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항산파 제자들을 구한 뒤에 나와 혼인합시다. 종신대사는 부모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느니, 중매인을 세워야 한다느니 하는 허울따위는 신경 쓸 필요 없소. 검을 버리고 무림에서 은퇴한 뒤 조용한곳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세상일에 관심을 끊고 아이만 낳으며 사는거요." - P185

‘임평지도 이곳에 있었구나. 임평지와 좌냉선은 둘 다 눈이 멀었으니 그동안 은밀한 곳에서 검술을 연마하며, 귀를 눈 삼아 바람 소리만 듣고도 무기를 판별하는 연습을 해왔을 거야. 이 컴컴한 곳에서는 내가 장님이고 저들은 도리어 정상인이나 마찬가지니 무슨 수로 임평지를 꺾는다?" - P226

맑은 파공성이 울려퍼지고, 영호충의 검은 좌냉선의 미간과 목, 가슴 세 곳을 찔렀다. 영호충은 훌쩍 뒤로 물러나 영영의 손을 꽉 잡았다. 좌냉선은 한참 동안 꼿꼿이 서 있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들고 있던 검이 뒤집어지는 바람에 검끝이 아랫배를 파고들어 등 뒤로 비죽이 튀어나왔다. - P240

악불군도 정말 영영의 얼굴을 망가뜨릴 생각은 아니었다. 해약 제조법을 술술 불도록 위협할 생각이었는데 영호충이 제 눈을 찌르면이 최후의 협박도 물거품이 될 뿐이었다. 그는 황급히 왼팔을 내밀어 영호충의 오른손 손목을 움켜쥐었다.
"멈춰라!"
두 사람의 피부가 닿는 순간, 악불군은 몸에서 진기가 쑥쑥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새된 비명을 질렀다.
"이런...!" - P250

"의림 사매, 영호 사형은 괜찮아요."
의림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다행이에요!"
겨우 안심한 듯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자신이 찌른 사람을 알아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악 선생이군요! 내.… 내가 악 선생을…!"
"맞아요, 사부님의 복수를 한 것을 축하해요. 괜찮다면 그물을 열어 우리를 좀 풀어주겠어요?"
"아, 알았어요!" - P252

임아행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 상좌사의 말이 옳다. 영호 형제, 오늘부터 항산파는 해산하도록 해라. 문하의 여제자들 중 흑목애로 오겠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환영할 것이고, 원치 않는 사람은 항산에 남아 있어도 무방하다. 항산을 부교주인 네 친위병으로 남겨두어도 좋겠지, 하하하!" - P292

"첫째, 저는 항산파 전 장문인이신 정한 사태의 유명을 받들어 항산파 장문인이 되었습니다. 항산파의 문호를 빛낼 일은 하지 못할망정 항산파를 이끌고 일월신교에 들어가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구천에서 무슨 낮으로 정한 사태를 뵐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는 사사로운 일입니다. 부디 따님과 혼례를 올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 P295

오랜 세월 임아행을 따른 상문천은 그의 인품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일시적으로 의기를 이기지 못해 영호충과 더불어 술을 마셨지만, 그 일로 임아행의 미움을 살 것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 혼자만이었다면 그뿐이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휩쓸려 술을 마시는 바람에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자 노두자와 계무시 등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재빨리 좋은 말을 지어내 임아행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었다. - P304

"풍 선배께서는 조양봉에서 영호 장문이 취해 쓰러질 뻔한 것을 보시고, 특별히 도곡육선을 시켜 내공 구결을 전하며 영호 장문에게 전수해달라 하셨소. 도곡육선의 이야기는 두서가 없었지만, 뜻밖에도 내공 구결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더구려. 아마도 풍 선배께서 특별한 수법을 써서 그들이 구결을 완벽하게 외우게끔 훈련을 시키신 모양이오. 영호 장문께서 내실로 안내해준다면 빈승이 그 구결을 알려드리겠소." - P319

"충 오라버니, 아버지는・・・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아니,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그날 화산 조양봉에서 당신이 떠나고 오래지 않아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선인장 아래로 굴러떨어지셨지요. 상숙부와 내가 달려가 부축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끊어지셨어요." - P358

영영은 면사를 걷지 않고서 섬섬옥수를 내밀어 퉁소를 받아 두어 번 불어보더니 영호충과 함께 합주를 시작했다.
두 사람이 연주하는 곡은 다름 아닌 <소오강호곡>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영영의 가르침을 받으며 열심히 금을 익힌 덕에 이제는 영호충도 제법 운치 있게 이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합주를 하는 동안, 영호충의 머릿속에는 지난날 형산성 밖 들판에서 형산파 유정풍과 일월신교 장로 고양이 이 곡을 합주하던 광경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 P364

영영은 대답 대신 생긋 웃었다.
"임평지를 매장 지하 감옥에 가둔 것은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어요. 당신 소사매에게 평생 임평지를 돌보겠다고 약속했는데, 감옥에 있는 동안 먹여도 주고, 입혀도 주고, 아무도 해치지 못하게 보호해주니 그 약속을 지킨 셈이지요. 그래서 나도 당신 친구 한 사람을 찾아 특별한 방법으로 보호해주기로 했답니다." - P370

나의 설정에서 임아행과 동방불패, 악불군, 좌냉선은 무림 고수가 아니라 정치인이다. 임평지, 상문천, 방증 대사, 충허 도인, 정정 사태, 막대 선생, 여창해, 고봉 같은 사람들 역시 정치인이다. 이런 각양각색의 인물들은 어느 왕조에나 있었고, 다른 나라에도 있으리라 확신한다. 크고 작은 기업과 학교, 각종 단체 안에도 있을 것이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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