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순은 목완청의 처량한 안색을 보자 마치 18년 전 진홍면이 갑작스럽게 비보를 접했던 모습이 떠올라 쓰라린 마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불쑥 말을 내뱉었다.
"넌 예아와 혼인을 할 수도 죽일 수도 없다."
"왜죠?"
"그건… 그건… 그건 단예가 네 친오라버니이기 때문이야." - P105

단정순이 말했다.
"황형, 예아가 저자들한테 납치됐습니다."
보정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천후한테 이미 들었네. 순 아우! 우리 단씨 자손이 남의 수중에 들어갔다면 아우 부부와 백부인 내가 구하러 가면 될 것이네. 굳이 인질까지 잡아둘 일은 없지." - P124

또 한참을 자세히 살피자 시신의 두 눈에는 생기가 넘쳐흐르고 얼굴에도 혈색이 감돌고 있는 것처럼 보여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대봤지만 숨을 쉬는 것 같기도 하고 쉬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이번에는 볼을 더듬어 봤지만 차가웠다 뜨거웠다를 반복했고, 아예 가슴을 더듬자 심장이 멈춘 것 같기도 하고 뛰는 것 같기도 했다. 목완청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어 혼자 중얼거렸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군. 죽은 사람 같은데 살아 있는 사람 같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하자니 또 죽은 사람 같잖아."
느닷없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살아 있는 사람이다."
목완청이 깜짝 놀라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등 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 P131

목완청이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귀신을 두려워한다고 했는데? 난 하늘은 물론 땅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가지 사실만은 두려워하겠지."
"흥! 난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두려워한다. 훌륭한 낭군이 갑자기 친오라버니로 변한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지."
목완청은 그 목소리가 한 이 말에 마치 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듯 두 다리에 맥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 P133

단예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괴성을 질러댔다. 그때 갑자기 단전 안에서 한 줄기 뜨거운 열기가 급속도로 상승하더니 삽시간에 혈맥이 팽창하면서 제어할 수 없는 정욕이 솟구쳐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자신의 품에 안긴 낭자의 미세한 숨소리와 은은한 향기가 느껴지자 정신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게 됐다. - P148

"네가 죽든 말든 난 상관하지 않겠다. 네가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면 난 너희 두 사람 시신을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알몸뚱이로 만들어, 대리단씨 단정명의 조카와 조카딸이자 단정순의 아들과 딸이 사사로이 근친상간을 하다 남에게 발각돼 수치심에 자결하게 됐다는 글을 써 붙여놓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 두 사람 시신을 소금에 절여 우선 대리성 저잣거리에 사흘간 걸어두고, 다시 변량, 낙양, 임안, 광주 등 도처에 들고 가 온 백성들에게 공개할 것이다." - P155

"잠깐! 우리 남매가 죽어버린다면 저 악독한 저가 우릴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오. 저자는 악랄하기가 이를 데 없소. 아기를 가지고 노는 섭이랑이나 심장을 파내는 남해악신보다 훨씬 더 악독하단 말이오. 저자가 누군지 모르겠소?"
그때 그 청포객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이 그래도 보는 눈은 있구나. 노부가 바로 사대악인의 우두머리인 악관만영이시다!" - P156

보정제가 단정순을 향해 말했다.
"순 아우, 그자가 누구인지 알겠나?"
단정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혹시 천룡사 내 승려 중 누군가가 환속해서 변장을 한 게 아닐까요?"
보정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바로 연경태자延慶太子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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