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퍼런 빛이 번뜩이며 청강검靑銅劍 한 자루가 휙 솟구쳐올라 중년사내의 왼쪽 어깨를 향해 찔러나갔다. 검을 든 소년은 자신의 이 검초劍招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손목을 꺾어 날카로운 검끝을 비스듬히 휘두르며 사내의 오른쪽 목을 베어가고 있었다. 중년 사내가 검을 곧추세워 소년의 검을 막았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검이 격렬하게 부딪치자윙윙거리는 진동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부딪친 양날에서는 섬광이 난무하며 순식간에 삼초三招가 오가기에 이르렀다. - P30

이때, 갑자기 중년사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맹렬한 기세로 장검을 휘두르다 순간 몸을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자 서편의 빈객들 중 청삼을 입은 한 청년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풋 하며 실소를 내뱉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행동이 결례임을 알았는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 P31

"단 형께선 존명이 어찌 되는지 모르겠소? 어느 분 문하에 계시오?"
그는 수려한 용모를 지닌 이 청년이 일개 서생처럼 보일 뿐 무공이 출중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단씨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재하 이름은 외자인 예라고 하며 무예라고는 배워본 적이 없소. 남이 자빠지는 걸 보면 그게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소?"
공경의 의미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의 말투를 듣자 좌자목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 P35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아무 거리낌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단예를 보고 필시 출중한 무예를 지니고 있으리라 여겼건만 공광걸이 가볍게 날리는 손찌검 하나 피하지 못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무공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 P39

‘내 몸에 있는 생사부生死府는 천산동모天山虎 그 노파 외에는 그 누구도 풀 수가 없다. 통천초가 약효는 영험하다 하나 생사부가 발작하는 날에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고 고통만 약간 줄어들 뿐이야 - P60

"낭자의 존성대명을 그 긴 수염 늙은이한테는 말 못해도 나한테는 말해줄 수 있지 않겠소?"
"존성대명은 무슨… 내 성은 종鐘이고 이름은 … 우리 부모님께선 절 영아靈兒라고 불러요. 존성은 있어도 대명은 없고 그냥 아명만 있는 셈이죠. 우리 저 언덕 위에 가서 앉아요. 근데 말이에요. 무량산에는 뭐 하러 온 거예요?" - P66

무례인 줄 알지만 시종 옥상의 눈동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얼마나 넋을 놓고 쳐다봤을까? 그제야 그 눈동자가 흑보석으로 조각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깊은 눈 속에 희미하게 휘돌아 감고 있는 광채가 있음을 느꼈다. 이 옥상이 살아 있는 사람과 거의 흡사하게 보이는 주원인이 바로 생동감 넘치는 그 눈빛이었다. - P130

단예는 절을 하려다가 옥상의 양쪽 신발 안쪽에 수놓아진 글자들을 발견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른쪽 신발 위에 ‘고두천배’로 나에게 공경심을 표해라‘ 그리고 왼쪽 신발에는 ‘내 명에 따른다면 백번 죽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수놓아져 있었다. - P133

"종 부인께 숨겨서는 안 됐지만 조금 전에는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제 이름은 단예라고 합니다. 자는 화예和響이고 대리 사람입니다. 제 엄친의 명휘는 정正 자, 순淳 자십니다."
종만구는 순간 ‘정 자 순 자란 네 글자가 무슨 뜻인지 전혀 생각지 못했지만 이를 들은 종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공자 부친이… 단… 단정순이라고?"
단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종만구가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단정순!" - P164

"단 공자, 사공현한테 가서 내 말을 전하세요. ‘우리 남편은 과거 강호를 주름잡던 견인취살 종만구이며 난 감보보甘寶寶다! 또 내 별호는 그리 듣기 좋지는 않지만 소약차라고 한다. 만일 우리 딸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우리 부부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처단할 것이니 똑똑히 기억해라!‘ 이렇게 말이에요."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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