. 단예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내심 탄복해 마지않았다. - P282

교봉이 이를 듣고 놀라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단 형, 단 형처럼 솔직담백한 사람은 평생 처음 만나는 것 같소. 우리는 처음 보고도 오랜 친구 같으니 두 사람이 의형제를 맺으면 어떠하겠소?"
단예가 기뻐하며 말했다.
"소제도 바라던 바요."
두 사람은 당장 서로 나이를 따져보고 교봉이 단예보다 열한 살이 많아 자연스럽게 형이 됐다. - P286

그러나 이 상황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교봉이었다. 저들은 모두 개방의 제자들로 평소 자신에게 최선의 경의를 표하고 멀리서 보기만 해도 달려와 예를 올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째서 오늘은 갑자기 나타나 ‘방주!‘ 하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조차 하질 않는 것일까? 그가 이런 의혹을 느끼고 있을 때 서쪽과 남쪽에서도 수십 명의 제자가 달려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 P316

교봉은 이미 변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전공과 집법 등 여러 장로가 아직 죽지 않았다면 필시 긴박한 위험에 처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아차 하는 순간 때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장탄식을 하고 몸을 돌려 사대장로에게 물었다.
"네 분 장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오?" - P326

"전 타주, 나 교봉이 형제들한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여기서 직접 밝혀보시오. 두려워할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소."
전관청은 몸을 일으키려다 다리 사이가 여전히 시큰거리고 저려오자 오른쪽 무릎을 꿇은 채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 형제들에게 지금 당장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머지않아 저지르게 될 것이오!" - P345

담파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형, 우리의 과거지사는 그만 얘기해요. 서 장로께서 물으시는 건 그해 안문관 관외 난석곡亂石谷 앞에서 벌어진 혈전을 말하는 거예요.
사형은 그 전투에 참가했으니 그 당시 정황이 어떠했는지 사람들 앞에서 말해보란 말이에요."
조전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문관 관외 난석곡 앞이라… 난… 난…."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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